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얘기 아님 유노윤호 얘기 아님
볼때기나 이마에 여드름이 올라오면 가만히 놔두는 것이 최선임을 안다. 그러기엔 우리 집 화장실 조명은 너무 적나라하다. 스칠 때마다 아픈 요놈 새끼를 얼른 내 얼굴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다. 채 여물지도 않은 여드름을 손이며 면봉이며 총동원해 마구 쥐어짠다. 초반엔 여드름이 아닌가 싶을 만큼 아무런 성과가 없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힘껏 꼬집으면 다들 알다시피 톡! 한다. 내 피부의 입장과 상관없이 나는 개운하다. 거울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는데, 세상에, 볼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차라리 여드름을 가진 내 볼이 훨씬 나았다. 커다랗게 멍이 든 얼굴은 거울을 볼 때마다 울상 짓게 했다. 아침에 컨실러로 열심히 가렸지만 마스크에 몇 번 스치고 나니 말짱 도루묵이었다. 얼굴 탓인지 직장에서의 하루도 정말 여드름 같았다. 그 사이 내 호르몬을 열일했는지 저녁 밥숟갈을 드는데 죽고 싶다는 충동까지 들었다. 밥숟갈이 왜 그리 무거운지. 우울함이 내 마음 온 구석에 퍼렇게 번졌다.
못되고 한순간뿐인 그런 충동을 애써 꾹 누르며 내 눈은 TV를, 휴대폰을 방황했다. 그러고는 여느 날처럼 인스타 눈팅을 하다 아이유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됐다. 아이유를 싫어하진 않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어쩐지 그 날따라 눈이 가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속이 꼬일 대로 꼬인 내게 저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원래는 그랬다. 인생은 타이밍, 극복도 타이밍이다. 글을 쓰기엔 그만한 열정과 기력이 없었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엔 밤이 너무 늦었다. 하필 오늘 저 멋진 아이유의 말이 내게 딱 맞는 처방이었을 뿐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유튜브에서 에어로빅을 검색했다. 노래에 맞춰 꽤 우스꽝스러운 동작들을 무리 없이 따라 했다. 그러다 거울 안의 나와 눈 맞추는 순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 팔다리가 분리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열정적인 춤사위가 끝이 났고, 나는 건망증에 걸린 듯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숨이 안 쉬어질 만큼 이유 없이 우울할 때가 있다. 사실 이유가 없진 않은데 굳이 이유를 찾으면 내가 더 초라할 것 같아서 기분 탓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런 기분을 안고 잘근잘근 곱씹으며 어떤 맛인가 곰곰이 느껴보길 즐겼다. 그 과정엔 글쓰기가 있었고 그 덕에 일기장만 봐도 그 날짜 그 시각에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데자뷔처럼 생생하다. 어쨌든 그러고 나면 어딘가 후련한 맛이 있었고 난 나름대로 우울함을 잘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 그런 시점이 오면 난 다시 일기장을 들춰봤다.
내 속은 내가 긁었다. 내가 긁은 탓에 자꾸 부스럼이 생겼다. 우울함을 떨쳐내기는 커녕, 우울함을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두고두고 꺼내본 덕에 나는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여드름도 관심 주지 않고 가만히 두었으면 괜찮았을 것을, 괜히 쥐어짜고 괴롭혀서는 시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말이다.
여드름 짜다 얻은 인생의 진리라기엔 지금의 깨달음이 모든 순간에 정답은 아니겠지만, 오늘만큼은 100점짜리 처방이다. 더불어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준 아이유'님'과 우울할 때 나를 괴롭혀준 여드름에게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