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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Apr 08. 2016

잠깐 쉬어가는 텃밭, 그리고 개 손님 이야기

텃밭 만들기, 개 손님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잠깐 쉬어가는 텃밭, 그리고 개 손님 이야기


공사를 하는 내내 나는 어서 텃밭을 가꾸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고, 틈만 나면 J에게 텃밭 텃밭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공사 자재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흙이며 돌이며 잔뜩 쌓여있어 당장 텃밭에 흙을 고르고 터를 만들기는 힘에 부쳤다. 그러던 어느 날, J의 호주 시절 친구 프란체스코가 놀러왔고,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우리도 잠시 쉬어가면서 작은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텃밭 만들기.   

  프란체스코의 도움으로 마당을 정리하고, 마당 한편에 작은 텃밭도 만들었다. 가늘지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후박나무를 한 구석에 남겨두고 텃밭을 만든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작은 텃밭에 바질 씨앗도 뿌리고, 오일장에서 사 온 모종 들도 옮겨 심어주었다. 상추, 치커리,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등등     

 흙이 어찌나 좋은지, 모든 식물들이 무럭무럭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4년생 미깡 나무도 한 그루 사다가 마당 한편에 심었다. 바다에서 주워온 돌멩이로 조그맣게 테두리도 둘러준다.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서 올 겨울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자란 귤을 먹을 수 있겠지? 




어느 날, 우리 집에 나타난 개 손님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 텃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마당에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귀가 쫑긋하고, 눈코입이 올망졸망한 것이 여우 같기도 하고 참 예쁘게 생긴 녀석이었다. 이 자그마한 녀석은 뭐가 그리 궁금한지, 집구석구석을 한참 돌아다닌다. 처음에는 불러도 들은 채 안 하고 쌩 지나가더니, 몇 번 부르니 가까이 다가와 옆에 앉는다. 빨빨 거리고 돌아다니기에 목이 마를 것 같아 물을 주니, 잘 마시더라. 힘없이 축축 걸어 다니기에 배가 고픈가? 하여 물에 밥을 조금 말아 주었더니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텃밭에 무단 침입하여 나의 깻잎을 뜯어먹다가 걸려 혼쭐이 나기도 했다. 어느새 J와 나는 녀석에게 ‘오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도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녀석. 어쩌지?’ 집에 돌아가라고 일부러 골목길로 데리고 나가 두고 도망 오기도 했지만 녀석은 자기 집인 마냥 쪼르르 나를 쫓아 돌아왔다. ..’ 집 안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왕왕 짖는 소리가 났다. 녀석은 한 번도 짖은 적이 없어서.. 다른 개가 왔나? 하고 J가 나가보니 마당에 들어오려는 큰 개를 쫓아내는 이 자그마한 오잉 녀석의 소리였다고 한다.      

뭐야.. 녀석 여기가 진짜 자기 집인 줄 아나 봐   

  

 저녁밥까지 주면 정말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밥을 주지 않고, 잠깐 동네 덕구 상회에 넘어갔다. J와 나는 아직 다른 생명을 돌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어느 날 우연하게 길 잃은 강아지나 고양이나.. 길 잃은 생명이 우리 집에 찾아오면 그러면 그땐 어절 수 없잖아운명인 거지..’  그렇게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고.. 사실.. 하루 동안 이미 정이 들어버려서 그래이제 여기가 네 집이다결심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녀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맞다. 아쉬웠다. 많이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밥은 챙겨주고 나갈걸.. 생각했다. 후회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J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녀석은 세계여행 중인 걸 거야. 여행하는 중에 우리 집에 잠깐 들른 거지. 물도 얻어 마시고, 밥도 얻어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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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http://blog.naver.com/dab_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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