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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n 14. 2023

정신과 약 먹은 후기

공황장애 진정제 적응기 - 오늘의 공황

2023.4.30.(일)


  오래전 엄마에게 정신과 약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약 이십 년 전, 이러저러하게 불우했던 결혼 생활 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정신과를 찾았고 약을 처방받아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잠은 오지 않거나 엄마를 약 올리듯 잠깐 왔다 갔다. 약 용량은 늘어가고 엄마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축축 처져서 '의지'를 가지고 약을 끊었다고 했다. 대단한 의지이고 그런 삶을 버텨낸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정신의학과는 삶을 이겨낼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나 가는 곳인 줄 착각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은 나의 일이 되어봐야 아는 법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과 긴장과 불안과 공포는 나를 정신의학과로 이끌었다. 엄마의 말을 되새기며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나의 철저한 경계심에 비해 간단한 공황장애 진단과 간단한 약 두 알은 다소 허무한 감도 있었다. 약의 정체를 네이버 검색을 통해 알아내고,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도 찾아본 뒤에야 그 조그만 두 알을 목으로 삼킬 수 있었다.


  약을 먹은 직후 졸음이 쏟아졌다. 컨디션과 상관없는 졸음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미 알려준 터라 겁은 먹지 않았다. 사실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잠에 취하는 기분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현장체험학습 인솔 교사로 버스에 오르는데 발이 무척 무거웠다. 헛디뎌진 발은 내 코를 깨뜨릴 뻔했다. 1시간 이동하는 거리에 학생 안전과 상황을 신경 써야 하는데 그놈의 '의지'와 상관없이 졸렸다. 누군가 보든 말든 당장이라도 좌석을 뒤로 젖히고 코를 골며 자고 싶었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을 참고, 아이들이 체험을 하는 동안 나는 눈을 뜬 채 자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갑자기 공황발작 증세가 나타났다. 손발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뭔가 사고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깔깔대는 아이들 소리 속에 내 호흡을 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비상약을 꺼내먹었다. 비상약은 일정하게 먹는 처방약과 달리 불안이나 긴장이 심해질 때 먹으라고 준 또 다른 진정제였다. 약을 삼키고 버스에서 내렸을 땐 다시 종이인형이 되어 아이들을 하교시켰다.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싶었다. 평생 누구에게도, 무언가에게도 기대기 싫어하는 내가 고작 한 알의 약에 기대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생존의 욕구 앞에 누구나 무릎을 꿇는 법이다. 나는 병원 가기를 멈추지 않았고, 약도 계속 먹었다.


  졸림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공황발작도 서서히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 일기를 쓰고 난 후 다른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러고 내가 사랑하는 친구를 만났다. 내가 아픈 걸 거리낌 없이 알릴 수 있는 사람. 그 친구는 내가 안쓰럽다면서도 약에 취한 것 같은 차분한 나도 꽤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폭풍 같은 사람이었다. 뭐든지 급하고 후루룩딱딱 끝내고 싶어 하며, 그런 바쁨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그런 내가 폭풍이 아닌 잔잔한 산들바람이 되어버렸다. 말도 느려지고 바쁜 일들이 좋지도 싫지도 않다. 제일 좋았던 건 'To Do List'를 모두 끝내지 못해도 '괜찮아, 내일 하면 되지.'라는 마음이 든 내 모습이다.


머리는 안 차분하지만 마음은 차분한 상태였습니다


  몸이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당연한데, 마음이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본다. 나도 그랬으니 아주 나쁘다고 말은 못 하겠다. 그래도 아주 주관적인 후기로는 마음이 아플 때에도 적극적으로 약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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