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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그래퍼 Oct 02. 2020

사진에 꽂힌 이유

다 코멘터리: 미디어, 사람, 인생에 관한 온갖 잡다한 코멘터리

(사진, 그 중에서도 일상 사진에 관한 지극히 주관적인 글)


어릴 땐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었다.

직장 생활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소속되어 있는 MCN 업계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영상이 아닌 사진의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다.

18년 11월에 퇴사해서 12월부터 사진 수업을 들었고,

19년 12월부터 '포토그래퍼'라고 적힌 명함으로 어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Photo by Dariusz Sankowski on Unsplash


왜 영상이 아닌 사진인가.

나는 왜 사진에 매료되어서 결국 직업을 바꾸는 결정까지 하게 되었을까?




일상 사진,

일상의 기억


사진에도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지만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담는 일상 사진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사진에 일상화보 Lifegraphy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일상의 모습은 영상이나 글로도 담을 수 있다. 

한창 블로그(Blog)가 성행할 때도 있었고, 지금은 유튜브에 자신의 일상을 찍어 올리는 브이로그(Vlog)가 점점 점 블로그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고등학생 Vlog, 시험기간 Vlog, 퇴사 Vlog, 신입사원 Vlog 등등 온갖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공유한다. 사람들은 TV에서 <나혼자산다>나 <온앤오프>처럼 연예인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을 즐겨보고,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담은 Vlog를 찾아본다. 


이처럼 일상을 보여주거나 감상하기에 영상도 참 좋은 방법인데

나는 왜 굳이 일상을 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담고 싶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사진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매체라고 생각했다.


사진은 가장 효율적으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체다


Photo by Raj Rana on Unsplash



사진에는 단 1초만에 기억을 상기시키는 힘이 있다.

과거의 앳된 얼굴, 그때의 표정, 당시 즐겨입던 옷, 배경으로 나온 예전 공간의 모습이나 소품들이 나온 사진은 그 시절의 기억들을 압축하고 있다. 

그날의 공기와 색깔, 기분, 그 시절의 상황과 생각 등등...

단 한장의 사진을 1초 보는 것만으로 그 얼마동안의 시기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모두 떠올릴 수 있다.


사진은 동시에 자율적이다.

사진 자체가 정해두는 시간이나 범위와 같은 한계가 따로 없다.

사진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보고 싶은 만큼 오래 사진을 보고, 떠올리고 싶은 만큼 많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오래보고 싶은 사진은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진은 더 깊게 보며 나만의 감상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 사진의 매력이다. 


Photo by Josh Hild on Unsplash


또한 사진은 간결하다.

오직 눈에 보이는 사진 한장이면 된다.

영상에는 있는 음악이나 말소리, 효과음 또는 자막과 같은 부가요소가 없다.

사진은 빼기의 미학이라고 하던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최대한 남겨야 하는 것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은 빼는게 사진이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그 장면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다.




사진은 시,

영상은 소설 또는 산문


보는 사람이 느끼는 사진의 매력과 만드는 사람이 느끼는 사진의 매력은 각각 다를 수 있다.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자 했을 때 나에게 사진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사진의 호흡이다. 


물론 사진의 종류에 따라서도 호흡이라는 건 제각각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상 사진, 일상화보(Lifegraphy)의 호흡은 (충분히) 느리지만 (너무) 길지 않아서 좋았다. 


이전 직장 사람들이 나에게 '왜 영상이 아니라 사진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사진과 영상을 글에 비유하면 사진은 시, 영상은 소설이나 산문 같다'고 답했다. 사진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장의 장면에 함축해서 담는다. 영상은 1초 안에도 24~120프레임에 달하는 장면들이 있으며 그 장면들을 여러 개 이어 붙여서 결과물을 만든다. 단지 이 장면에 어떤 것을 담고 싶은가를 넘어서 어떤 순서로, 어떤 길이로, 어떤 전환 방법으로 장면들을 이어붙일까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영상이다.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


나에겐 사진을 만드는 것이 영상을 만드는 것보다 잘 맞는다. 기획/촬영/편집 모든 과정이 그렇다. 

글을 쓰는 것과 사진을 찍는 것, 영상을 만드는 것의 호흡은 모두 다르다. 글을 쓸 때도 시 한편을 쓸 때와 장편 소설을 쓸 때의 호흡이 다를 것이다. 사진도 어떤 사진이냐에 따라서, 얼마나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느냐에 따라서 제작 과정의 호흡이 달라질 것이다. 영상 중에서도 5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호흡과 장편 영화를 만드는 호흡은 다르다. 일일 드라마를 만드는 호흡과 사전 제작 16부작 드라마를 만드는 호흡이 다르다. 


나에겐 너무 길게 오랫동안 집중해야하는 일은 맞지 않다. 짧고 굵고 깊게 집중하고, 한번에 하나만 신경쓰는 것이 좋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상 콘텐츠의 경우 영상보다 사진이 나에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천천히, 너무 길지 않은 호흡으로 작업할 수 있다고 말이다.




현실에서는 눈으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


나에게 사진이 매력적인 또다른 이유는, 맨 눈으로는 살면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풍경도 공간도 사람이나 동물도 현실에서는 절대 멈춘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작하는 실험실에서라면 모를까. 어느 공간 안에 사물들만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빛이나 먼지가 움직인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정지하고 싶어도 결코 스스로 정지할 수 없다. 미세한 움직임이 쉬지 않고 계속된다. 풍경도 마찬가지다. 하늘과 바람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Photo by Robert Anderson on Unsplash


사진은 그 어떤 것을 찍어도 멈춘 모습으로 찍는다. 1/125초로 찍던, 1/4000초로 찍던, 10초로 찍던 사진에 찍힌 모습은 절대 우리가 평상시에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아무리 익숙한 피사체를 찍어도 사진으로 보면 어딘지 낯선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사진 속의 사람은 숨을 쉬지도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그대로 정지해 있다. 매일 보는 사람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면, 평소 움직이던 모습으로 볼 때는 몰랐던 것들이 정지된 사진 속에서는 너무나 잘 보이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수천분의 일초로 찍었을 때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물방울의 모습을 자연스러운 현실에서는 절대 멈춘 채로 볼 수 없다. 긴 꼬리가 보이게 별의 궤적을 장노출로 찍은 사진도 현실에서 내 눈으로는 똑같이 볼 수가 없다. 


찍히는 형태도 마찬가지다. 어떤 화각의 렌즈로, 어떤 조리개로 찍느냐에 따라 우리 눈으로 보는 것과 조금씩 다른 형태로 피사체가 담긴다. 찍은 결과물을 어떻게 보정하고 어떤 색을 입히냐에 따라서도 현실의 모습과 달라진다. 


Photo by JoelValve on Unsplash


그래서 어떤 장면이건 나에게 사진은 언제나 색다르고 매력적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사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에 끌린다. 



이렇게 사진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고 사진 자체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의 갖가지 이유들로 나는 사진에 꽂혔다. 나는 아직 사진을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상 사진/일상화보 Lifegraphy에 꽂힌 이유는 이러하다. 



사진을 직업으로 삼는 도전을 하는 가운데

사진을 시작한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나만의 이유를 남겨본다. 





당신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나요? 

사진을 좋아하는 당신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생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의 연속, 오늘을 즐겁게!


지난 관련 글: 라이프그래퍼 단비 이야기, Media, 미디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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