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비싼 곰인형 사주세요
어릴 적 엄마가 뭘 사준다 그러면 의사와 상관없이 고개부터 젓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습관을 엄마는 너무 잘 알아서 내가 뭘 바라만 보고 있어도 사주고 싶어 한다. 딸 나이 서른이 되어서도 핑크빛 곰인형을 사줄 만큼. 서른 살의 나는 이제 일부러 거절하지 않는다.
결핍은 여러모로 나의 무기였다. 내가 이글이글 타오르게 하는 장작이었고, 진심 어린 친구와 이어주는 다리였고, 사랑하는 이에게 생채기를 내어도 되는 무지막지한 권리였다. 이러니 나는 나의 결핍들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핑계 삼지는 말아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같은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병휴직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알 바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할 정도인데 휴가를 즐기는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전달당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병가를 내며 눈치를 보고, 조퇴를 해야 하는 사유를 구구절절 부끄러이 전하고, 힘든 일을 하면 안 된다 부탁하던 내가 모두 핑계 같아졌다. 아. 이제야 깨닫는다.
결핍은 무기도 핑계도 아니어야 한다. 이글이글 타오르지 않아도 되며, 진심 없이도 진심이 닿을 때가 있으며, 사랑하는 이에게 마구 휘둘러서도 안된다. 인형이 갖고 싶다고 엄마에게 졸라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