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밤과 나의 낮은 모두 치열하네요
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들이 있다. 지나치게 늦게 일어나서는 ‘당신의 낮과 나의 밤은 같다 ‘라든지, 비가 많이 와서 늦었다든지 같은 내 기준 ’게으른 행동‘들이다. 내겐 잘 시간에 잘 자고, 비가 올 것 같으면 좀 더 빨리 나오면 됐던 것들이다. 보통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발견한 행동들이라 더 그렇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내가 해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들이 생길 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신념 같은 고집을 피우거나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자기혐오를 하거나이다. 보통 전자를 선택하지만 더 큰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그 손해로는 만성피로, 번아웃, 지각으로 인한 비난 등이 있지만, 가장 큰 건, 고집을 피우는 내 자신을 또 '왜 이렇게까지 사냐'며 스스로 몰아세우는 버릇이다.
지난주도 손해를 감당할 뻔했다. 걷기 운동 약속에 지각할 걸 예감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끊지 못한 상황에 나는 급히 운동 약속을 미뤘다. 헐레벌떡 집에 뛰어가서 너무 지친 나머지 비가 올 것 같은 상황에도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먹구름 속에 비가 없기를 바라는 불길한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비가 거세게 내렸고, 같이 나온 걷기 메이트에게는 우산이 있었다.
또다시 두 가지 선택지에서 갈팡질팡하다 싫어하는 행동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도 잘 모르겠지만 자기혐오보다 당장 감내할 감기가 더 싫었던가 보다.
"남동생이랑 전 남친한테 편의점에서 우산 산다고 되게 뭐라고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걷기 메이트에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음을 털어놓았다. 일기예보를 봤으면 7천 원이나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집에 우산 많은데. 아까 걷기 약속이 있다고 할걸. 완전히 내로남불이군. 스스로를 또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때 걷기 메이트가 말했다.
"괜찮아. 그러면서 관대해지는 거지."
장난스레 웃으며 한 말이었는데 왜 그리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성이었다면 고백했을지도 모를, 내게만큼은 가장 다정한 말이었다. 그래. 관대해지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500원짜리 호떡을 먹으며 1000원짜리 핫도그를 먹는 동생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비가 많이 와서 늦었다는 학생의 죄송하단 말을 얼마나 당연시했는지. 엄마를 두고 일본여행을 갈 때, 가서 하루에 몇십만 원을 쓸 때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는지 생각한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당신의 밤과 나의 낮은 모두 치열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