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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채 1호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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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Jul 28. 2021

시작은 조금 늦었지만, 셀럽이 될 거예요!

이병현 님의 지갑 인터뷰 - 1

인터뷰이의 지갑

제가 대학교를 좀 늦게, 22살 때 들어왔거든요. 그때 어머니께서 사주셨어요.


어머니가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주머니에 지갑 하나 정도는 있어야 신분증과 돈을 차곡차곡 잘 정리해서 깔끔한 남성, 깔끔한 대학생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지 않겠냐. 언제까지 칠렐레 팔렐레 주머니에다 꿍쳐 둘 거냐. 그러면 여자들이 싫어한다.” 진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웃음)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고 다니고 있어요. 한 10년은 넘었는데 그것치고는 깔끔하지 않습니까?


(웃음) 그러면 어머니께서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신 거네요? 깔끔한 남성이 되라는 의미에서.


그렇죠. 어머니께서 깔끔한 걸 엄청 좋아하세요. “남자가. 어? 딱 너의 실루엣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옷을 입고, 열심히 운동해서 엉덩이도 탁 업이 돼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러세요. “네가 정우성 같이 생겼으면 그래도 된다.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그렇지만 넌 그게 아니다. 너는 깔끔함과 내면으로 승부해야 된다.” 그런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폭소) 그런데 되게 의외인 게, 이렇게 들어보면 어머님은 되게 깔끔하신 걸 선호하시는데 병현님은 뭔가 톡톡 튀는 느낌이에요.


톡톡 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하 모르겠어요. 이게 많이 얌전해진 거라서. 대학생 때는 정말 와… 헤어스타일이나 옷이나 진짜 별의별 거를 다 해봤어요.


제가 06학번인데 대학교 1학년 때, 그때 스키니진을 아무도 안 입었거든요? 근데 제가 그 당시에 일본 패션 사이트를 보니까 일본 남자애들이 젓가락 다리에다가 쫙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나오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한 3월 초에 그런 바지를 사서 입고 다녔는데, 다들 손가락질하고 그랬어요.


“야 그거 피 통하냐?”부터 시작해서 여자 선배들은 너무 부담스럽다고 막… 근데 나중에 GD가 입고 다니니까 다 따라 하더라고요. 이래서 다 유명해져야 되는구나. (웃음) 전 제가 되게 유명해졌으면 해요. 셀럽이 되고 싶거든요.


셀럽이 되고 싶으신 이유가 있나요?


딱히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관종 기질이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내가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이 조금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점점 더 강해져요. 이렇게 내 모습이나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 사람한테 영향을 좀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생겼던 것 같아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음… 그걸 얘기하기 전에, 제가 매사에 좀 적극적인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체구가 작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키 순서로 번호를 매겼는데 그때 저는 2번 뒤로 넘어간 적이 없거든요. 무조건 1번 아니면 2번이었어요. 제일 작았어요.


그래서 유치원 때도 괴롭힘을 많이 당하고 초등학교 1, 2학년 때 특히 진짜 괴롭힘을 많이 당했어요. 애들이 등교하는데 뒤에서 따라와서 뒤통수 때리고, 신발주머니 뒤져서 다 끄집어 내놓고. 집에 가려고 할 때 끌고 가서 때리고 괜히.


그때 ‘그러면 내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제가 터득했던 게 있어요. 2학년 2학기 때 반장이 되고 선생님이랑 같이 붙어 다니니까 그렇게 괴롭히던 애들이 저를 안 따라오더라고요. 그건 확실하게 기억나요.


그래서 그 후부터는 뭐가 있다고 하면 “선생님 저 할게요.” 해서 다 했던 거예요. 그랬더니 애들이 절 괴롭히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니까 안 괴롭히는 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내내 반장을 했어요. 무슨 경시대회 있으면 무조건 다 나갔고요. 그러다 보니 ‘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눈앞에 있으면 일단 해봐야 하는 거구나. 해보면 나한테 분명히 좋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아마 그런 경험이 쌓여서 지금까지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스케일 크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에너지를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뭔가 내가 통제하고 싶고,
영향력을 미치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이거는 제가 못 놨던 것 같아요.

일단 먼저, 이 문화상품권에 대해서 여쭙고 싶었어요. 요즘 이거 잘 안 쓰잖아요. 왜 있는 거예요?


한 5년 전에 어떤 지역 축제에 갔는데, 거기에서 제기차기해서 받았어요. 그냥 제기차기만 좀 하면 문화 상품권을 준대서 찼는데 2등을 한 거예요. 그땐 제기가 되게 잘 됐어요. (진지하게) 근데 1등 하셨던 아저씨가 제기를 쉰두 개를 차셨어요. 제가 그거는 못 이겼어요. 아직도 기억나. 쉰두 개였어. (웃음)


그런데 5년 전에 받은 거를 왜 아직도 안 쓰신 거예요?


그때 다섯 장을 받아서 친구 하나 주고, 두 장은 제가 책 사는 데 썼어요. 나머지는 잊고 지내다 보니 기한이 지나 버렸네요.


보통 게임에 많이들 쓰지 않나요?


게임을 잘 안 해요. 특히 총 쏘는 게임인 FPS나, 막 실시간으로 해야 하는 거는 싫어요. 왜냐면 현실에서도 워낙 긴장하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은데, 그런 게임은 게임에서까지 너무 몰두하고 긴장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게임은 약간 ‘턴’이 있는 거. 그니까 내가 전략을 짜서 내 것 다 해놓고 턴을 넘기면, 컴퓨터가 알아서 다 하고 다시 내 턴이 돌아오는 거. 예를 들면 ‘삼국지’나 ‘풋볼 매니저’ 같이 내가 전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을 했었어요.


전략을 짜고 시스템을 만드는 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반대로 스트레스받는 건 어떤 게임이에요?


막 ‘스타크래프트나’, ‘롤(리그 오브 레전드)’, ‘배그(배틀 그라운드)’ 이런 거. 전 즐거워지려고 하는 게임에서조차 왜 그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배그 같은 경우에는 계속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야야!!!!! 도와줘, 도와줘!!” 그러면 막 짜증이 나요. 이 씨 내 것 하기도 벅찬데 뭘 도와줘. 저는 ‘일단 각자 알아서 잘 큰 다음에 서로 합쳐서 이기면 되잖아?’ 약간 이런 주의인데, 그런 게임들은 너무 정신이 없어요.


근데 왜 전략 짜는 거는 스트레스 안 받을까요? 그것도 머리 써야 하는 거잖아요.


전략을 짜는 건 내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놓고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잖아요. 내가 적을 좀 더 느긋하게 관망하면서 전략을 짤 수 있어요. 저는 약간 큰 그림을 보고 싶어 해요. 제가 직접 큰 그림을 그려보면서 어느 정도의 인풋을 넣으면 어느 정도의 아웃풋이 나올지, 이런 게 그려져야 해요, 저는.


어렸을 때 반장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셨던 경험들이 이런 통제 욕구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그런데 계속 반장을 하긴 했지만, 사실 제가 고등학교 때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


질풍노도의 시기에 반장을 하셨다고요?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 (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랑도 트러블이 엄청 많았고… 선생님 입장에선 이 새끼가 반장을 한다고 해서 했는데 적극적이지도 않고, 혼자 있고. 근데 지가 뭐가 필요하다 싶으면은 갑자기 나와서 하려고 하니까 기회주의자, 약간 이런 식으로 비쳤던 것 같아요.


그때는 뭘 시키면 억지로 하긴 했어요. 반장이 해야 할 것들을 하긴 하는데 정말 만사가 다 귀찮은 거예요. ‘내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걸까, 좋은 대학에 가면 뭘 할까?’에 대한 현타가 왔어요.


상황적인 이유는 없었을까요? 단지 사춘기여서가 아니라 뭔가 상황적인 변화가 있었다던가.


그런 거 아닐까요? 중학교 때까지는 요만큼만 공부해도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면, 고등학교 가보니까 그게 아닌 거야. 일단은 외고 입시에 실패했어. 그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는 실패인데, 나보다 내신 안 좋았던 애는 외고를 갔어. 그런 걸 보니까 ‘뭐야. 이렇게 공부해 봤자 소용없는 거야?’ 이런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니까 그것도 신기한 거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제 본바탕엔 그게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내가 통제하고 싶고, 영향력을 미치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이거는 제가 못 놨던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방황을 끝내게 되셨나요?


결국 고 3 수능 때 시험을 제대로 보질 못했어요. 막 졸았어요. 그리고 수능 끝나고 한 두세 달은 알바하고 막 놀고 이러다가 ‘이제 할 것도 없는데 수능이나 다시 보지 뭐.’ 이러면서 학원에 등록했는데 그 두 번째 수능도 솔직히 되게 안 나왔죠.


그래도 뭐 어떻게 점수 맞춰서 대학에 갔는데 대학 동기들의 모습이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이랑 똑같은 거예요. 지식의 전당처럼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학문에 관해서 토론하는 걸 상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때 문득 ‘내가 4년 동안 여기서 얻는 게 뭐지?’ 싶어서 그다음 날에 바로 부모님께 얘기도 안 하고 엄마 아빠 도장을 몰래 훔쳐서 자퇴했어요.


2005년에 바로 그렇게 자퇴를 하고 재수할 때 다녔던 학원 선생님께 찾아가서 “선생님, 저 진짜 더 이상 무의미하게 사는 게 별로인 것 같아서 다시 한번 공부해보고 싶은데 지금부터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올 수 있을까요?”라고 상담을 드렸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보통 “할 수 있어!” 이러시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왜 나한테 물어봐? 네가 열심히 하면 당연히 잘 나오는 거고, 작년처럼 하면 당연히 안 나오는 거지, 인마.” 이러셨는데 그게 오히려 자극이 되는 거예요.


그 후에 부모님께 자퇴했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도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그래도 얘가 자퇴할 정도면 뭔가 생각이 있어서 했겠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게 다행이라고... (웃음)


그때 부모님이 “야, 그럼 학원비는 어떡할 거냐?”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가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던 때였어요. 그런데도 저는 “좀 도와주세요.” 그랬던 거죠.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진짜 불효자식 아니에요? 그리고 학원에 가서 당돌하게 “선생님 저 무조건 1등 반에 넣어주세요. 저 서울대 갈 거예요” 이랬어요. 그때 공부를 다시 할 때는 진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방황을 끝내고 원하던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서울대는 결국 못 갔지만. (웃음)


삼수를 시작할 때쯤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사업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인쇄사업을 하시다가 제가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 넘어갈 때쯤에 사업이 망했어요. 그래서 한 10년 정도 집안이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최근에 아버지께서 다시 일을 시작하셨어요. 어머니는 옛날부터 꾸준히 다른 일을 하고 계셨고, 지금은 서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시기가 됐죠.


혹시 그때는 어떤 심정이셨고,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되게 철이 없었죠. 의도적으로 회피하려고 했었어요. 건방진 생각이지만 ‘내가 어떻게 해서 들어온 대학교인데…’ 이런 생각도 있었고요.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은데 알바를 해야 하는 게 짜증 나는 거예요. 아~씨. 누구는 용돈 받아서 교환학생 간다고 그러고, 누구는 어학연수 가고, 여행 가고… 공교롭게도 제 학번에 잘 사는 동기들이 많아서 걔네랑 같이 놀려면 돈이 없어서 2차, 3차까지는 못 가는 거예요. 근데 걔네는 그렇게 놀면서도 알바를 안 하니까 공부할 시간도 더 많아. 그래서 이제 화살이 자꾸 엄마 아빠한테 가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개새끼죠.


그때 그래도 알바를 정말 여러 가지로 많이 하긴 했어요. 서빙이나 카페는 당연한 거고. 2~3일 동안 하는 무슨 생동성 알바? 그게 뭐냐면 식약청이랑 제약회사랑 같이 피실험자를 구해서 약 투여를 하고 채혈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동물원에서 동물들 분뇨 치우는 거. 그다음에 막노동. 그리고 또… 노래방에서 기업의 단체 회식이 있으면 성별 상관없이 젊은 애들이 가서 분위기 띄우는 알바가 있어요. 그런 것도 했어요. 알바를 진짜 많이 했죠. 그런데도 내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 거지.


그리고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마다 증빙서류를 떼 가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내가 얼마나 상황이 안 좋은지를 증명해야 하는 거잖아. 지금처럼 인터넷 접수가 활성화될 때가 아니어서 직접 가서 서류를 내고 그랬는데, ‘혹시 이 사람이 내 거 훑어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러니까 온갖 화살이 엄마 아빠한테 가는 거지. “아니, 왜 미리미리 대비 못해서 이렇게 하냐고.” 이런 식으로.


그렇게 반항하셨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


그냥 미안하다고 그러죠, 계속. 지금의 나였으면 그 미안하다는 얘기조차 안 나오게 했을 텐데 그때는 그 미안하다는 얘기를 일부러 막 끌어내려고 했었어요. ‘당신들은 나한테 미안해해야 해.’ 이런 식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싸가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병현님 부모님이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미안해하고 믿어주기가 되게 어려운 건데,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요?


저는 진짜 부모님을 운 좋게 되게 잘 만났다고 생각을 해요. 저를 한 대도 때린 적도 없으시고요. 저한테 뭐라고 하신 적도 없어요. 그리고 여태까지 살면서 제가 뭘 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 한 번 열심히 해봐라.” 그냥 이게 끝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수록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니까, ‘이 양반들은 진짜 대단하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결혼을 안 한 사람으로서, 자식을 안 낳은 사람으로서 정말 불가사의한 일인 거죠.




다음 화에서 계속.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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