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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y 26. 2021

단수가 안돼서 울었다

  날씨도 화창하고 직장에서의 일도 잘 풀리고. 모든 것이 치열한 나의 삶에 박수를 쳐 주는 듯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었다. 완벽한 것 같은 하루에 작은 균열 하나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날. 바로 어제가 그랬다.


날씨가 맑다고 함부로 설레지 말기


  시작은 단수였다.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단수가 된다는 소식을 오후 4시에 직장에서 들었다. 사실 별일이 아닌데 왠지 마음이 조급했다. 조금 헐렁거리는 운동화를 신고 발 뒤꿈치가 까지는 줄도 모르게 집으로 뛰어갔다. 부랴부랴 샤워를 했다. 저녁에 샤워를 하지 않았을 때 바빠질 아침의 내가 싫어서 그랬다. 그냥 그게 싫었을 뿐이다. 혹시나 단수가 길어질까 하는 조바심에 1인용 욕조에도 물을 한 가득 받았다. 물이 안 나온다는 생각에 괜스레 잘 먹지 않던 라면도 끓여먹었다. 그냥 그렇게 단수가 되었으면 했다.


  6시가 되어도, 8시가 되어도 물은 계속 콸콸 나왔다. 실망 섞인 짜증이 단전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차고 올라왔다. 뭘 그렇게 서둘렀지. 저 욕조의 물은 다 어디에 쓴담. 그러고는 곧 주체할 수 없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마음의 관성이 주변을 때려 부수기 시작한다. 가족들에게 이유 없는, 사실은 나만의 이유 있는 이유로 톡톡 쏴댄다. 나의 '톡톡'이 '푸슉'이 되었을 걸 알면서도 마음 관성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내 멋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이 놈의 눈물샘에도 단수가 되질 않아서 예능을 보면서도 오열을 한다. '푸슉'댔던 것의 죄책감이 나를 마구 흔들어서 그렇다.


쿠르릉 쿠르릉


  그럴 때면 나는 더 이상 푸슉대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문다. 나를 달래려는 주변인들의 노력을 애써 무시한 채 휴대폰에 몰두한다. 2021년의 바보상자는 자지러지게 울던 내 마음의 관심을 쏙 빼놓는다. 부모들이 우는 아이 손에 휴대폰을 들려주는 것이 이해되는 시점이다. 나도 아기인가? 응애. 전에 모든 것이 슬프던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진다. 어쨌건 마음이 가라앉으니 좋은 내 모습이 좋은 나마저 혼란스럽다. 왜 울었지. 왜 그렇게 서럽고 화가 났었을까. 


  그래서 그냥 그저 그런 결론을 내린다. 나는 단수가 안 돼서 울었다.


끙.... 물이 차고 넘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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