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들으면 움찔하게 되는, 쉽게 말해서 발작버튼과 같은 문장이 있다. 가족, 연인, 삶에 대한 가치관, 정치 등 다양한 주제, 요소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러한 문장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었다.
다양한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나에게, 이것저것 여러 것을 배우고 싶은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나에게 "선택과 집중"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럼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하는 거지? 만약 그 말대로 한 가지를 선택하고 집중했는데 그 길이 망하면 어떻게 하지? 그게 옳은 일이라고,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매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기분이었다. 마치 바다에 사는 고래한테 산 위에서 사는게 맞는 거야라는 문장을 들은 기분이었다.
그걸 다 하기에는 시간이 없을 거야
꾸준히 하기에는 힘들지 않겠어?
하나를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이유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그럼 내가 시간을 만들면 되지, 꾸준히 하면 되지, 난 할 수 있어.
그 어린 마음에 만든 아집에 따라,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학창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서 평일에는 새벽 3~4시까지 무언가를 하다가 7시에 일어나서 학교를 가는 삶을 반복했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출퇴근 길에는 버스, 지하철 안에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했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2차 출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새벽 2시 넘어서까지 글을 쓰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삶을 반복했다.
잠은 죽어서 자면 되는 거지
하고 싶은 게 많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해
아득바득의 정신으로 그렇게 몸이 병들어가는 것을 외면했다. 몽롱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 정상인 줄 알고 카페인을 들이부었고, 남들이 1년 동안 한 두 번 아플 때 수십 번 두통과 감기, 컨디션 저하로 고생했다.
그냥 몸이 아픈 거야, 체력적으로 약한가 보지
이유가 명확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기 위해서, 틀리다는 말에 우리는 다른 거지, 내가 틀린 건 아니야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미약하지만 내가 이루고 가진 것들이 많아짐에 따라서 한계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않은 만큼, 내 면역력은 바닥이었다. 누구보다 쉽게 아프기 시작했고, 더 이상은 안된다는 듯 잠을 덜 자면 몽롱한 머리에 효율성이 떨어졌다.
포토메모리, 과잉기억증후군이라고 생각할 만큼 사건, 그때의 상황, 감정, 참여자에 대해서 다 기억했던 내 기억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외면했던 "나"에 대해서 챙기고자 했더니 더 이상 빈틈을 만들고자 해도 만들 수 없는, 나의 시간에는 한계가 있음을 부딪치고 말았다.
아 이래서,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하는 거구나
아무리 욕심껏,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고 싶어도 사람이 잠을 자야, 밥을 먹어야 생활이 가능하기에 이런 필수적인 시간도 고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미친 척 살 수 없는 거구나.
인정하기 싫은 말을 인정해야 했을 때 뼈아팠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한계를 인정했기에, '포기'라는 것이 나약하지 않은 필수적인 선택지임을 깨달았을 때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절대 하찮아서 그런 것이 아닌, 내가 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포기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고 이것은 나약하거나, 미숙하거나, 부족해서 생긴 일이 아닌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시간은 유효함을, 그저 흘려보내서는 절대 안 되는 유일무이한 자산임을 다시 한번 내 몸 안에 각인하는 계기였다.
좋아하는 게 많다면 그중에서 더 좋아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자. 싫어하는 것을 덜 하는 방법은 없는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어떻게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시스템적으로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