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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Oct 22. 2020

저도 사실 선생님 옆에 서고 싶었어요

선생님 곁을 맴도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아이

"학교 가면 선생님 눈만 바라보면 돼!"


빨간 책가방을 매고 처음으로 학교로 가던 날 엄마가 내게 한 조언이다. 지금의 8살 아이들보다 더 어렸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수행했다.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도, 다른 친구들이 선생님께 놀아달라고 조를 때에도 나는 가만히 앉아 선생님 눈만 봤다. 선생님은 그런 내게 태도가 바른 아이라며 다른 선생님 앞에서 칭찬해주셨다. 1학년 생활이 끝나도록 나는 선생님 눈만 바라봤다. 결실은 '착한 어린이상'이었다.


3년 뒤의 미술 시간이었다. 제 아무리 선생님 눈만 보고 열심히 따라 해도, 나는 손이 느린 아이였다.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느라 종이가 너덜너덜했다. 내가 색칠이 삐져나갈까, 종이가 찢어질까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친구들은 작품을 완성했다. 얼기설기 대충 자르는 것 같았는데 당당히 '저 잘했죠?'라고 뻔뻔스레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그런 작품을 보고도 잘했다고 했다. 내 작품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케치는 걔보다 내가 잘했는데. 슬며시 도화지를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수업이 모두 끝났다. 내가 다 못 그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몇 친구들이 가방을 내려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숙제를 하지 못한 친구들이다. 선생님은 불호령을 내리면서도, 친구들의 어이없는 말대꾸에 피식 웃으시곤 했다. 슥슥거리는 비질에 '넌 청소도 한번 안 해봤냐'며 빗자루를 들고 와 함께 청소하는 모습이 썩 즐거워 보였다. 내 마음은 꼭 물감으로 뿌옇게 흐려진 물통 같았다. 내가 더 착한 아이인데 어째서 선생님은 나쁜 아이들과 더 친하게 지내시는 걸까.


열심히 깨작거린 그림은 내가 보기에도 영 형편없었다. 자신 없게 건넨 그림을 받아 든 선생님께서는 "고생했어. 가방 챙기고 조심히 가."라고 하셨다. 몹시 서운했다. 잘했다는 없었다.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건네던 장난을 내게는 치지 않으셨다. 


나도 선생님의 책상에 붙어 선생님이 컴퓨터로 뭘 하는지 보고 싶었다. 나도 대충 색칠한 그림을 들고 칭찬해달라고 조르고도 싶었다. 나도 선생님께 말장난을 걸고 딱밤도 맞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입술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 무서운 습관은 어른이 된 지금, 마음속에 더욱 모나게 자리 잡고 있다. 잘했다, 예쁘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그 말을 해주지 않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 나는 아직도 선생님 곁을 맴도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이일 뿐이다.


저요 저요! 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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