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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채 1호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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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Jul 07. 2021

그래도 행복해지기 위해

정재은 님의 지갑 인터뷰 - 3


엄마가 표현하는 사랑이랑 내가 원하는 사랑이 너무 달랐던 것 같아요.



중3 때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어떤 점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때 엄마랑 갈등이 엄청 심했어요. 그게 아마 계기가 돼서 병원 다니고 그랬던 것 같아요.


혹시 어떤 갈등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 그냥 되게 평범한 갈등이었는데요. 서로 이해를 못 하는? 그런 갈등이었던 것 같아요. 뭔가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엄마가 제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고…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이해를 많이 바랐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긴 한데, 이해해주기를 많이 바라죠.


어떤 부분에서 이해를 바라셨나요?


어떤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은 말씀드리기가 좀 그래요. 아무튼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엄마가 위로해줄 줄 알았어요. 근데 전혀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무관심 속에 그냥 넘어가 버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위로해줄 줄 알았던 사건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


재은 님이 생각하시기엔 그 사건이 마땅히 위로받아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네.


그러면 지금은 어떠세요? 어머님과의 관계가 많이 달라졌나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엄마랑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에요. 엄마도 글 쓰는 거를 좋아하셔서 저를 낳고 쓴 육아 일기가 아직 남아있거든요?


그런 거 보여주시기도 하고, 엄마가 라디오에 사연을 진짜 많이 보내시는데 그런 얘기들 저랑 신나서 같이 얘기하기도 해요. 제가 일본 드라마 같은 거 보면 엄마도 맨날 같이 와서 보고. 도서관도 같이 가고.


(어리둥절) 사이가 되게 좋으신데요?


좋을 땐 되게 좋아 보여요. 그래서 친구들은 사이좋은 줄 알아요. 엄마는 요즘도 계속 너를 낳은 게 엄청 잘한 일이라고, 결혼 안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얘기 맨날 해주세요.


그런데 왜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했을까요?


엄마가 표현하는 사랑이랑 내가 원하는 사랑이 너무 달랐던 것 같아요. 엄마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나를 예뻐해 주시는 것 같은데, 제 딴에는 ‘나를 예뻐하고 싶을 때만 예뻐하나?’ 그런 생각 가끔 하거든요. 기쁘고 좋은 일에만 나와 함께하는 느낌? 엄마는 제가 조울증이라는 걸 안 받아들이시고 치료도 안 좋게 생각하거든요.


사실 뭔가 해결책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항상 갈등이 있는 게 평범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어디서 완전히 이상적인 가정은 20%도 안 된다고 본 적이 있거든요. 커가면서 ‘어쨌든 엄마도 사람이구나.’ 이런 거를 계속 깨닫는 중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그래도 막상 그 폭풍 속에 있을 때는 잘 모르죠. 나만 이런 문제를 겪는 것 같고. 또 남들과 다르다고 느껴서 힘들었던 점이 있을까요?


제가 지금은 되게 활발한데 어렸을 때는 진짜 내성적이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제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엄청 조용했거든요.


(엄청 놀라며) 전혀 안 그러실 거 같은데요?! 왜 그랬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했어요.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용돈이 적었거든요. 사실 어릴 때는 용돈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항상 주눅이 들었다고 해야 되나? “나도 저 가방 갖고 싶어, 신발 갖고 싶어.”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잘 안 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다 갖고 있는데 나만 없으면 소외된 것 같은 시절이었죠.


맞아요. 누가 무슨 핸드폰을 가졌는지, 이런 게 중요했죠. 그리고 저는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저를 가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이것저것 옷도 사고, 화장품도 많이 사고. 결과적으로는 ‘가꾸는 것’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저도 중학교 때 외모에 되게 집착했던 기억이 나요. 자신감이 없었던 가장 큰 원인.


지금은 그런 세상에서 벗어났는데, 그때는 그게 전부였어요. 제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중학교 여자아이들이 맨날 “선생님 저 너무 못생겼어요.” 이래요. 저한테 “선생님 눈썹 좀 이렇게 그려봐요.” 이러거나 “(화장품) 이거 한번 써볼래요?” 할 때도 있고. (웃음) 정말 안타깝지만, 저도 걔네들이 왜 그러고 있는지는 너무 다 알죠. 그래서 요즘에는 더욱더 언어 선택도 조심해서 하게 돼요.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책은 정말 좋아해요. 보고 또 보는 책 중 하나. 10년 전 소설인데 생각하게끔 하는 내용이 진짜 많거든요. 예쁜 게 뭐고 못 생긴 건 뭐지? 그런 것들. “외모지상주의 세상에 휩쓸리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저한테 말해주는 것 같아요.


보고 또 볼 정도면 정말 재은 님 마음에 와닿았나 봐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얼평을 진짜 많이 당했었어요. 근데 제가 저한테 얼평 했던 사람들 일대일로 불러내서 뭐라고 했거든요. (웃음) “이건 아니지 않냐, 나한테 이렇게 말했던 거 기억나냐.” 이렇게. 너무 승질나요. 그건 진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와 멋있다… 대체 언제 소심하셨던 거예요? (웃음)


아, 제가 활발해진 건 대학교 오면서부터요. (웃음) 자유를 알게 되고 너무 신났던 거 같아요. 아르바이트해서 제 돈을 벌고, 통금 문제가 해결되니까. 원래는 엄마가 귀가 시간이 7시만 넘어도 뭐라고 하셨거든요.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게 재은 님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음… 절대 못 할 것 같던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고등학교 때 의사 선생님이 재은 씨는 얼마 정도 있으면 행복할 것 같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때 제가 “한 50만 원?” 이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말도 안 되게 적은 액수지만 그래도 전 50만 원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어요. ‘이것저것 다 살 수 있겠다.’ 이러면서. (웃음)


커서 실제로 50만 원을 벌어보니까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만큼 저한테 돈이 주는 자유는 꽤 컸던 것 같아요.


재은 님 표정을 보니까 그때 정말 행복했다는 게 여기까지 느껴져요. (웃음) 뭔가 항상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재은 님의 일대기를 머릿속에 그려보았을 때 매일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드네요.


제가 친구한테 받은 편지 중에 음… 진짜 자랑스러웠던 내용이 있어요.


‘재은이 너는 행복하려고 어떻게든 노력하는 것 같아.’ 이 부분. 어떻게든 변하려고 이것저것 해보는 거… 그건 제가 좋아하는 저의 부분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본인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오늘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웃음) 제가 사실 걱정을 좀 했거든요. 요즘에 기분이 안 좋은데 인터뷰하면서 쳐지면 어떡하지? 오기 전까지 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더 묻고 싶어요. 오늘 인터뷰하면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는데, 왜 재은 님은 요즘 특히 ‘울’의 상태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요즘엔 활동량도 진짜 엄청 줄고, ‘잘 안될 거야.’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 그렇거든요. 기운이 엄청 안 나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제가 그냥 거쳐나가야 할 또 하나의 시간인 것 같아요. 옛날 같았으면 ‘뭐지? 내가 왜 그러지?’ 이랬을 텐데, 요즘에는 ‘아, 내가 원래 왔다 갔다 하지 참.’ 그냥 그렇게 생각해요.


가만 보니까 기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딱히 원인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괜찮아질 건데, 뭐.’ 하고 넘기는 게 제일 좋겠네요.


네. 맞아요. 그래도 오늘 되게 유의미한 경험을 하고 가요. 요즘에 말을 줄이고 있다 보니까 진짜 오랜만에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엄청 많은 얘기를 하게 돼서. (웃음)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기운이 있었는데 이게 뭐라고 자신감을 얻고 가는 것 같아요. 너무 신기해요.


이야기를 쭉 듣고 나서 궁금해진 건데, 재은 님의 ‘조’와 ‘울’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오랫동안 함께한 거잖아요.


사실 제가 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는 치료하고 싶지 않은 느낌도 받았어요. 왜냐면 ‘조울증이 없어지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사라지는 건데… 그건 나를 부정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근데 어쨌든 치료를 해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봐요. 병적으로 높았던 수치를 정상적인 수치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수치를 0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계속 저와 함께해야 하는 존재겠죠.


마지막으로, 저번 인터뷰이님이 재은 님한테 질문을 남겨주셨어요. 재은 님은 본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나요?


애증이라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을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제가 스스로가 너무 막 좋아서 팔짝 뛸 정도예요. 어머 어떻게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지? 난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거지? 사실 그런 마음도 너무 과한 거죠. 또 다른 날은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바보야, 나만큼 못난 사람도 세상에 없을 거야, 하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질문에 딱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런 마음 자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거겠죠? 어렵네요. 언젠가 저를 튼튼하게 사랑할 환상 같은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재은 님은 다음 인터뷰이님께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본인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옛날에 상대방이 빡빡이가 돼도 사랑해줄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런데 요즘에는 점점 더 모르겠어요. 도대체 사랑이 뭔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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