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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Sep 18. 2020

#00 상상의 골동품점을 열었습니다.

이야기를 열며

릴케의 시 ‘ 삶의 평범한 가치’의 마지막 부분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가게 하나를, 구닥다리 물건이 차 있는 윈도우를  

고스란히 사들여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안에서  

20년쯤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하고.  



나도 골동품점의 주인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나 만난 외국의 수많은 골동품들 중 내 취향의 물건들을 한국에 가져가서 팔면 재밌지 않을까?'

라는 생각. 하지만 지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나를 보아 그 생각은 그리 뜨겁지 않았나 보다. 자연스레 ‘골동품점 주인’이라는 장래희망은 마음속 한 귀퉁이에서 먼지만 쌓이다가 정말 아무도 찾지 않는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망원동의 한 골동품점에 갔다. 그곳의 주인분은 해외에서 살면서 모은 골동품들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친절하면서도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셨다. 나에겐 스쳐 지나간 생각을 자신의 중심에 꽉 쥐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힘들어요.’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힘든 점이 많아 보였지만, 자신의 취향을 모아놓고 설명하는 골동품 컬렉터의 삶이 참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갑자기 때려치우고 골동품점을 열기 위해 코로나 시국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물건을 사 온 다음 자가격리 2주를 시작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하기로 한다. 어딘가에선 지금 있는 곳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하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쿨한 조언을 하지만, 해보지 못한 것들 혹은 해보았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과거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하는 일을 무조건 멈춰야 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슬플 것이다. 나에게 어느 정도의 찌질함은 현재에 느낄 수 있는 것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태어나서 딱 3번만 우는 남자보단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씩 울어주는 남자가 좋고,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보다는 외롭거나 슬플 때 엉엉 울어대는 드라마 여주인공이 좋더라. 


아무튼, 결론은 뭐냐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걷게 되는 꿈 속이며, 지금까지 겪었던 일, 혹은 나중에 겪을 일에 대한 찌질한 단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내가 만약 골동품점의 주인이라면 어떤 물건들을 가게 윈도우에 들여놓을 것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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