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하고 보잘것없는 애벌레는 추운 겨울을 견디며 긴긴 시간을 버티다가 마침내 번데기가 되었다.
너무 추웠던 탓인지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무엇을 위해 버텨냈는지도 잊은 채 고여버렸다.
이런 멈춰버린 모습이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에 생각하기를 멈추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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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날개를 가진 나비로 태어났다면, 나의 고민은 이토록 깊지 않았을까.
몸은 이미 다 자란 것 같은데, 여전히 젖어 있는 것 같은 날개를 느낀다.
어둡고 좁은 이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지만, 바깥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을 때면,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느리지만 기어 다니던 애벌레였을 때가 더 자유로웠던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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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고민과 아픔 속에서 끝나지 않는 이 번데기의 날.
그렇지만 나만의 향긋한 리듬은 고여 있는 동안 더욱 깊어짐을 느낀다.
느리게 기어가던 그 리듬 속에, 이미 향기가 머물고 있었듯,
고여버린 이 향긋한 리듬이 불안과 떨림을 깨우고,
마침내 날개를 펼쳐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바람 위에 나를 올려놓았다.
나는 다시, 나의 느린 리듬을 찾아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