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부터 응원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내 주변에서 너가 가장 열심히 잘 살아’
‘난 한번도 너의 인생에 대해서 걱정해본 적이 없어. 알아서 잘 할거라고 믿으니까.’
참 과분하게도, 때로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를 믿는지 의심스러울만큼
적극적인 말과 지지로 응원을 보내는 감사한 친구가 있다.
나조차도 내 인생에 대해 잘 모르겠는데
이 친구는 어디서 그런 확신을 받는 건지
내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걱정 말라며, 잘할 수 있다며
내 수많은 고민을 한 순간에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덕분일까,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래 난 잘 할 수 있어, 한 번 해보는 거지 뭐’라는 이유없는 믿음과 용기로
무언가를 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재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무모하고 용기있게 살았을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도 모르게 가능성이 있을까? 괜찮을까? 진짜? 하고 재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았다.
평온한 일상 속에 녹아내린 솜사탕마냥
나쁘지 않은 상태를 지속하고 있음에 별 생각없이
그렇게 가만히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무언가를 바꾸고, 이루고 싶다면
당연하게도 그에 맞는 행동이 있어야 함을 머리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따뜻해져가는 물 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만히 있어도 괜찮겠지’ 라고
위기가 점점 다가옴에도 가만히 있는 개구리 같다.
그렇기에,
그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주는 친구가
‘그래서 너 요즘 뭐하는데’
라고 했을 때 움찔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왜, 왜 나한테 뭐라고 해? 나 응원 안해줘?’
라는 투정이 목끝까지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정말 궁금함에, 무심코,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음에도
스스로가 은연 중에 알고 있기에 긁혔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나도 모르게 움찔한 그 날로부터
내 마음 속 한 켠에 남아있던 한 문장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점점 먹어가는 나이도,
갈 길 잃은 직업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 친구가 무한한 응원을 보낼 때의 난,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거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나중에 이걸로 이런 것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꼭 빛나는 미래가 아닐지라도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보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의 난,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
라는 문장을 앞세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생각만 하고 있었다.
‘행동’의 차이였다.
이루는 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내가 응원을 받고 싶다면,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그 과정
목표를 말하고, 성취하기 위해 움직이는 그 행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내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응원을 해주고 싶다면,
무엇부터 해야할 지 배우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