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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May 02. 2020

네모난 것들 속에서

우리는 둥글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각지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유독 유난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부드러운 것에 집착했다. 당시 나는 속옷으로 입던 순면 내복을 옷 밖으로 조금 꺼내 만지작거리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뽀얀 색감의 부드러운 작물의 짜임을 부비적거리다보면 시끄럽던 마음이 조금씩 고요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집에서만 이런 게 아니라 길을 걷거나 수업을 들을 때도 항상 내복을 만졌다는 것이지만.  


 좀 더 머리가 큰 후에도 이 보기 흉한 습관을 고치지 못하자, 내 모친은 순면 내복을 아예 버려버리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리셨다. 내복을 만지지 못하게 된 나는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머리카락을 결대로 비비는 행위를 선택했다. 이마저도 탐탁지 않았던 모친은 지속적인 제재를 가했지만, 이 습관은 지금도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고민이 생기거나, 우울하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분이 상했거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거나 깊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한쪽 머리카락을 비빈다. 특히 오른쪽 머리카락을 엄지와 검지 사이로 비비곤 한다. 방금 ‘비비곤 한다’라는 구절을 썼더니 비비고 만두가 생각났다. CJ 생각보다 마케팅 맛집이군. 아무튼, 이런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약한 현자타임이 찾아오는데 도저히 이 행위를 대체할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이 모진 것 투성이라 머리카락 말고는 도저히 의지할 부드러움이 없는 탓일까.   





 요즘 들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가 하나 있다. 아마 초등학생의 신분을 거쳤던 사람이라면 최소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인데, 최근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촌 동생에게 물어봤더니 아직도 선생님이 매일같이 틀어준다더라. 가사를 보면 여러분도 흥얼거릴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노래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
의식도 못 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걸 /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그룹 화이트(W.H.I.T.E)의 노래 <네모의 꿈>. 이 그룹은 이름마저 철학적이다. ‘We Have an Ideal Taste of Enjoyment’, 가장 이상적인 즐거움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란다. 1996년, 내가 태어난 해에 발매된 이 곡이 아직까지도 유명한 이유는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탓도 있겠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느껴지는 가사의 무게 탓이 아닐까. 1절 가사만 보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네모난 것들은 형식적이고 암묵적인 틀처럼 느껴진다. 사회가 제공하고 요구하는 모든 것들은 각지고 네모난 것에 반해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부정적인 네모난 것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긍정적인 둥근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듯한 모순적인 메시지가 느껴진다. ‘발랄한 멜로디와 상반되는 냉소적 시선이 돋보이는 사회 비판적 노래’. 내 기억 속의 <네모의 꿈>은 이런 노래였다.   






 이번에 노래를 찾아 다시 들어보니 2절도 있더라. 희한하게도 2절 가사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2절의 가사를 읽었을 때는 1절의 가사를 접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네모난 아버지의 지갑엔 네모난 지폐 / 네모난 팸플릿에 그려진 네모난 학원 /
 네모난 마루에 걸려있는 네모난 액자와 네모난 명함의 이름들 / 네모난 스피커 위에 놓인 네모난 테이프 /
네모난 책장에 꽂혀있는 네모난 사전 / 네모난 서랍 속에 쌓여있는 네모난 편지 /
이젠 네모 같은 추억들 / 네모난 태극기 하늘 높이 펄럭이고 / 네모난 잡지에 그려진 이 날의 운수는 /
희망 없는 나에게 그나마의 기쁨인가 봐 /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어느새 우리의 기억과 추억은 모두 네모난 것들이 되어버렸고, 이를 넘어서 네모난 것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기도 하고 국기를 네모난 형태로 만들기까지 한다. 여전히 우리의 주변은 네모난 것들로 가득  있는데, 아직도 잘난 어른은 둥글게 살라 조언한다. 순간 내가  노래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세상에서는 네모난 것이 정상적인 존재가 아닐까. 네모난 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인간사회의 규칙이며, 오히려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나는 평범한 너희와는 다르고 잘난 존재다고 외치는 가면을  위선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둥글지만 부속품은 네모난 것들뿐이니, 오히려 세상을 구성하고 이끄는  네모난 존재들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는 둥글게 살아야 하는  아니라 각지게 살아야 하는  아닐까.  






 결론적으로 내 머리카락은 이 각진 세상 속에 내게 남은 유일한 둥그런 존재인 셈이다. 온갖 네모난 것들에 찔린 상처로 뒤덮인 나를 위로하는, 치유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안정감을 주는 유일한 존재. 나는 앞으로 내 머리카락을 좀 더 소중히 대할 생각이다. 이 미약한 둥그럼마저도 날 떠나지 못하도록.  


 이와 동시에 내 머리카락은 이 각진 세상 속에 내게 남은 유일한 위선인 셈이다. 굳건히 자리 잡은 온갖 네모난 것들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나는 네모난 것과는 다른 존재이며 괜찮게 살고 있다는 연막탄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나는 앞으로 내 머리카락을 좀 더 소중히 대할 생각이다. 이 얇디얇은 가면마저도 날 떠나지 못하도록.   


 갑자기 어느 날 내가 삭발을 감행한다면, 그날이야말로 부드럽고도 둥그런 존재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굳센 내가 된 날일 테다. 혹은 미약한 둥그러움마저 포기할 정도로 상처 입은 내가 된 날이거나. 전자든 후자든 그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고대해본다. 그날만큼 새로운 내 모습을 마주할 순간은 또 없을 테니.   




이 네모난 것 속에 나는 무엇을 기록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자연은 각지지 않았다.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 중인 3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 다른 원고나 서평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들은 다붓한 공간 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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