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보일 Aug 11. 2021

3만 원으로 효녀 되는 법

엄마랑? 단 둘이? 감성카페를?

  인싸인 동생과 다르게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영 아니다 싶으면 속으로 거리를 둬서 그렇다. 근데 엄마도 그렇다. 엄마도 그래서 친구가 없다. 닮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닮아서는 둘이서 외로워한다. 쉬는 날인데 나는 휴대폰만, 엄마는 TV만 바라본다. 가끔 시답잖은 농담으로 서로를 웃겨주지만 그리 오래 가진 못한다. 엄마는 엄마 세상을, 나는 나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어 그렇다. 오늘도 그렇게 흘러갈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나의 세상에 대해 물었다.


  "나도 까↗페 가서 차 마시고 싶다."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늘 일해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였다.  커피가 무슨 8천원이나 하냐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서는 평생 듣지 못할 말 같아서 진짜냐고 다시 되물었다. 엄마도 엄마의 말이 낯선 듯 말을 돌렸다.


  "에이, 돈도 아까븐데 그냥 집에서 믹스 타 먹으까?"


  애써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척하는 엄마가 속상했다. 일단은 가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출발하니 약간 긴장됐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정해야 하는데 한참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엄마랑 단 둘이 카페는 처음인데.'

  '엄마랑 가려면 의자가 푹신한 곳? 커피가 저렴해야 하나?'


  결국 엄마는 엄마가 알고 있는 한 최고였던 호텔의 커피를 마시자 했다. 솔직히 나는 별로였다. 엄마 때나 최고였지, 지금은 낡아빠진 호텔을 개조한 카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냥 엄마를 위해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닥다리 호텔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깔끔하고 세련된 곳에서 예쁘게 세팅된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감성의 카페 말이다. 이대로라면 가서 툴툴대지 않을까 생각했다. 별안간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목적지를 바꿨다. 탁 트인 전망에 모-던한 느낌 충만한 카페로.


  시큰둥할 거라 생각했던 엄마의 나지막한 탄성을 들었다. 엄마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섰다. 무채색의 3층짜리 커다란 건물은 엄마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메뉴판은 엄마를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커피라고는 맥심 밖에 모르는 엄마에게 각종 라떼와 에이드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음료가 꽤나 비싼 편이어서 눈치가 보였다. 그치만 어렵게 온 거니까. 엄마는 맥심만큼 달다구리한 커피면 되겠지. 엄마는 바닐라라떼, 나는 레몬에이드를 시켰다. 결제하려는 순간 엄마는 브런치 메뉴인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가리키셨다. 으악, 3만 원.


  진동벨을 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온통 딱딱한 의자뿐이었다. 혼자라면 괜찮을 텐데 엄마 눈치가 자꾸 보였다. 허리 아프실 텐데. 엄마도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으시고는 너무 좋다는 말을 계속하셨다. 넓게 보이는 바다가 좋으셨던  같다. 밝은 엄마 표정을 보니 나도 마음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엄마를 보았다. '어때. 딸의 결정이 만족스러워?'라고 묻지 못했다. 엄마 눈에 바다가 담긴 건지 그렁그렁 울렁울렁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마음도 그렁그렁 울렁울렁했다.


  진동벨이 울리고, 두 손 가득 가져온 샌드위치와 커피, 에이드를 엄마 혼자 거의 다 드셨다. (에이드는 내 건데 마셔보시더니 너무 맛있다고 한 모금으로 절반을 없애셨다) 갑자기 고개를 뒤로 젖히시고는 '하-' 하시기에 허리가 아프신가 생각했다.


  "엄마, 왜? 허리 아파?"

  "아니. 너-무 맛있다. 너-무 절거워(=즐거워)."


  엄마랑 나는 뭐가 좋은지 한참을 깔깔거렸다.


너-무 맛있고 너-무 절거운 브런치


  배를 채우고 나서 금방 일어날 줄 알았던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는 요리조리 사진을 찍는 커플들과 브이로그를 찍는 멋쟁이들을 구경하시더니, 내게 휴대폰 카메라를 켜달라셨다. 나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담는 엄마를 보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이왕 찍는 거 친구들한테 시키는 것만큼 요구사항을 늘어놨다. 엄마는 거의 백 장의 사진을 찍어줬다. 엄마랑 감성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인생샷을 건질 줄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늘 무겁던 엄마 얼굴이 환하게 핀 걸 보니 왠지 효녀 노릇한 것 같았다. 3만 원으로 효녀 되기 참 쉽죠? ^^*

매거진의 이전글 사건의 연결고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