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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방에서 들려온 늦가을의 웃음

잔소리와 웃음, 피곤함과 행복이 교차하는 시간

by 다복퀸

늦가을의 밤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해가 기울면 바람은 금세 차가워졌고, 아이들 방 창문을 닫아 두어도 스멀스멀 스며드는 서늘함이 있었다.

시계는 아홉 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이들 방 안은 여전히 여름 낮처럼 활기찼다.

이불은 이리저리 구겨지고, 작은 발자국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방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는 집 전체를 따뜻하게 데우는 듯했지만, 동시에 나를 한숨짓게 만들기도 했다.


“언제쯤 스스로 자러 들어갈까…”

“자러 들어가서 뭐가 저렇게 재밌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거실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 다가서면 아이들의 소리가 더 뚜렷해졌다.

“너 해봐, 너부터!” “아니야, 내가 맞혔잖아!” 이런 목소리가 오가더니, 곧 이불이 바스락거리고 폭소가 터졌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아이들에게는 하루가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가 또 다른 시작 같았다. 나는 살금살금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직 안 자는 사람 누구지~~~?”

순간, 방 안의 소리가 뚝 그쳤다. 아이들은 이불속으로 황급히 몸을 숨기며 자는 척을 했다. 그러나 이불속에서 터져 나오는 킥킥거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모른 척 다가가 손바닥으로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잘 자. 사랑해. 잘 자라줘서 고마워. 참 대견해.”

그러자 이불속에서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어흥!” 하고 뛰쳐나오며 나를 놀라게 했다.

“자는 줄 알았지? 깜짝 놀랐지?”

나는 일부러 어깨를 움찔하며 놀라는 연기를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 장면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다. 잔소리와 웃음, 피곤함과 행복이 교차하는 시간.

나는 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빨리 자야 내일 아침에 덜 피곤할 텐데,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 텐데’라는 걱정. 그리고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웃음소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라는 고마움. 이 두 마음은 서로 부딪히면서도 결국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의 무게는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


그러나 현실은 늘 녹록지 않다. 늦게까지 장난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그만 자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날도 많다. 그러면 방 안은 잠시 조용해지지만, 곧 다시 속삭임과 웃음이 번져 나온다. 아이들을 다그치며 ‘내일은 정말 일찍 재워야지’ 다짐하다가도,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또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부모로서의 피곤함과 아이들 앞에서의 무방비 웃음은 늘 함께 있었다.

결국 아이들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바스락거리던 이불은 고요해졌고, 가벼운 숨결이 일정한 리듬을 이루었다. 작은 손은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고, 얼굴에는 미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다가가 조심스레 손을 잡아주고, 삐뚤어진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에 살짝 뽀뽀를 했다.

“오늘 하루도 잘 자라줘서 고마워.”

그 말을 조용히 내뱉으며 방을 나왔다.


거실로 나오면 또 다른 시간이 펼쳐졌다. 아이들 웃음이 멈춘 자리에 찾아온 건 고요였다.

온 집이 텅 빈 것처럼 조용했고, 나만이 깨어 있는 듯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 고요는 때로 달콤했지만, 때로는 쓸쓸하기도 했다. “드디어 내 시간이다!”라며 TV를 켜거나 책을 펼칠 때도 있었지만, 소파에 몸을 기대는 순간 그대로 기절하듯 잠드는 날이 더 많았다.

설거지, 빨래, 정리되지 못한 집안일들이 눈에 보였지만, 몸은 이미 무거웠다. 그래서 늘 갈등했다. ‘지금 해야 하나, 내일 아침으로 미룰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 지나가 버릴까.’

하지만 그런 갈등조차도 어쩌면 부모로서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잠들었기에 비로소 찾아온 여백,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짧은 고독. 피곤한 몸을 이끌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은 때로는 포기 같았고, 때로는 위로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풍경은 평범한 일상이다. 매일 저녁 반복되는 소동, 매일 밤 찾아오는 고요.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 담긴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 웃으며 잠드는 모습, 새근새근 이어지는 숨소리. 그것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안도이자 위로이다.

나는 안다. 언젠가 이 순간이 사라질 것을. 아이들은 점점 자라나고, 방 안에서 함께 깔깔대며 웃다 잠드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언젠가 그들은 제 방에서 혼자 잠들기를 원할 것이고, 대화와 웃음 대신 휴대폰 불빛과 음악 소리로 밤을 채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이 밤이, 이 웃음소리가, 이 고요가 더없이 소중하다.


때때로 아이들이 잠든 뒤 남편이 늦게 집에 들어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그는 묻는다.

“애들은 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응, 겨우 재웠어.” 그러면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수고했어.”

그 한마디가 나를 버티게 한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낸 우리는 결국 아이들이 잠든 뒤 같은 고요 속에 서 있었다.

아마도 먼 훗날, 내가 가장 그리워할 장면은 이 평범한 밤일 것이다. 아이들 방에서 들려오던 늦가을의 웃음, 그 웃음이 멈추고 찾아온 고요,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나를 위로하던 시간.

나는 오늘도 아이들이 잠든 방을 떠나며 속으로 다짐한다.

지치고 힘든 날이라도, 이 순간을 흘려보내지 말자고.

언젠가 이 기억들이 나를 가장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니까.


그리고 고요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오늘도 잘 버텼어. 내일도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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