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스쳐간 자리에 남은 웃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우리가 어쩌다 여기 있는 거야!"
폭풍우가 몰아치던 첫날밤, 우리는 카페 안에 모여 있었다.
텐트 대신 카페 바닥과 빈백에 이불을 깔고 누운 가족.
서로 쳐다보며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의자에 걸터앉아 소곤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누가 봐도 기묘한 풍경이었지만, 우리에게는 특별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주인아저씨는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바람이 세게 분다고 하니 카페로 가세요.”
비와 바람은 멈출 기미가 없었고, 텐트는 계속 흔들렸다. 결국 우리는 텐트를 포기하고 카페로 향했다.
아이들은 상황을 걱정하기보다 금세 즐거움을 찾았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숨바꼭질을 하고, 빈백에 누워 “우리 오늘 진짜 여기서 자는 거야?”라며 까르르 웃었다. 나는 웃음 반, 한숨 반으로 이 장면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있는 한 어떤 공간도 모험이 되고, 어떤 공간도 숙소가 된다
거제도로 향하는 길은 길고 지루했다.
하지만 해저터널을 지나 다리를 건너는 순간, 지쳐 있던 차 안은 환호로 가득 찼다.
“와, 바다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피로는 눈 녹듯 사라졌다.
긴 시간 끝에 도착한 바다는 까만 몽돌이 반짝였다. 아이들은 손바닥만 한 돌멩이를 보물처럼 쥐고, 작은 게를 잡아 손 위에 올려놓고는 무서워하면서도 뿌듯해했다. 돌고래를 보러 갔을 때의 반짝이는 표정, 바닷바람에 몸을 떨면서도 “조금만 더 놀고 싶어!”라던 목소리.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여행지보다 더 눈부신 풍경이다
여행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비는 내렸다가 그쳤다를 반복했고,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댔다.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아이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서로 양보하고 챙겨주고 기다려주며, 그 속에서 스스로 자라는 모습이 보였다.
여행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길이 아니라, 아이들이 우리를 이끌어주는 길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워터파크에서 떡볶이, 치킨, 우동을 쪼그려 앉아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젖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최고야!”라며 엄지 척하던 아이들.
배고픔도, 피곤함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의 일부였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모두 잠들었다. 조용한 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보며 나는 혼자 생각했다.
여행은 고단함과 불편함을 견뎌내며 얻는 웃음의 기록이다.
아마도 이번 거제도의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선명한 장면은, 폭풍우 속 텅 빈 카페에서의 그 밤일 것이다.
낯설고 불편했지만, 그 어떤 숙소보다 웃음이 많았던 특별한 시간.
여행이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뜻밖의 순간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또 가자. 또 함께, 어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