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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Oct 09. 2023

브리엔츠 호수에서 나는 사진집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브리엔츠에 가는 동안 나는 사진전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11. 스위스 사진전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던 브리엔츠 호수.

전시가 무엇이겠는가. 무언가를 유심히 보고 느끼는 행위 자체 또한 전시의 일부다. 어쩌면 나는 유람선을 타고 스위스 사진전에 다녀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걸 느낀 순간부터 나는 유럽에서 찍은 사진들로 사진집을 꼭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의 글은 그 사진집의 일부가 되겠지.





어제 그토록 당당하게 결심했던 내 다짐이 무색하게 유람선 시간에 늦어버렸다.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또 언제 탈 수 있을지 모른다. 확실한 건 시간텀이 조금 길었다는 사실뿐이다.


숙소에서 나와 15분은 내리뛴 덕분에 우리는 유람선에 오를 수는 있었는데, 아무도 우리 티켓을 확인하지 않아서 어리둥절했다. 우린 이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융프라우 vip 티켓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영 찝찝하다…’ 싶은 순간에 다행히 직원이 우리 티켓을 확인했다.




나도 곧장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오운




유람선은 이미 만선이었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무슨, 설 자리도 없어서 한동안 유람선을 배회하던 우리는 5분이 흐른 후에야 겨우 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 하나를 선점할 수 있었다. 기어코 바깥을 조금이라도 보겠다는 의지로 자리가 비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드르륵”


배가 출발한다. 배에선 많은 사람들이 풍경을 바라보거나, 혹은 함께 온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서로를 느끼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순간만큼 사랑스러운 순간이 있을까?


나도 곧장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사실 손을 흔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니 그분의 작은 친절이 수많은 미소를 이끌어낸 것일 거다. ©오운




파리 유람선에서 마주했던 사랑스러운 일을 이 날 감사하게도 똑같이 겪었는데, 배 건너편 육지에 있던 사람들이 유람선이 보이자 환하게 손을 흔들어주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유럽에는 유람선이 보이면 꼭 손을 흔들며 인사해줘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 것 아닐까? 자신의 집 앞을 매일 꾸준하게 배회하는 유람선인데, 이렇게 특별한 인사를 건네주다니!


괜히 없던 친밀감이 꾸물꾸물 튀어나와 나도 힘껏 손을 흔들었는데, 사실 손을 흔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니 그분의 작은 친절이 수많은 미소를 이끌어낸 것일 거다.




믿기지 않는 풍경의 연속이었다. ©오운




믿기지 않는 풍경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 풍경을 보면서 한 말이 있는데, 이 물색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찍은 사진들을 오히려 보정해야 할 것 같다고..


스위스를 다들 꿈꾸고, 자신들의 워너비 나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비현실성 때문이란 걸 알았는데도 괜히 반박하고 싶어 뉴욕을 워너비 도시로 뽑았던 나 또한 이 장면을 본 이상,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던 풍경이었다.


정말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멍하니 풍경만 지켜보느라 이 유람선을 탔을 땐 (우리답지 않게) 별 이슈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글에 사진이 가장 많이 첨가되었는데, 그건 내가 살면서 본 가장 비현실적인 하루 중 하나였기 때문이고, 의도치 않게 감상평이 길어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추억은 기억이 아니라 사진에 더 확실하게 있다. ©오운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주로 트래킹을 하거나 카누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카누라고 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의 첫 직장을 퇴사했던 2020년, 곧장 제주도로 떠났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행을 꽤 좋아했나 보다) 아는 동생과 함께 식당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때, 투명카약을 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 다 J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P들과 상당히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즉흥으로 우리는 2인용 카약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나는 멀미로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SNS에 꼭 이 순간을 인증하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반대편의 커플에게 혹시 에어드롭으로 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전달하는 건 어떠냐 제안한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린 해맑게 찍힌 사진을 건질 수 있었는데, 역시 추억은 기억이 아니라 사진에 더 확실하게 있다는 걸 그때부터 난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향해 사진을 찍고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오운




이 새파란 물의 색이 우리만 신기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향해 사진을 찍고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각자 다른 목적지에 내리더니 드디어 마지막 차례였던 우리의 목적지, 브리엔츠에 내렸다.




툰호수를 포기하고 브리엔츠를 선택했다. ©오운




툰호수를 포기하고 브리엔츠를 선택했었던 만큼, 우리의 기대치가 높았던 곳인데 의외로 집에 가는 시간이 촉박해서인지 딱히 감흥 넘치는 장면을 만나지는 못했다.


아침에 아무것도 챙겨 먹지 못하고 이곳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coop 마트에 달려가 한국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꼭 먹으라고 했던 치킨을 찾아 헤맸지만 인터라켄 coop에만 있다는 정보를 직원에게 전달받곤 실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우린 인터라켄 마트에서도 못 찾았다)


그 와중에 내 쌍둥이는 이미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구매한 모양이다. 쌍둥이는 마른 체질이지만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게 (심지어 많이) 먹는 편이라 사온 샌드위치를 벤치에서 잘만 먹었다. 아쉽게도 덜 마른 체질이지만 어떤 음식이든 우선 한번 거부를 하고 보는 나의 까다로운 입맛 탓에 오늘도 강제 금식하던 나였다.


다행히 나는 음식에서 찾는 즐거움이 크지 않았던 터라, 밥을 못 먹는다 해서 내 여행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벤치 바로 앞에는 이렇게나 멋지고 탁 트인 호수가 위치해 있었다. ©오운




벤치 바로 앞에는 이렇게나 멋지고 탁 트인 호수가 위치해 있었다.

어느샌가 우리 쪽으로 남녀 무리들이 와서 수영을 즐기러 피크닉에 온 모양이다.


"으악!"


엄청난 괴성에 깜짝 놀라 비명이 들린 방향으로 쳐다봤더니 방금 물속으로 들어간 남자가 있었다.

사실 나는 방금 발을 호수에 잠깐 넣었을 때도 깜짝 놀랐는데, 저분은 그냥 한 번에 훅 들어갔나 보다. 여기 물 진짜 차가운데 껄껄.. (약 올리는 거 아님)




이 말은 내가 다시 스위스에 온다면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다. ©오운




저렇게 넓은 호수 한 중간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최근에 어머니한테 감사하다고 말했던 부분 중 하나가, 어릴 적 수영을 배운 점인데 덕분에 나는 물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저런 장면을 보면 '대단하다' 감탄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꼭 해봐야지'하는 다짐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 말은 내가 다시 스위스에 온다면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인터라켄으로 돌아간다. ©오운




다시 유람선을 타고 인터라켄으로 돌아간다.


사실 영국과 프랑스에서 놀랍게도 인종차별을 거의 겪지 않았던 터라,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겨우 풀었던 찰나에 스위스에서, 그것도 2번이나(!) 이미 당한 상황이라 그 대단한 풍경도 괜히 심술궂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풍경들을 보고서 어찌 마음을 풀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순간들이 퍼즐처럼 맞춰져 내 마음을 풀어준 덕에 나는 다음 유럽여행에서도 스위스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지금은 너무 아쉽기만 하다. ©오운



그럼에도 인간이란 참 알 수 없는 게..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물 색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도 잠시, 이 혼미해진 정신이 돌아오자 평생 이런 물만 보고 산 것처럼 금세 익숙해져 버렸다.


물과 경치를 이미 30분 이상을 말없이 지켜본 후라 그렇게 되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경치를 보겠다며 유람선에 가장 먼저 올라타 야외 앞자리에 앉아놓고는 결국 너무 뜨거웠던 더위를 피하려고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그리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지금은 너무 아쉽기만 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브이로그라도 찍었어야 했는데!






저 선착장이 유명한 것인지 사진을 찍으러 그 뒤로 사람이 가득 차있었다. ©오운



이젤발트. 사랑의 불시착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진 곳.


저 선착장이 유명한 것인지 사진을 찍으러 그 뒤로 사람이 가득 차있었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계로 큰 흥미가 있진 않았지만 기념으로 한 장 남겼다. (놀랍게도 정말 명소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라, '장소만' 찍었다)


어떤 글에서 보기론 원래 이 정도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곳은 아니었지만, 드라마로 인해 명소가 된 케이스였는데 이곳의 주민들은 시끄러운 관광지가 되길 원치 않아 통행료가 생겼다고 한다.




내가 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오운




이 사진은 해수욕을 즐기던 저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워 남겼던 사진.

유람선 타는 내내 저런 장면들이 내 카메라에 걸렸다.


내가 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내가 저 순간에 어떤 것을 좋아했고 하고 싶었는지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

나의 취향과 경험에 대해 설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


20살에 누군가 나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댄 핑계가 '너는 취향이란 게 없어'였다. 지금은 너무 무례한 말이라 생각하고 무시가 가능했겠지만, 당시 나에겐 큰 상처였으며 심지어는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과 내에 댄스동아리를 창설하여 회장으로 부임하고 있었던 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취향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요즘 들어서 느끼는 건 그런 노력들을 의식해서 잘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글도 쓰고 있는 게 아니겠나? 무엇이든 그냥 얻는 것은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취향도 노력해서 얻으면 더 큰 성취감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빌리지들이 몰려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자, 누군가가 계속 우리를 불렀다. ©오운

유람선에서 내리니 시간이 애매해졌다.

오늘 일정은 사실 유람선이 다였고, 블라우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렇기엔 또 시간이 여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동네에서 맥도날드를 먹곤 엊그제 기차에서 봤던 수영을 할 만한 공간을 찾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


그러다 빌리지들이 몰려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자, 누군가가 계속 우리를 불렀다.

이곳은 입주민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는 거다. 프라이빗한 곳이니 어서 나가라고 소리를 외치던 그 무리를 뒤로 하고,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후다닥 그곳을 벗어났다.






아름다운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져 있었다. ©오운




너무 멋진 정원을 가졌던 빌리지들이 많은 탓에 나오는 내내 눈에 밟혔다. 그래도 그런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건지 인터라켄의 곳곳은 다행히 시선을 어디에 두더라도 아름다운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우리가 찾고 있었던 수영 지점이 곧 앞에 있는지,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눈에 보였다.




갑자기 내린 비를 맞기 시작했다. ©오운




조금 아쉽게도 우리가 생각했던 포인트는 못 찾았나 보다. 안전하다기보단 '그곳에 물이 있기에 나는 뛰어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우리는 발만 물에 담그고, 오늘 여행의 피로를 조금씩 풀어나갔다.


음.. 아니다. 정정하겠다. 우리는 발만 물에 담그고, 갑자기 내린 비를 맞기 시작했다. 괜찮다. 여긴 스위스니까 빗물이 조금은 깨끗하겠지.. 19살에 적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내리는 비를 행복하게 맞으며 걸어 다니기'였으니 이렇게 또 버킷리스트의 하나가 지워진다.






* 위 사진들은 모두 오운 (@daa_wooon) 개인 권한 저작물이며, 개인/상업적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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