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든 딸기가 제일 무거웠던 날
나는 공주다. 거친 제주 바람에 호밀빵이 되어버린 엄마는 나를 빵 반죽보다 보드랗고 하얗게 키웠다. 그 덕에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과일을 깎는 일이다. 손 아프게 깎아봐도 예쁘지도 않고, 뜨뜻한 과일을 먹자니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과나 배보다는 바나나, 딸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딸기는 사시사철 먹고 싶을 정도로 좋다. 가난한 시절에도 효심을 꺾고 사 달랬었다. 그래서인지 형편이 나아질 무렵부터 엄마는 딸기철이 될 때마다 생딸기를 가득 사서 내게 먹였다. 못다 먹은 딸기는 조물조물 주물러 꿀과 섞어 얼려두기까지 한다.
나는 가만히 그 호사만 누리다 사회에서 호되게 당했다. 공주가 아니라 바닥을 설설 기는 하녀가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딸기를 눈앞에 두고, 엄마를 흉내 냈어야 했다. 내 손으로 찬 물에 딸기를 씻고, 꼭지를 따고, 접시에 예쁘게 담아 나보다 공주, 왕자인 분들께 양보를 하자니 배알이 꼴렸다.
하얗고 보드라운 반죽 같던 내가 호밀빵이 되어가는 동안 엄마는 때 지난 무른 반죽이 되어버렸다. 할 일도 잊고, 집주소도 외우지 못하고, 뼈가 부러진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웠다. 내 할 일도 넘치는데 엄마가 모르고 잊는 것들까지 내가 기억해야 했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자면 곤혹스럽다 못해 짜증이 치미는 나쁜 딸이 되었다.
“왜요. 엄마. 나 바빠요. “
“미안. 딸기 가져가라고~”
까만 ‘봉다리’를 건네는 엄마가 참 바보 같았다. 몇 주 전에 딸기 먹고 싶다는 건 기억하면서, 혈압약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려하는 바보. 엄마는 바보야. 이렇게 주면 퇴근할 때 들고 가기 얼마나 번거로운데.
딸기가 참 크고 달았다. 대충 담아 먹으려다, 오랜만에 공주 대접이 받고 싶었다. 초코롤케이크를 두껍게 자르고, 시린 물에 잘 씻고, 꼭지를 따고, 반을 예쁘게 갈라 빵을 장식했다. 참 맛있었다.
어쩌면 내가 딸기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깎지도 않을 껍질도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예쁘게 손질해준 사랑이 오롯이 내 것이어서 좋아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