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린 두려움을 잔뜩 안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1. 끝내 두려움을 거머쥐었다.
충동적으로 결정됐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수백 번이고 준비해 온 여행이었다.
매번 ‘이번엔 정말 유럽에 간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던, 바로 그것을 실현하러 가는 것이다. 그것도 코로나가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었던 상황에서 말이다.
여행의 시작은 단순했다. 2022년 7월의 더웠던 어느 날, 쌍둥이가 중요한 시험을 마치고 내가 살고 있던 인천으로 짧은 일정을 내어 올라왔다. 당시 시험이 끝나 잠시 일상이 무료해진 것인지 빠져있던 유튜브 타로를 나에게 보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시큰둥하게 고른 카드의 점괘는 아래와 같았다.
[7월에 여행운이 있고, 8월에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래? 그럼 이번에 유럽여행 갈까?”
놀랍게도 이것이 여행의 시작이다. 이렇게나 갑작스럽고 심지어는 농담스럽게. 지난달에 가장 원했던 회사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설마 이 여행을 가야만 한다는 운명 탓이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유 시간은 고작 지금으로부터 3주 안이었으니, 아무리 일정을 늦춰도 여행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 우선 급한 비행기 티켓이라도 끊자. 그 길로 찾아본 비행기표는 극적으로 가장 저렴한 것을 찾긴 했지만, 그럼에도 코로나 이전보다 2배 이상의 티켓값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원숭이두창이 국내외에 발병하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노트북 마우스에 올려진 손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차마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로 우린 잠에 들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면 우린 자기 전, 이미 답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로 몇 마디를 나누지도 않고,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지금 결제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란 공식에 마음이 급해져 티켓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우린 여행을 떠나기엔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만 했다. 쌍둥이의 확정되지 않은 회사면접 일정, 한 달도 남지 않은 나의 이사, 코로나에 대한 위험, 아직 정해지지 않은 숙소와 교통 편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어코 이 여행을 감행했던 건, 각자의 일상에 어떠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 전에 잠시 쉬고 있었던 나에겐 이번 여행은 단순 관광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선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소중한 기회로 여긴 덕분인지 여행을 하면서 만난 순간들이 참 운명처럼 다가왔더랬다.
우리는 티켓을 구매하고 여행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숙소와 교통편을 하나둘씩 결제하기 시작했다. 남은 곳들은 시설이 좋지 않거나, 비싸거나, 관광지와 먼 경우가 많았지만 그마저도 추억이라 여길 수 있을 만큼 좋았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나 했더니, 뉴스에서 어떤 소식이 들려왔다.
“유럽 공항과 교통편의 대대적인 파업 시작”
특히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비행기가 결항되거나, 캐리어 분실이 매일 수백 건씩 이루어지면서 여행 관련 카페와 블로그에는 이미 피해를 봤거나,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게시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우리의 유럽 첫 목적지가 히드로 공항인걸 혹시 모두 알고는 전 세계 몰래카메라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 캐리어를 잃어버리면 우린 여행 내내 어떻게 되는 거지? 심지어 이 공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뉴스를 보며 걱정하던 그 순간에도 유럽 전체 교통 파업으로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이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고, 우선 수하물 무게를 추가로 구매한 돈은 아깝지만 중요한 물품들은 모두 기내 캐리어에 실어 가는 것으로 급하게 정리했고, 여행자 보험도 2개나 들어 이 상황을 최대한의 방어선을 구축해 놓았다.
[우리가 유럽에서 마주할 수 있는 위기들]
7번의 비행기 결항/연착
7번의 캐리어 분실 위기
3번의 철도 파업
스위스의 날씨로 인한 교통편 이용 불가
코로나로 인한 입국 불가 (당시 pcr검사가 필수였다)
이사 및 개인적인 사유로 급하게 입국
소매치기/인종차별 등의 기타
이 수많은 고난들이 뻔하게 보이는데도 왜 유럽행을 고집했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저 지금이 아니면 유럽여행을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답변만이 자리 잡을 뿐이었다. 사실 유행병이나 파업은 외부 요인인데, 내가 지금껏 유럽여행을 27년간 미뤄왔던 건 이런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내 안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23살, 휴학을 결정하고 2년 넘도록 열심히 다닌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리고 고향으로 잠시 돌아왔다. 분명 나에게 시간과 돈, 그리고 젊음이 있었지만 결국 이내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힘들게 모은 돈을 한 번에 유럽에 쓰기 괜히 두려웠고, 유럽에 가는 것보다 취업을 빨리 하는 것이 좋을 거란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취업이 아닌, 경험을 쌓을 나이였다) 지금도 취업에 대한 걱정은 많다. 회사를 제법 여러 번 옮긴 내가 혹시 회사 생활에 맞지 않은 것은 아닐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미궁 속에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27살의 내가 23살의 나에게 유럽에 다녀오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처럼, 몇 년 후의 나는 분명 지금의 나에게 꼭 다녀오라고 말할 것이다.
비록 엄청나게 오른 유류값으로 안 그래도 비싸진 비행기 티켓을 갑자기 예매하느라 평소보다 2배나 더 예산을 늘려야 했고, 7번의 비행기 파업과 3번의 철도 파업을 만나야만 했지만. 또 비가 오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스위스 교통편을 끊었지만. 심지어는 카메라 A/S센터에 맡긴 내 미러리스 카메라가 완전히 망가져 급하게 지인의 2015년 산 미러리스를 빌려야만 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두려움을 모르는 (정확히는 모르고 싶은) 여행은 시작되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지 27살이 되어서야 유럽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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