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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10. 2021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에요

제가 그 아무나 입니다^^

나보다 더 슬퍼해줘서 고마워


  브런치가 글 안 쓴 지 60일이 넘었다며 너무나 슬퍼했다. 처음엔 살짝 당황스러웠다. 내가 글을 안 쓴 지 벌써 60일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힘들 때 글을 쓰는 버릇을 들여서 그런지 요즘은 일기를 잘 쓰지 않게 된다. 그래서 브런치도 잘 찾지 않았다. 뭐 그냥 시큰둥했던 것 같다가 갑자기 속상했다. 또 열정이 식어버렸다. 글을 쓰지 않은 건 내 탓이 맞아서 더 그랬다. (어머 100번째 글이었네. '글을 쓰지 않은 건 내 탓이다') 


  '내가 글 쓰려고 가입한 거지, 누가 봐주길 바란 건 아니니까'라는 밍밍하고도 재미없는 위로를 했다. 사실은 아니면서. 글을 오랫동안 쓰지 않은 작가들에게 모두 가는 평범한 알람이라는 걸 알지만, 저리 애절하게 말하니 내심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을 아주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의 방향이 좀 바뀌었다. 나는 악몽을 거의 매일 꿨다. 누군지 모르는 타인이 되어 사연 있는 살인마에게 쫓기거나 남고생이 되어 초능력자가 되어 악당에게 위협당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와, 대박'하면서 일어나고, 이를 서둘러 휴대폰에 메모한다. 뭐 그때까지만 해도 작품화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최측근에게 생생하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발단이었다. 나의 최측근은 나만큼이나 '와, 대박'을 외치며 영화나 드라마가 되면 좋겠다, 책으로 나오면 재밌겠다고 내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또 꿈을 크게 꾸는 건 습관이라서 나는 벌써 제2의 정유정 작가가 되어 있었다. 악몽을 토대로 캐릭터를 만들고, 그와 관련되어 있을 것 같은 사건들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수월했다. 정말 드라마 속의 작가들처럼 나는 노트북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 그리고 아주 단시간에 A4 40쪽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재미있었다. 소설을 쓰는 것도, 내 소설을 누군가 읽는 것도. 어딘가 부족한 느낌은 있었지만, 첫 작품 치고는 훌륭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걸 넘어서서 아마 노벨상 후보에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어이없고 창피하다.) 그리고 브런치에 발행했다. 


약간 이런 마인드였던 것 같다


  수개월 동안 브런치 북을 완독한 사람은 당연히 0명이었다.




  나는 어제 나의 첫 소설을 브런치에서 지웠다. 처음으로 악몽을 글의 세상에 초대했던 터라 보통 들뜨고 설렜던 것이 아니었는데. 수개월 후에 읽어본 첫 소설은 너무나도 형편없었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캐릭터의 색깔도 분명하지 않았고, 어디서 본 것들이 짜깁기되어 있었고, 대사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보다 스토리 전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개별의 사건들은 너무 매력적이고 캐릭터를 보여주기에 적합했다고 생각해서 더 그랬다.


  '에이 망쳤네. 새로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악몽으로 새로운 소설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소시오패스인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시오패스에 대한 조사도 철저히 하고 콘셉트도 잡았다. 역시나 모든 것이 수월했다. 그런데 영 글로 쓰기가 두려웠다. 이상하다는 걸 느껴서 그랬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바람을 불어넣은 장본인에게 뭐가 이상한 지 물어봤다. 


  "주인공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사건을 나열하는 것 같아."


  윽. 항상 칭찬으로 무장한 최측근에게서 너무 정답인 말을 들었다. 정말 팅!하고 전구가 켜지면서도 심장에 구멍이 나서 피가 다 새는 느낌. 기쁘면서도 슬펐다. 아니 사실 슬픈 마음이 더 컸다.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분명 완벽한 주인공이었는데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푸슈슉 죽어버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얄팍한 실력에 비해 너무나 두꺼운 자존심 때문이었으리라. 맘 같아서는 다 엎어버리고 싶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소설은 무슨 소설이야. 힘 없이 집에 돌아와 파일을 날려버리려는데 너무 아까웠다. 계륵이었다. 버리긴 아깝고 먹긴 싫고. 그래서 일단 놓기로 했다.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고, 나는 그 아무나임을.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은 세상에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또 할 거다. 그렇지만 훨씬 더 느리고, 훨씬 더 겸손하고, 훨씬 더 엉덩이 무겁게 써 볼 작정이다. 제2의 정유정에 급급해하지 말 것. 제1의 나, 그러니까 최소한 '글을 쓸 때 후련하고 즐거운 나'가 될 테다. 아뵤!


멈춰 ! 자만 멈춰 ! 기대 과속 멈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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