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보일 Oct 11. 2020

'소설 쓰고 있네'

나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 나는 작가 지망생도 아니고, 문예창작과 나 국어국문학과를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쓰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으냐 묻는다면 꿈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생한 빛깔의 꿈을 꾼다. 그중에서도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시점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꾸는 꿈은 기가 막히게 재밌었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시공간에서 초능력을 쓰기도 하고, 살인자에게 쫓기기도 하고, 외계인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일어나자마자 친구나 가족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시큰둥하거나 개꿈이라거나 하는 반응이 전부였다. 나는 정말 재밌었는데, 안타깝게도 재미있게 말하는 재주가 없었다. 



이후로는 휴대폰 메모장에 서둘러 생각나는 만큼 꿈을 묘사했다. 그리고 모닝 쾌변을 하며 되새겨보면 꽤 흥미진진했다. 늘 마음속에는 '이거 책이나 영화로 나오면 참 좋겠다.'라는 말이 떠다녔다. 나의 최측근은 소설을 써보라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내가 어떻게 정유정 작가처럼 글을 써. 소설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재미있었던 나의 메모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말았다. 


그러다 아내의 맛을 봤다. 우리 엄마는 아내의 맛을 즐겨본다. TV가 하나라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즐겨본다. 그러다 홍현희 제이쓴 부부가 창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이 찾아간 재무설계사가 하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이 시국에 창업하려고 생각한 게 대단하다고. 동조하며 걱정하는 두 사람에게 재무설계사는, 저축만 해서 노후 보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서 사업은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나는 나를 위해 뭘 투자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매일 하루를 버텨낸다고 표현하면서, 이 지루한 삶을 견뎌낼 수 있을지 두려워하면서 매일 저축만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그저 만만한 에세이로만 표현하면서 이거면 족하다고 애써 위안하고 있었다. 


뭐든 시작해야 했다. 무턱대고 메모패드에 휘갈겼다. 꿈속 인물의 이름과 나이를 정해줬다. 그리고 꿈속 장면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을지 상상했다. 내가 꿈속 '걔'에 빙의되어 꽤 오글거리는 대사들도 주고받았다. 맞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소재에 대한 조사나 필사는 하지 않았다. 소재에 대한 조사를 하면 좀 더 생생한 글을 쓸 수 있고, 필사를 하면 좀 더 그럴듯한 서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그냥...... 하기 귀찮았다. 조사나 필사를 먼저 하다가 어렵다며 주저앉을 내가 뻔히 보였다. 주식투자도 이것저것 재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내가 이번에도 타이밍을 놓칠까 두려웠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생각이 나는 대로 마구 쓰고 있다. 자기 전에 쓴 글을 읽어보면 고칠 것 투성이, 말이 되지 않는 것 투성이,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마음 한편에 드는 뿌듯함은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막 '소설 쓰기'로 나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딘가 내놓을 생각조차 못할 만큼 부끄럽다. 그렇지만 실패해도 잃을 것이 약간의 창피함뿐이라는 것에서 밑져야 본전인 게임이다. 빈곤한 내 통장과는 다르게 내 머릿속은 부유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꿈 꾸러미가 나온다. 총알이 두둑해서 그런지 매일 퇴근 후면 노트북 앞에 앉기 바쁘다. 


세상에 모든 이들이 밑져야 본전인 자신만의 투자를 찾는다면, 버티는 하루가 아닌 기다려지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오글오글~ 키키키)

작가의 이전글 엄마랑 루미큐브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