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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Sep 27. 2023

프랑스 파리에서 무지개를 보며 유람선을 탈 확률은?

파리를 무지개 색으로 기억하게 된 날




9. 저녁 퇴근 시간, 파리의 버스도 만석이다.

코너를 돌 때마다 한쪽으로 몸의 중심이 무너진다. 그때 창 밖으로 보이던 에펠탑. 



파리의 낭만이 이제 막 시작됐음을 알린다. ©오운



상점의 불이 하나둘씩 켜지며, 파리의 낭만이 이제 막 시작됐음을 알린다.


다들 에펠탑을 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압도되어 놀랄 거라 했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버스에 내리자마자 내 입에선 외마디 환호성이 나왔다.


이제야 조금씩 지고 있는 노을에게 질세라 허겁지겁 거리를 뛰어 에펠탑과 함께 사진에 담길 수 있는 포토존을 찾았다. (에펠탑과 찍으면 좋을 버스 정류장은 따로 있어 우리는 그곳을 찾았다) 그리곤 길 옆에 기댈 수 있는 턱에 걸터앉아 30분은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보는데, 그제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우린 아무런 계획 없이 길을 걷는 상황이 이어졌고, 관광명소는 특히나 관심이 없었기에 기존 여행 무드와는 사뭇 달랐다)


 


센강 위에 작은 보트와 큰 유람선 ©오운

 



에펠탑 앞을 흐르는 센강에는 작은 보트와 큰 유람선이 번갈아가며 등장했다.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과 그것을 강 건너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팔을 크게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에펠탑 앞에 이렇게 근사한 레스토랑과 풍경, 심지어는 회전목마까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근사하게 차려입고 올걸 그랬다.


아쉬워할게 뭐 있나 다음 날도 나는 이곳에 올 것인데. 실제로 나는 다음 날 검정 미니 드레스를 입고 저 유람선을 탔다. 그래서 여행은 혹여나 생길 아쉬움 때문에라도 조금 길게 와야 하나 보다.




센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오운




한강과는 조금 달랐던 센강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와인을 먹는 사람들과 고뇌에 빠진 사람을 달래주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 내가 제일 기억에 남은 모습은 사람들이 함께 멍하니 센강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습이었는데, 아마 그 모습이 그때의 나와 가장 비슷해 보였던 탓이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유럽여행을 갈 수 있다면 저 자리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함께 있을 거란 상상을 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엔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더 옅어지고, 포기하는 부분이 있을 테니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학창 시절과 비교해서 유일하게 다른 부분은 내가 불편한 사람들은 억지로 만나지 않고 피해도 된다는 것 밖엔 없는 듯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불편하다 싶으면 피하게 된다. 그런데 웃긴 건 마음은 하나도 안 편하다. 이미 끝난 인연에 내가 계속 미련을 두고 있나 보다. 그런데 아직은 20대니까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이건 꿈일 거야. ©오운



우리는 많은 잡상인들을 지나쳐 겨우 에펠탑 앞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잔디 위에 앉아있으니 와인 한 잔이 참 그립다. 그러던 중, 어떤 소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에펠탑 앞에서 워낙 조심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우리는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기에서 계속 언니들을 지켜봤어요. 그런데 피크닉 매트도 그렇고 다 너무 귀엽고 예쁘네요. 계속 고민하다가 이 말은 전해주고 싶어서 왔어요!”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나.


이건 꿈일 거야. 그렇지 않다면 어쩜 어제부터 파리에서 이렇게 많은 천사들을 만날 수 있는 거지? 한편으론 이런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 인지. 이때,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었는데 돌아오니 다시 제자리군. 아무튼 이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낭만에 취해있는 와중에 곧바로 화이트에펠까지 켜지는 바람에 영화 속 한 장면이 금세 뚝딱 만들어졌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안의 내가 너무 맑아서 모든 것들이 예뻐 보이고, 그들에게 거짓 없이 깨끗하고 좋은 마음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화이트 에펠 이후 숙소로 돌아가던 길 ©오운



시간이 지나자 화이트 에펠이 꺼졌다. 이제 쌍둥이가 슬슬 불안해하는 시간이 왔다. 나 또한 어둠으로 뒤덮인 파리는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고, 우리 숙소가 바로 근처는 아니었기 때문에 서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황이었다.


버스를 타러 허겁지겁 갔지만 버스 정류장은 어디에도 없었고, 우리는 결국 안전을 선택했다. 택시를 바로 불러 숙소 언저리에서 내렸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빠르게 욕실을 쓰고 잠에 들었다.




비 오던 날 테라스에서 점심 ©오운




이건 그다음 날의 기록. 오늘은 유럽 여행에 온 이후부터 간편하게만 식사를 해온 우리를 위해 제대로 맛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메뉴는 에스카르고와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도착했더니 서버가 테라스 자리와 안쪽 자리, 어디에 앉을 건지 물어본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기 시작했던 터라 고민이 됐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테라스에 앉겠다고 말했다. 지붕이 있는 테라스여서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비가 정말 많이 오지 않는 한, 나는 계속 테라스를 고집했었을 것 같다. 누구나 유럽 테라스에서 식사나 커피를 하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중에 한 명이 나였다. 오히려 나는 비가 와서 어제보다 훨씬 낮아진 기온 덕에 편안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 레스토랑이 좋았던 건 음식과 서비스 모두 훌륭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일상에 들어온 기분이 들어 더없이 좋았다. 우리 옆에 있었던 신문을 읽는 사람, 와인과 고기를 곁들이며 서로의 눈빛에 머물렀던 사람들, 소금을 추가로 시키며 웨이터와 웃음 짓던 사람들. 이 모두가 한 장면에 들어오는 순간은 수없이 봤지만, 내가 있는 곳이 파리의 어느 한 레스토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특별해졌던 이 순간을 나는 사랑했다.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한복판의 거리 ©오운




오늘부터 파리와 스위스에 비 소식이 있다. 우리가 내일 향할 곳은 스위스였는데, 기어코 비를 만나버릴 건가 보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스위스 날씨를 검색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더운 것보다야 비가 낫다. 그리고 스위스에서의 날씨는 믿을게 아니라 했으니,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노트르담 대성당이 눈에 보인다. 성당은 현재 화재로 인해서 복원 과정에 한창이었는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부를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본 게 어디냐며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겼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지. 어떻게 개선문으로 향하던 길목에 이런 큰 문화유산을 의도치 않게 만날 수 있는 건지.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한복판의 거리였다.


물론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대구에서 오래 살아왔던 내가 서울을 배경으로 살게 되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어디로 가던 지하철역도 그렇고 우리가 모두 유명하게 알고 있는 곳이 그들에겐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지금은 강남이 일터라는 느낌 밖에는 받지 못하지만, 처음엔 ‘강남’이란 존재감이 워낙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이곳에 서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약간의 우월감이 생겼을 때가 있었다. (헛된 우월감이 분명하지만, 그땐 어린 마음에 성공에 가까워진 기분이었달까)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큰 감정으로 살고 있을지 아니면 그저 일상 속의 공간인지 한편으로는 또 궁금하네.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다 우연하게 들어간 곳 ©오운




라뒤레 (Laduree)

: 프랑스 마카롱의 원조이자, 15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디저트 가게.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다 우연하게 들어간 라뒤레 마카롱집.


나는 요즘 애들과 입맛이 다른 건지, (혹은 까탈스러운 건지) 유행하는 음식에는 큰 흥미를 못 느낀다. 마카롱, 마라탕 등등.. 그런데 프랑스에서 먹는 마카롱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듣다 보니, 여기에서는 꼭 한번 먹어봐야 되겠다 싶었다.


가게 줄을 선지 20분 정도 되었을까 가게 안에 들어가 형형색색의 마카롱들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줄을 서고 있을 때 받은 리플릿에 우리가 먹고 싶은 마카롱이 무엇인지 미리 정해놨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바로 마카롱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게를 나오니 소나기가 추적추적 내린다. 도저히 맞고 갈 수 없는 수준의 비라서 가방 안에서 다이소에 사 온 우비를 꺼내 입었다.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와의 행색인 우비를 보고 내적 부끄러움을 견디고 있었는데, 라뒤레 관리자가 앞에서 우리를 보고 미소 지으며 엄지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You guys are so cute!" (너희들 너무 귀엽다!)


여기에서마저 천사를 만난다고? 나 파리에서 살래..



비가 그쳤다 ©오운




비가 그쳤다. 허겁지겁 볼드모트를 벗어던졌다.


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좋아한다. 대학교 전공 수업 중에 과제로 만났던 이 영화는 리포트로 작성했던 만큼이나 분석도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보통 과제로 만나면 그 영화가 싫어질 법도 한데 이 영화와 '이터널 선샤인'은 달랐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비가 내리는 어떤 다리를 남녀가 함께 걸으면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데, 그들이 나누는 생각과 촉촉한 배경이 영화 전체의 무드를 너무 잘 드러난 장면이라 유독 좋아하는 포인트이다.


그래서 비 오는 파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만난 내가 설렜던 이유는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서라기 보단, 내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물론 아직 장르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장스토리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당시 내가 메모장에 적어둔 기록을 찾아봤는데, 그때 당시의 나는 파리를 아래처럼 느꼈나 보다.


'파리는 과거와 현재가 모두 뚜렷하게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은 '파리와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조화롭게 공존되어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과거를 그리워한 건 그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남아서 마치 과거가 현재진행형으로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여지는 참기 어려운 법이다.'

 




비가 오다 안 오다를 반복하는데, 우리 마음은 복잡해져 갔다. ©오운



비가 오다 안 오다를 반복하는데, 우리 마음은 복잡해져 갔다.


그 이유는 오늘 유람선을 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바토무슈라 불리는 유람선은 딱 너무 덥지도 않은, 춥지도 않은 오늘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는 건 우리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파리에서 맞는 마지막 저녁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내일이란 선택지는 따로 없었다.


이런 착잡한 마음을 감추고 에펠탑이 보이면 또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또 무계획 인생)




또 이렇게 즉흥으로 식당 테라스에 앉았다. ©오운



그렇게 한참을 걷다 막연히 여기 유럽에 와서 피자 하나를 안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나가는 길 옆에 있는 피자집이 눈에 띄어 또 이렇게 즉흥으로 식당 테라스에 앉았다.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뭣도 모르고 피자 하나와 리조또를 하나 시켰다. 그랬더니 피자 L 사이즈 하나와 리조또가 나와서 당황했다. 사실 피자 조각인 줄 알고 이렇게 시켰다.. 책임감을 가지고 내가 고른 피자 한 판을 모두 먹으려 했지만 워낙 짜기도 했고, 원래 피자 2조각이 최대인 나는 반 이상을 남겼다. 혹여 맛이 없어서 이렇게 남긴 줄 알까 노심초사했는데 가게 주인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해 줘서 표정으로 '맛있는데 배불러요'라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앞에 무지개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운



납작 복숭아를 사고 나서 시간을 보니 유람선 시간에 늦었다. 우리는 현장예매였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위해 빠르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서둘러 그곳에 가는 중에, 쌍둥이는 배가 아프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앞에 무지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그 속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 ©오운



혹시 유럽에서는 무지개가 흔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엄청나게 운이 좋은 건가?

뭐든 좋다. 이 무지개는 내가 지금 유람선을 비를 맞지 않고 무사하게 탈 수 있다는 증표이자, 내가 파리를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유가 될 거니까. 


유람선을 타고 있을 때도, 이 무지개는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해가 져서 이 무지개가 결국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도 말이다.


많은 다리를 지날 때마다 유람선에서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 건너편에서 크게 손을 흔들어주던 사람들내가 어제  강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속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




유람선과 에펠탑이 점점 가까워진다. ©오운



해가 지고 노을이 펼쳐진 센강 위에서 유람선과 에펠탑이 점점 가까워진다.

유람선의 한국어 안내음성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곳과 그곳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려주었는데, 덕분에 유람선에서 익숙해질 법한 풍경들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밀도 있게 유람선을 즐길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꼭 바토무슈를 추천해 주곤 하는데, 파리에서 어떤 경험을 했든 이 유람선을 타고 있는 시간만큼 파리를 100% 이해하기는 어려울 거라 장담했다.




화이트 에펠 시간이 다가온다. ©오운




유람선을 내렸더니 화이트 에펠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파리 생활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시간이 없어서 못 간 거 절대 아니다.. 절대절대..)


에펠탑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내 쌍둥이가 흔쾌히 (혹은 내가 몰래) 사진에 찍혀줬다. 다행히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사진 사용을 허락해 주었고 덕분에 흔들렸지만 그래서 더 빛나는 에펠탑의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아직 유럽에서 많은 도시를 여행 다닌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도시를 묻는다면 적어도 나에겐 파리가 제일이었다.


하지만 내일은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워너비 나라인, 스위스로 향하기 때문에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조금 더 미뤄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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