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원장 : “어머! 너 어깨 왜 이래?"
Moon : "어깨? 내 어깨가 왜?"
Na원장 : "너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라운드 숄더 제일 심한 거 같은데?"
Moon : "라운드 숄더? 그게 뭐야?"
Na원장 : "휴, 잔말 말고 당장 요가하러 나와. 내가 너 책상에 오래 붙어 있을 때 알아봤다.”
4~5년 전 IT 에이전시를 함께 다녔던 기획자 친구가 갑작스레 요가를 한답시고 이 바닥을 떠나 Na원장이 되었다. 운동보다 잠을 선택하는 내겐 ‘웬 요가?’이지 싶었는데, ‘라운드 숄더'라니 큰 병에 걸린 마냥 놀랐다.
라운드 숄더는 거북목과 함께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있는 현대인들에게 빈번하게 찾아오는 불청객 중에 하나다. 단순히 형태상의 문제를 넘어서 만성적인 어깨 통증을 유발할 수 있기에 그냥 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요가하러 나오라는 친구의 말에 한 번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심산으로 그녀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언젠가 입겠지 하며 사둔 옷장 서랍 속 레깅스를 꺼내 입었다.
요가 스튜디오는 한 벽면 전체가 통 거울로 되어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을 온전히 바라보았다.
‘이게... 내 몸이라고???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지 이게......’
Na원장의 말처럼 내 어깨는 잔뜩 굽어 있었고 부족한 근력 탓에 등도 동그랗게 말려 마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같아 보였다.
몸 상태가 너무나 엉망이었기에 과연 내가 달라질 수 있을까란 의구심과 함께 첫 요가 수련이 시작되었다.
아쉬탕가라는 이름부터 어려운 요가였다.
아니나 다를까 중심을 잡지 못해 몸이 흔들리고, 다리 근육은 덜덜덜 떨렸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왜 그렇게 두두둑 소리가 나는지 창피하기도 했다. 끙끙대며 따라 해보았지만 30분도 채우지 못하고 수련실을 뛰쳐나와 헛구역질을 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고, 무너진 몸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시작은 했지만 퇴근 후 운동을 가는 건 너무나 고역이었다.
냅다 집으로 가서 눕고 싶었고, 요가 스튜디오 통 거울을 통해 굳을 대로 굳은 비루한 내 몸을 보는 것도 짜증나고 우울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수련을 나간 이유는 요가는 하면 할수록 무작정 몸을 늘리고 찢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가는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내 몸이 어디가 고장 나 있는지, 내 마음이 어디가 고장 나 있는지를 알게 되는 시간을.
끈기를 가지고 수련의 시간을 조금 더 쌓자 내 삶을, 내 일을 어떠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나 스스로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게 요가, 아니 운동의 힘인가?
그렇게 2년 가까이 요가를 했고 나는 달라졌다, 많은 것들이.
“남들 따라가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그만큼만 하면 그것도 대단한 거예요.
대신 용기를 내세요.
저 동작은 못할 것 같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우선은 해보자고 용기를 내세요.
다만 빨리 쫓으려고 하지 마세요.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요.
결국은 해낼 테니까요.”
어느 날 수련 중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요가를 시작했을 때가 다방으로 이직한지 보름쯤 되었던가.
제법 연차가 꽉 찬 시니어였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스타트업에 대한 두려움과 누구보다 빠르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디자이너로서 자신감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을 때였다. 그때 선생님의 저 말씀에 스르르 두 눈이 감겼고, 왠지 모를 위로감에 또르르 눈물이 났다.
나는 왜 그렇게 조급해하고 조바심을 냈던 걸까. 무엇을 쫓고 누구를 쫓으려 했던 걸까. 그저 나의 속도로 꾸준히 해 나가면 되는 것을.
그날 이후 나의 모든 것이 한 템포 느려졌다. 아니, 나의 속도를 찾았다. 나의 속도를 찾으니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 덜어졌다. 일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가 생겼다. 조금은 가볍게, 부담감도 내려놓으니 디자인이 재미있어졌고, 눈과 턱의 긴장, 마음의 긴장을 풀자 경쾌한 인내심이 생겼다.
새로운 직장과 나의 일을 즐길 여유와 속도를 가지게 된것이다.
무너진 몸을 돌보는 것 말고도 내가 요가를 꾸준히 해야할 이유를 찾은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은 꾸준히 요가를 했다. 평소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쓰고 습관과 반대 방향으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 중요한 것은 ‘호흡’이었다.
안되는 동작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눈, 미간, 입, 어깨 등 많은 곳에 힘이 들어가고 그 순간 호흡이 멈췄다. 그때 모든 긴장을 풀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면 전혀 안될 것 같던 동작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동작을 하면서 통증을 느낄 때에도 호흡에 집중하면 어느 정도 평온함을 찾기도 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호흡에 집중하는 요가는 내 일과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생각이 분산되고 감정이 마음을 뒤흔들 때, 마음만 급할 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화가 나거나 우울감이 밀려올 때 나는 깊고 긴 호흡을 통해 다시금 마음의 안정을 되찾곤 한다.
내 꿈은 여든 살이 되어도 마우스를 잡는 디자이너다.
요가를 하기 전 나는 그 꿈을 접었었다.
몸도 마음도 병들고 찌들어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더 이상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느끼는 시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가를 하고 나서는 어쩌면 내 일에 흥미를 잃지 않고 여든의 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게 어느 정도는 요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요가를 하면서 체력을 키운 만큼 내 마음과 정신도 건강하고 단단해진 게 아닐까?
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요가, 아니 운동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과 그것들을 나의 일과 일상에 어떻게 접목시켰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했던 운동은 라운드 숄더 말고도 많은 것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드라마 <미생>에 이런 말이 나온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네가 후반에 종종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귀가 더딘 이유,
모두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고민을 충분히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오늘도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내 동료에게 꼭 요가가 아니어도 운동을 권하고 싶다.
“오늘을 버텨줄 체력, 함께 만들지 않을래요?”
copyrightⓒ 2020. written by emma, designe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