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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채 1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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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Jul 15. 2021

가장 완벽한 불완전 - 상처가 나고, 아물기까지

소설 <프루스트 클럽>

본 기사는 정재은 님의 인터뷰에 대한 에디터의 답변입니다. 인터뷰이, 그리고 인터뷰이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Editor |박서진


김혜진 작가의 <프루스트 클럽>은 스무 살이 돼 고흐의 그림 앞에 선 윤오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삼 년 전, 열일곱의 윤오에게 세상은 막에 쌓인 듯 답답하다. 윤오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랬던 윤오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나원. 갑자기 삶 속에 들어온 나원에게서는 어딘가 특별한 힘이 느껴진다. 무기력한 윤오를 끌고 지하에 있는 카페로 향한 것도 나원이었다.

카페 안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주인인 오데뜨는 여태껏 만났던 어른들과는 달랐다. 그녀의 공간은 윤오와 나원의 집보다 편안했고 곧 아지트가 되었다. 어느 날 윤오는 학교에서 만난 효은을 카페에 초대한다. 윤오, 나원, 효은까지 이제 세 명이 된 그들은 카페 안 작은 창고에 가림막을 치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다.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는 어려운 책이지만 함께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행복한 것 같은 순간에도 그게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걸 기억한다”던 나원의 말처럼 윤오의 이야기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원은 떠나고 오데뜨가 사라진다. 효은도 다시 만날 수 없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함께 맞춰가던 여름과 가을, 겨울이 산산이 조각나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워진다.


윤오의 이야기는 아프다. 1인칭으로 서술되는 문장을 따라 읽으며 나도 마음이 시큰한 이유는 아마도 낯이 익은 세상의 무정함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때로 견딜 수 없는 무질서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우리는 매번 흔들리고 부딪힌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방법은 있을지 몰라도 넘어지지 않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그저 넘어지면 상처가 나고 딱지가 져 흉터가 남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뿐이다.


“가끔은 그냥 아프기도 해.
후회가 되기도 하고,
막 원망스럽기도 해.
어쩌겠어, 내버려 둬야지.
지나갈 때까지.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 168p


때로는 운이 나빠서 깊은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윤오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들여다보기도 힘든 깊은 상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다린다. 언젠가는 상처가 아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회상이 끝나고. 다시 고흐의 그림 앞에 서 있는 스무 살의 윤오는 아픈 기억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참 동안 외면해왔던 현실을 다시 감각해내기로 한다. 그리고 열일곱,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가장 완벽하게 불완전했던 그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안녕하세요. 김혜진 작가님! 작가님의 <프루스트 클럽>은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은 저의 첫 번째 청소년 소설이에요. 2005년, 그러니까 제가 26살 때 쓴 책인데 여전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웃음) 사실 정말 힘들게 썼어요. 지금이야 글 쓴 지 오래돼서 ‘이 정도는 이렇게 묘사하면 되겠지’하는 관성 같은 게 있는데 그때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맨땅에 헤딩하듯이 무지막지하게 부딪히고 고쳤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아무튼 저에게는 되게 애착이 감과 동시에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에요.


<프루스트 클럽>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진지한 10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 당시 사회는 10대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저는 10대 시절에 가장 생각이 많고 복잡한 문제들에 골몰해있었기 때문에 그런 시선에 약간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10대들은 이럴 거야’라며 짐작해서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냥 제가 느끼는 고통이나 경험을 그때 제 언어로 쓴 거예요. 그래서 사실 출판사에 원고를 냈을 때 거절당할 줄 알았어요. 어둡기도 하고 말이 많기도 해서요. 근데 의외로 괜찮다고 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아.
부서진 것을 잇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 이 그림을 보겠어.
이제 그만 이 조각들을 보겠어.
도로 문을 닫겠어.
- 12p


스무 살의 윤오는 그림 앞에 서서 과거를 회상해요. 하지만 그전까지는 과거의 일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는데요. 왜 그랬을까요?


가끔 행복했던 일도 그게 종료된 시점부터는 슬프게 느껴져서 생각하기 싫을 때가 있잖아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걸 생각하는 자체가 힘들게 느껴질 때. 그건 아마 전체의 기억 중에 안 좋은 기억들이 조금씩 섞여 있기 때문에 그게 자극되는 게 싫은 거겠죠. 아마 윤오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특히 윤오는 효은이와의 이별을 경험했으니까요.


하지만 윤오는 결국 거부해왔던 기억을 맞춰보게 돼요. 상처를 다시 꺼내는 게 힘들지 않았을까요?


어릴 때 사촌과 이별한 경험이 있어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실감이 안 남과 동시에 유년 시절이 딱 봉인됐다고 느꼈어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기억이 된 거예요. 그런데 그때 제 생각과 기분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윤오도 한 번은 마주해 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손에 약간 피를 흘리더라도 깨진 조각들을 맞춰가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마주하는 어려운 과정을 겪어내는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때가 와.
누가 말했지? 언젠가는, 바로 지금처럼.
- 13p


그런 과정이 왜 필요할까요?


이미 상처가 생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인생에는 사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아픔은 없을 수 없잖아요. 심지어 계속 반복되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상처가 난 다음, 그다음 단계인 흉터를 어떻게 할 건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윤오에게 상처가 생겼고 흉터가 남았어요. 윤오는 이 흉터를 가리거나 안 보고 싶어 하는데 오데뜨가 흉터를 좀 보라고 하죠. 흉터가 있는 것 자체가 삶의 모습이니까. 가리려고 하는 것보다 그냥 받아들이면 차라리 그 흉터에 대해 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런 이야기로 소설을 쓰게 된 건 어떻게 보면 마음속에 너무 완전해지고 싶은 마음, 상처가 없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계속하고 싶었던 거죠. “이런 삶도 있다. 괜찮다.”는 것을 많이 말하고 싶었어요.


상처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고 그게 현실이라는 게 정말 슬픈 것 같아요. 어쩌면 윤오도 지금보다 더 험난한 상처를 겪게 될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하지만 깨진 조각들을 한 번이라도 맞췄다면 그전과 후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윤오는 조각들을 맞췄잖아요. 맞추고 나면 그게 일종의 재산이 되는 거죠. 날카로워서 아픈 유리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단한 나무 같은. 힘들 때 꺼내 볼 수 있는 한 가지를 간직할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접으면서,
괴로운 일도 괴로웠으니까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략)
아무것도 몰라 혼란스러운 것이
다 아는 것처럼 정리되어 있는 것보다,
더 살아있는 것 같다.
- 266p


이 책을 쓰셨을 때 20대 중반이셨잖아요. 저도 20대다 보니 작가님이 그 당시에 어떤 인생을 살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20대 중반의 저는 심리적으로 몰려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쫓겨 있다고 해야 하나? 낭떠러지 같은데 가 있는 느낌. 대체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명확히 설명하기 힘드네요. 음… 삶 자체에 대한 초조함도 있었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다가.. 이렇게 예민한 소설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랬을까요. (웃음)


근데 그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예민하게 열어 놓지 않는다면 이런 글은 못 쓰지 않을까. 그냥 무감각하면 편하게 살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러면 글을 못 쓸 것 같았어요. 쓰는 게 낫다고 느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게 내가 더 살아있는 거 같았으니까.


그럼 지금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최근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진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인간을 길러내는 과정을 겪다 보니 제가 갖고 있던 초조함이나 불안이 희한하게 해소가 되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제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거 같아요. 관심 있는 주제도 조금씩 바뀌고요.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 윤오는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 어떻게 됐을까? 희한하게 윤오의 뒷얘기는 생각을 안 해봤네요. 음… 일단 윤오는 대학생이 될 것 같아요. 대학교에 가고 나서 한동안은 그냥 조용히 지내겠죠. 윤오의 이런 경험들을 제대로 소화해 내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해요. 저도 20대 때 10대 때의 일을 계속 곱씹으며 어떤 감정인지 깨달아 가는 데 시간이 걸렸거든요. 윤오도 그러지 않을까요?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가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내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겠죠. 그래서 그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이 친구의 20대가 또 채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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