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여섯 번째 조각

by 다채
다채로운 조각은 익명의 사연을 콘텐츠로 창작하는 미니 프로젝트입니다. 창작자의 시선을 담아 사연자의 이야기를 글, 사진, 그림 등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연

장면들


서강대교, 양화대교에는 없었다.

이번에는 마포대교.

초입에 택시를 내려 미친 듯이 뛰었다.


난간에 매달려있는 그를 힘으로 붙잡았다.

헤어지지 않겠다고,

사랑한다고도 했다.


그 이후, 학교를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널 때면

물을 바라볼 수 없었다.


-


하루는 그가 우리 집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했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나가서 그가 떨어지는 걸 보게 된다면?


그런데 내가 방 안에서 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사시나무 떨 듯 혼자 떨고 있을 때,

이제는 익숙한 경찰, 그리고 소방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무너뜨릴 수도 없었다.


내가 그를 원망하고 떠나면

그는 영영 무너지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내가 감당해야만 했다.


-


사람들은 나의 무책임함에 대해,

나의 바보 같음에 대해

손쉽게 판단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던지,


쌓아가던 것들은

또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이었던지.


-


그렇게 몇 년을 거쳐 나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장면들,

그러나 많은 순간 내 안에서 머무는 장면들을


언젠가는 꺼내보이고 싶다.





다채로운 조각 -006




창작자의 시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있다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한 날이 있습니다.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언제나 모자람 없는 사람인 줄로 알았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영향력 있는 어른이 될 것이라 믿었기에 이와 같은 순간은 제게 있어 외면하고픈 한 장면이었습니다. 제 세상이 누군가에게 도움될 거라 기대해온 날은 무릇 절망이 되었고, 그 절망은 제 삶을 부정하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인생은 나 혼자라는 말에 선뜻 부정할 수 없는 까끌한 마음도 생겨났죠. 그럼에도 저는 걸어가듯 글을 써왔습니다. 그것이 겨우 손바닥만 한 희망이라 할지라도 제 한 칸짜리 삶 정도는 환히 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섣불리 희망을 믿진 못하지만, 다음날의 나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정말 부단히도 노력해왔습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변했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앞서고 그다음 걸음을 주저하게 됩니다. 성장하지 못한 제 모습이 유독 실망스러웠던 날도 있었습니다. 삶이 슬럼프로 향하던 순간에 그녀의 사연을 만나게 되었고, 희망의 단서인 다채의 행보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사연 속 순간순간의 장면에 저의 절망과 두려움이 보였기에 시를 기록하는 매 순간이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배경이 한강이었기 때문에 제게 있어 더 의미가 큽니다. 한강은 생각의 장소였습니다. 여행의 첫째 날이든 마지막 날이든 한강이 있는 공원으로 가 몇 시간이고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제 서울여행의 루틴이었으니까요. 만인의 여행지이자 일상이었기 때문에 한강이 주는 아이러니함을 낯설어하면서도 변함없이 아꼈습니다. 새벽녘에 바라본 한강 야경은 기분에 따라 희끗희끗하기도, 선명하다가 불현듯 희미해지기도 어쩌다 가끔 눈물겹게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한강은 모두의 삶입니다. 여행의 명장면을 보여주다가 일상의 몇 글자를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덧없음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어쩌다 가끔 눈물겹게 아름다운 한강일 때면 손에 들고 있는 조각이 꽃다발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쉽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조각이 무엇이든 살아갈 수 있는 단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빛을 희망이라고만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때 다채의 조각을 접한다면, 이 몇 글자의 시가 다정한 위로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창작자 임윤아



조각에 대한 감상이나 사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댓글에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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