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비판: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엄연히 다른 뜻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하면서도 정말 나를 위해서 하는 소리가 맞을까 의심스러울 때도 있고 정말 내가 남을 위해서 하는 소리가 맞을까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소리는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무차별적인 폭언이 되기도 하고, 쓸데없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내 사정을 모르면서 나를 비난하다니’로 오해받기도 쉽고 ‘저 꼰대 또 시작이네’라며 사회적 언어에 내 애정이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밟히기도 한다.
구분이 어려워서일까 혹은 비난이든, 비판이든 그 소리가 가슴 속에 아픈 흔적들을 남겨서일까?
어느순간 우리는 우리에게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쓴 소리를 하던 사람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
행복한 세상이 되어서 일까? 그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불만에 대해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 소리가 실없는 소리가 될까봐, 소리소문 없이 인터넷 세상에 알려져 내가 뜻하지 않은 바로 오해받을까봐, 앞뒤 사정에 대한 고민 없이 그 문장들로 나를 평가하며 난도질 당할까봐, 수많은 이유로 혀 밑에, 턱 밑에 꾹 눌러 참는다.
동시에 참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은연 중에 누군가 나에게 쓴 소리를 해주기를 누군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소리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듣고자 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서로의 격차감은 점점 커진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어떤 것이 도움이 될 지는 정말, 솔직하게도 잘 모르겠다.
다만, 건강한 비판과, 비난의 차이를 사람들이 잘 구분할 수 있기를 나에게 필요한 것은 비록 매우 쓸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도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