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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채 1호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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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Jul 29. 2021

통제 불능한 삶과 불안

이병현 님의 지갑 인터뷰 - 2

다 제가 컨트롤하고 싶어도,
세상 사는 데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걸 깨닫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아요.

이 명함의 ‘키노빈스(Kino Beans)’가 뭔가요?


‘키노'는 독일어로 영화, 영화관이라는 뜻이에요. ‘빈스'는 그냥 커피. 커피를 팔아서 번 돈으로 학생영화나 다양성 영화에 재투자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회사고, 저는 합류한 지 벌써 5년 차가 됐네요. 그러다가 ‘영화 후원만 하지 말고 다양한 소규모 문화 콘텐츠도 만들어보자.’ 해서 학생들이나 인디 아티스트 공연도 지원하고 기획도 해왔어요. 또 성소수자 관련 재단이나 영화제에 지속해서 협찬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재정비를 위해서 규모를 줄이는 시기예요.


그럼 키노빈스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맨 처음에 아는 형이 “키노빈스가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우리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커피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화 콘텐츠도 만들려고 한다. 너도 한번 함께하지 않겠냐.”라는 제안을 해주셔서 뭐 별생각 없이 오케이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개고생은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생각으로 바로 합류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게 병현 님과 딱 맞아 들었네요.


그러니까 그 멘트 하나에 낚인 거죠.


이게 언제예요?


2015년. 키노를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때는 뭐 희망과 온갖 상상에 다 부풀어 있을 때죠. 그러니까 뭔가 내가 예상치 못했던, 너무나 큰 행운이 다가왔다고 느꼈을 때죠.


이때 자신한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뭐라고 하고 싶어요?


(망설임 없이) 빨리 나와라!


(웃음바다) 아 진짜로? 이렇게 오래 하실 줄 몰랐어요?


사실 오래 하고 이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냥 ‘재밌겠다’ 딱 그거였어요. 짧다면 짧은 그 4~5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되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봤어요. 이 사진으로부터 한 달 뒤 멤버들의 배신과 소송이 있었고… 그러면서 사업을 하면서 버티는 사람들이나 자수성가한 사람들에 대한 대단함, 경외심을 되게 많이 느꼈던 것 같고요. 그냥 ‘아 직장생활 따분할 것 같아. 난 재밌는 거 좀 젊을 때 할래.’ 이러면서 딱 했는데 스-읍 이게 생각보다 장난이 아닌 거지.


그럼 지금 병현님이 사업적으로 제일 힘든 건 어떤 건가요?


금전적인 안정성. 이제 조금 자리를 잡으려고 하면 우리가 통제 못 하는 외부 변인이 발생해서 한 번 휘청거리고, 또 휘청거리고 이러니까… 사실 이거는 생계와도 연결이 되니까 내 생활 자체가 안정적이지 못한 거예요. 그렇게 되다 보니까 늘 긴장해야 하는 거죠. 저도 이제 제집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차도 사고 싶고, 여행도 더 가고 싶고 이런 생각이 드는데 현실적으로는 돈을 만들 수 있는 이 상황을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힘든 거는 ‘이 틀 안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좀 더 이 파이를 키우고 뭔가 더 사회적으로 쉽게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알아봐 줬으면 하는데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게

너무 많으니까.


키노빈스가 가진 기존의 철학적 가치를 깨고, 좀 더 확장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렇죠. 아니면 ‘내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그 목적이 퇴색되고 나는 그냥 내 생활이나 내 금전적인 여유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부터 시작해서 많은 생각이 들어요.


그럼 키노빈스 말고, 병현님 스스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회까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주변 사람들한테 어느 정도의 에너지는 전달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어느 정도. 에너지가 끊이지 않는다, 열정이 있다,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런 얘기를 꽤 들어요. 근데 내가 좀 더 뭔가 고차원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은 모르겠어요.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나 자신한테 떳떳할 수 있는가.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아직 결론을 못 내린 상태예요.


어떻게 하면 좀 더 그 방향에 가까워질 수 있으실 것 같으세요?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제가 하고 싶은 걸 더 해야겠죠. (웃음) 저는 구조를 제가 만들어 내고 싶은 사람이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뭔가를 계속 시도하겠죠.


요즘엔 불안을 주제로 유튜브도 시작했는데, 뭔가를 시도하면서 생기는 불안을 떼어놓고 살 순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불안을 되게 부정한 적이 있었거든요. ‘나는 불안하지 않아.’ 아니면 ‘불안 같은 건 나약한 애들이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신에 ‘불안이라는 애를 통해서 내가 뭘 배울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자고 받아들였어요.


키노빈스라는 일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얻은 가치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다 제가 컨트롤하고 싶어도, 세상 사는 데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걸 깨닫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거 왜 안 되지?’ 막 이랬다면, 지금은 ‘그래. 지금은 뭔가 타이밍이 아니구나.’ 아니면 ‘부족한 점이 있나 보다.’ 또는 ‘안 되는 건 내가 뒤집을 수 없는 거구나.’ 이런 식으로.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완전히 포기하는 건 아니지만, 한 템포씩 쉬어가고 하는 거를 요즘에 제일 많이 깨닫고 있어요. 안 그러면 내가 나를 계속 갉아먹어서 버틸 수가 없으니까.


힘을 빼는 법을 배우고 계신 거네요.


이걸 깨닫고 나니까 모든 멘트가 다 달라 보이는 거예요. 야구나 축구 같은 걸 볼 때, “슛을 쏠 때는 온몸에 힘을 빼고 딱 집중해서 부드럽게 쏴야 합니다.” 이런 것들. 아 저런 게 인생사는 진리일 수도 있겠구나!



사실 제가 사회생활하거나 겉으로 볼 땐
에너지틱하고 밝은 모습이 있지만
혼자 있을 땐 한없이 어두운 사람이에요.

이거 어느 나라 화폐예요?


러시아요. 이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한정판 100루블짜리 지폐예요. 구하기 힘든 거라서 들고 다니고 있어요. ‘야신’이라는 골키퍼 그림이 새겨져 있거든요. 이 골키퍼는 러시아 출신의 정말 세계적인 골키퍼이고, 월드컵 대회 때마다 세계적으로 가장 세이브를 잘한 골키퍼한테는 야신상을 수여해요.


한정판인데 어떻게 구하셨어요?


러시아에 월드컵 보러 가서 정말 우연히 러시아의 김밥천국이라고 하는 데가 있어요. 거기서 제가 현금을 냈는데 거스름돈으로 이걸 주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점원이 “You are lucky!”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What’s this?” 이러니까 “special… special!” 막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다른 러시아인한테 물어보니까 자기도 이거는 뉴스에서만 봤다고.


어 진짜요? 그 정도로 레어템이에요?


네. 이런 추억도 있었고 러시아 월드컵은 정말 오랜만에 너무 즐거웠던 경험이었어요. 제가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데, 전 세계에서 저 같은 애들이 다 모이니까 길거리 지나가면서도 다 친구가 되고. 더군다나 전 관종이라서 태극기 맨날 두르고 다녔는데 러시아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젊은 애들이 K-POP에 미쳐요. 심지어는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지방에 갔는데 거기서도 태극기만 보이면 무조건 여자애들이 막 달려와서 사진 찍자고 그래요. “아이 러브 까레야!” 이러면서. 월드컵은 정말 세계인의 축제더라고요. 너무 재밌었고 너무 좋았어요. 제가 다녔던 세계 여행 중에서 거의 넘버 원이었던 여행.


특히 뭐가 그렇게 넘버 원일 정도로 좋았어요?


축구라는 테마 하나를 가지고 전 세계인들이 그렇게 다 친해질 수 있고 그렇게 다 미칠 수 있구나 싶었어요.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서로의 국기가 보이잖아요. 멕시코 애들이랑 브라질 애들이 진짜 많이 오는데, 제가 가서 “오~ 메끼꼬!” 이러면 게네들은 와서 “꼬레아. 꼬레아.” 이러면서 막 서로 응원가 부르다가 서로 욕해 갑자기. 걔네가 “야 너네는 안돼. 메끼꼬 텐 꼬레아 제로.”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서로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장난인 거야. 이런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와… 진짜 ‘핵인싸’이신 것 같아요.


외국에서나 이러지 한국에서는 못하죠. 그리고 사실 제가 사회생활하거나 겉으로 볼 땐 에너지틱하고 밝은 모습이 있지만 혼자 있을 땐 한 없이 어두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양극단을 다 가진 사람이라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놀라며) 좀 혼란스러운데요?

제가 오늘 느끼기엔 되게 밝은 분 같은데, 어두운 모습은 어떤 모습이에요?


‘아 왜 이러지.’ 이러면서 혼자 고민을 되게 많이 하고, 자기비판 엄청 심하고. 내가 나한테 거는 기대치가 한없이 높고 그래서 스스로한테 막 화살을 쏘고….


뭔가 이렇게 양극단을 가지고 계시면 좀 힘들지는 않으세요?

밖에선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안에서는 자기비판을 계속해야 되는데….


그래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는 저한테 그러거든요. 너 그러다가 존나 일찍 죽는다고. 조금 편하게 너를 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내가 빡치면 빡치는 대로 놔두고, 내가 기쁘면 기쁜 대로 놔둬야 하는데. 혼자 있을 때 기쁘면 ‘이 기쁨이 오래 지속될 수 있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여럿이 있을 때 내가 슬프면 ‘내가 괜히 분위기 흩트리는 거 아니야?’ 이렇게 되고. 뭔가 자꾸 나도 모르게 바깥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를 계속 의식하고 살아요. 너무 피곤한 거죠. 정신적으로.


그리고 후각, 청각에 너무 예민해서 막 여럿이 있는 데서 공부 못하고요. 여럿이 있는 지하철 정말 싫어하고요. 약간 공황장애도 있거든요? 명동 이런 데 잘 못 가고. 가긴 가는데 고개를 숙이고 다녀요. ‘내가 저 사이를 어떻게 뚫고 지나가지?’ 그런 생각까지 들어요.


아 진짜요? 적극적인 모습에 대해서만 들어서 그런지 상상이 잘 안 가요.


지인들이랑 앉아서 얘기하는 건 너무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불특정 다수가 너무 많으면… 좀 짜증 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약간 그런 게 있어요. 내가 어떤 환경에 속했든 간에 당위가 있어야 하는 거죠. 불특정 다수 앞에서는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이 괜히 뭔가 내 단점을 지적하지 않을까부터 시작해서….


저도 사실 그게 왜 그런지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아마 그것도 어렸을 때의 콤플렉스에서 기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렸을 때 내가 체구가 작거나 부족했던 경험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다수 앞에 섰을 때 내가 부족해 보일까 봐 걱정하는….


러시아에서도 불특정 다수가 많은 상황이지 않았나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게….


이건 내가 목적 있게 간 거잖아요. ‘가서 내가 미친 듯이 즐기겠다.’ 이렇게 준비를, 각오를 하고 간 거죠. 이상하게 여행을 가면 저의 외향성이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래서 한편으로 생각해낸 거는, 한국 안에선 나를 억압하는 무언가가 있나 싶기도 해요. 내가 30년 넘게 한국에서 무의식 중에 교육받아 온 방식이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나를 드러낼 때만 드러내야 하는 거고, 일상생활에서는 뭔가 절제해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을 수도 있고.




다음 화에서 계속.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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