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에세이 <스무스>
태재 작가님이 수영을 배우며 기록한 10개월간의 일지를 엮어낸 책《스무스》에서 일부 내용을 옮겨 그림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물에 뜨지도 못했던 작가님의 일지를 같이 읽으며, 작가님의 물결에서 시작해 다시 저마다의 물결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과 “~”를 구분한다. 비슷한 거리라면
동작이 많더라도 물결을 일으키며 가고 싶다.
뚜벅뚜벅 나아가기보다 온몸을 움직이며 흘러가고 싶다.
한때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하고 물음표를 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존재의 물음표를 던지기보다 생활의 물결표를 잇는다.
‘왜 태어났는지는 이제 됐고, 사는 동안 물결이나 만들래~’ 하고.
책《스무스》중에서
내게 단소는 너무 어려운 악기였다. 음악 시간에 단소 수행평가를 할 때면 항상 쉽게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처음 단소의 소리가 나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단소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입 모양을 만드는 것부터 힘이 들어가는데, 음악 선생님은 항상 힘을 빼고 적절한 호흡으로 불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리 해도 입에 힘을 빼고 부는 느낌을 상상할 수 없었다. 몇 번을 불어야 나도 단소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수행평가를 보려면 적어도 소리는 내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몇 번이나 입술의 모양을 맞추고 단소에 입을 뗐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계속되는 헛불기.
입술의 힘이 다 빠져갈 때쯤 환청처럼 ‘브으으….’ 소리가 났다.
선생님이 들려주던 그 단소 소리! 힘이 빠져버린 입에서 뱉은 호흡이 그 맑고 힘 있는 소리를 냈을 때는 정말 짜릿했다. 물론 수행평가는 정말 단소의 소리만 내고 마쳤지만 나는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을 때도 뿌듯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힘 빼기’의 기억이다. 처음부터 힘을 주고 시작했던 단소는 쉽게 소리를 내주지 않았다. 입술의 모양을 잡아야 한다는 이론에 빠져서 내 힘은 자꾸 입술 모양 잡기에 집중됐고, 당연히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힘이 빠져버렸을 때’ 소리가 난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이 힘 빼기와 힘주기의 연속이다. 내가 하고 싶고, 갖고 싶고, 원하는 것을 향해서 한껏 힘을 주며 달려가지만, 오히려 닿지 않을 때가 많다. 가끔은 너무 욕심이 난 나머지 내가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때 필연이든 우연이든, 힘이 빠지게 되는 순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놓치고 있던 게 생각이 난다. 오히려 힘을 빼는 순간 힘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단소를 불다가 입술에 줄 힘조차 없을 때 브으으 하고 소리가 난 것처럼. 어떨 때는 힘을 줘야 할 곳에 주지 않고, 엉뚱한 곳에 줘버린다. 힘 빼는 호흡보다는 입술 모양을 맞추는 데에 힘을 너무 줘버린 것처럼.
작가님이 수영을 배우며 쓴 일지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지금 내가 있는 수영장은 어디인지, 나는 힘을 빼고 있는 건지 주고 있는 건지, 열심히 첨벙 대는데 옆으로 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냥 힘을 주지 말자. 왜 항상 힘을 줄 생각부터 하게 될까. 답은 힘 빼기에 있을 수도 있다.
일지를 다 읽어갈 때쯤 힘 빼기의 교훈을 떠올렸다. 제자리에서 멈춘 것 같다면, 만족이 쉽게 되지 않아 힘들다면, 아니 지금이 만족스럽더라도 호흡을 크게 내쉬며 힘을 빼보자. 혹시 모르지 않나. 여태까지 떠 있다고 생각했지만, 힘을 빼는 순간 더 떠오를 곳이 있을 수도 있다. 잘 유영하고 있었어도 지쳐있는 상태였을 수 있고, 헤엄치는 데 집중한 나머지 내 앞의 커다란 장애물이 있는 것도 못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힘 빼는 순간에 생각해 보는 거다.
내가 나의 수영장에서 하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왜 헤엄을 치고 있었는지.
부-웅 뜰 수도 있고 다시 떠서 앞으로 나갈 힘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헤엄치다가 힘을 빼는 순간에는 자기가 만들어낸 물결을 봐주길. ‘힘주기~힘 빼기’ 구간에서
어떤 물결을 그려왔는지. 자신의 수영장에서 물결을 느낄 수 있는 ‘스무스’한 사람이 되길~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