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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Dec 30. 2019

삶은 궤도가 아니라 궤적

2019년과 2020년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어떤 차이인가.


한 해를 궤도가 아니라 내가 일궈나가는 궤적이라는 생각이 든 뒤, 나는 자연을 깊숙이 들여다보아 지구가 공전하며 23.5도의 자전축으로 내가 사계절의 개념 안에 살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내 삶,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유일의 틀이거나 판이 되진 않는다.


오늘이 12월 30일이라는 것이 중요한가. 오늘은 오늘이다. 우리에게는 12월 31일에 마감하고 1월 1일에 새 시작을 한다는 공동 관념이 있지만, 그 관념을 갖고서도 매번 새로 시작하고 끝내면 되지 않는가. 12월을 마무리하는 달로만 보내기에는 아깝다. 그런 생각이 든 뒤로부터 연말의 상징성이 예전보다 옅어졌다. 1월부터 12월까지 돌고 돌아 또 1월이 오는 게 아니라 그것도 그저 그려나가는 궤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한 해에 이루지 못한 것들과 다음 해에 이뤄야 할 것들에 매이지 않는다. 오늘을 오늘대로 살아가야겠다는 확신만 강해진다. 되돌아봐야 할 때가 오면, 언제고 오늘을 기준으로 1년을 돌아보면 된다. 그래서 10월에는 그동안 읽어온 책의 궤적을 돌아봤다. 5월에는 건강을 되돌아보고, 자기반성은 사실 매일 한다.


내가 처음 죽음이라는 개념을 맞닥뜨렸을 때, 내일 죽어도 아깝지 않은 하루를 살라는 말이 아주 와 닿지 않았다. 명사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조용히 외친다는 그 말, 나는 죽는다,  아주 멀어 보였다. 내일 죽을 리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막연했기 때문이다.

생을 궤도로 보고, 죽음을 12월 31일이라치면, 아직 나는 봄을 통과하니까 너무나 먼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삶이 궤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하루가 매우 소중해진다. 돌고 돌아오는 날이 아니라 오늘 그 자체로 소중한 날이 되었다. 그러니 오히려 죽음의 유한함이 실감 난다. 또 돌아오지 않고도 끝이 나 버릴 수 있다는 생각. 하루가 쌓여 한 주가 되고 그것이 또 샇여져 생을 이룬다는 관점이 더욱 강화된다. 둥글게 말아놓은 원형의 실이 툭!하고 끊어져 길게 늘어진 이미지로 다가온다.



해방감이 든다. 세상이 환해지는 해방감을 가진채 한 해 고마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달했다.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 내게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 내 곁에 있어준 사람 모두에게.


2019년 12월 30일과 2020년 1월 1일은 같은 하루다. 이틀 전에 하지 못한 일로 작년에 끝내지 못한 일이라며 괴로워하지 않는다. 칼로 자르는 2019년이 아니니까.



2020 연하장




나의 2019년, 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언제나 소중한 고양이 구름이와 올해 낸 책, <공부쟁이의 궤도 밖의 삶>. 그 책이 나온 최인아책방.
제주도 환상 자전거 종주와 한라산 등반.
5km 마라톤 완주와 조깅을 처음 시작했던 마리나 베이, 아직 궁금한 게 많은 싱가포르.
물리학을 다시 좋아하게 되어, 갔던 천문대에서 본 오리온자리. 매일 올려다보는 달. 그리고 그 기반인 책들.
내가 아주 눈여겨보았던 나무. 나무. 나무. 자연에 가서 손을 모으고 바람과 소리를 듣던 시간을 담았다.


이런 설명글이 없어도 시간이 지나도,

나는 이 그림을 보고서 숨겨진 스토리를 읽으며 하하호호 웃음 짓지 않을까.


감사했고 감사했다.





감사해요


연하장을 받은 분들이 복을 많이 보내주셨다. 감사할 만큼 가득 찼다. 에너지 듬뿍 받은 하루들이 이어지고 있어 생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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