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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Sep 20. 2020

#01 많이 들어 늘어져 버린 믹스테이프

골동품점에 들어온 첫번째 물건

물건 주인의 말


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시던 가수의 믹스테이프입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이 테이프를 틀어놓고 청소를 하셨어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하시면서요. 아직도 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아버지께서 따라 부르시던 모습이 기억이 나요. 비록 지금은 늘어져 버려 사용할 수 없지만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에요.




가게 주인의 말


"추억은 음악을 좋아해.”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나오는 대사로, 주인공이 음악을 들으며 과거의 기억을 찾게 되는 장면에서 나온다. 이렇듯 음악은 회상하기에 특화된 도구인 것 같다. 단순히 취향이나 음악성을 떠나서 아무리 듣기 좋은 음악이라도 그것이 나쁜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면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되고, 아무리 지겨워진 음악이라도 그것이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면 자연스레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된다.


행복지수의 최하점을 찍었던 재수시절엔 ‘프라이머리’의 ‘자니’가 한참 음악차트에 올라있었고, 거의 매일같이 그 노래를 들었다. 당시에는 밝은 멜로디와 재밌는 가사가 공부하는데 지루함을 덜어주었지만 재수가 끝난 후 1년간은 그 노래만 들으면 재수 생활이 다시 생각나면서 머릿속 연약한 부분이 ‘콕’ 찔리는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자니'를 틀면 빨리 다른 노래로 바꾸라고 말하곤 했으니 누가 보면 새벽 2시에 ‘자니?’라고 묻는 외로운 구남친에게 호되게 시달려본 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한편,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뮤지션 ‘존 메이어’의 노래를 들으면 조금 우울해진다. 그의 노래를 알게 된 계기는 당시에 만났던 구남친이 그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위의 ‘자니’와는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기억을 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헤어지고 나서 자연스럽게 존 메이어의 노래를 멀리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존 메이어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취향이 통하는 것 같다며 좋아했지만 어쩌면 그것도 그 사람이 나에게 씌운 콩깍지였던 건지, 아니면 많이 들어서 질려 버린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자체로 싫은 건지 지금은 예전에 들었던 것만큼 좋게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좋은 기억을 불러와서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들이 있다. 3년 전 미국 여행 중에 반복 재생하며 들었던 호주의 남매 듀오 밴드 ‘lawrence’의 ‘Do you wanna do nothing with me?’도 그중 하나이다. 그 노래를 들으면 여행 중에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단정히 나갈 준비를 한 다음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하며 설레는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가던 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때 여행에서 만났던 풍경들도 이어 떠오른다. 그리고 아시안 여자들만 골라 좋아했던 숙소 주인부터 한국을 사랑한다며 손등에 뽀뽀를 해주던 게이바 사장님 등 재밌었던 인연들과 맛있다고 소문난 대학교의 학식을 먹을 수 있게 학생증을 빌려준 친구,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함께 바다를 보며 자전거를 타던 친구도 그리워진다.


앞으로  어떤 기억들이 어떤 음악에 담기게 될까? 이왕이면 추억을 담은 음악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추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은 것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지나고 나면  추억이다.”라는 말이 이해가 안간다. 나쁜 기억들은 감히 추억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지 않은가. 그건 그냥 나쁜 기억일 뿐이다. 추억은 적어도 떠올렸을  아련해지거나 따뜻해지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몇십   코로나19 종식되었을  “코로나19  추억이었지.”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인  같다. 아무튼, 언제 추억이  만한 일들이 생겨날지 모르니 꾸준히 음악을 들어야겠다. 너무 자주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져도 버리싶지 않은 나만의 믹스테이프를 수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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