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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y 06. 2020

예 저는 아싸입니다

미적지근함의 매력

약 2년 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모두 지운 적이 있다. 여러 명의 친구들과 불금을 갖거나 훌쩍 여행을 떠난 이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고 있는 모습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멍청히 집 안에 담겨 있는 나와 비교됐다. 다른 사람들의 찬란함만을 담은 공간이니 기죽지 말라는 말에도, 한두 컷 올릴 찬란함조차 없는 내 일상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남들처럼 뜨거운 것도 못했지만 쿨하게 SNS를 시간낭비서비스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처럼 차갑지도 못한 나는 결국 인스타그램을 다시 깔았다. 


쿨하지 못한 나


화려한 인스타그램 세상 속에서 나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사진, 초록색 이파리 사진, 본연의 내가 5% 정도 함유된 내 사진, 멀끔한 카페에 가서 데이트한 사진인데 도무지 인싸의 느낌은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난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하호호 웃으면 그땐 즐겁지만 집에 오면 방전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주말 중에 하루는 꼭 집에서 뒹굴고 쉬어야 제대로 쉬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집에 3일 이상 있어서 답답한 날엔 '혼자'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며 내가 좋아하는 하늘 사진을 찍는다.


왕 너무 이쁘당 (흡족)


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하면서 인싸이고 싶었을까.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으면서도 어울리고 싶은 이 마음... 그렇다. 나는 관종이다. (지나치게 당당) 인정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못난 나도 나니까! 내가 받고 싶은 관심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간간히 생각나는 조연 정도로 해두면 좋겠다.(엑스트라는 싫음) 내게 너무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보이면 불 위에 쪼그라든 차돌박이마냥 마음이 쭈그러진다. 그렇다고 너무 무관심하면 먹다가 냉장고에 넣어놔서 깜빡한 시리얼처럼 눅눅해진다. 나는 나를 미지근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좋다.


난 금방 한 뜨거운 밥도 싫고, 아예 찬밥도 싫다. 떠 놓고 TV 보다가 엄마 잔소리에 먹는 미지근한 한 숟갈이 좋다. 미지근한 건 데일 일도, 질릴 일도 없다. 나는 미지근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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