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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Sep 27. 2020

#02 사랑을 담는 펜던트 목걸이

골동품점에 들어온 두 번째 물건


물건 주인의 말 

나의 사랑이라고 적혀있는 작은 펜던트 목걸이예요. 이 안에 들어가는 사진의 주인공을 평생 기억하겠단 마음으로 가져가세요.  




가게 주인의 말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때문에 나의 유년기는 가정부 아주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는데, 나는 그분을 항상 ‘아줌마'라고 불렀다. 당시 어린 나는 아줌마를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좋아했어서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줌마가 일을 마치고 귀가하실 때마다 엄청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기억이 나는 시점은 아마 조금 더 나이가 차서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우는 것으로 아줌마를 잡아 둘 수 없다는 것과 다음날 아줌마는 어차피 또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인 것 같다. 


 유년 시절의 기억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아줌마의 퇴근시간이다. 나는 현관부터 “안녕~"이라며 작별 인사를 시작하고 아줌마가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나가면 인사를 계속하기 위해 안방 창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선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멀어지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며 안녕, 안녕을 계속 외쳤고 아줌마는 그런 나를 위해 열 걸음마다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줌마가 대문 밖 삼거리를 지나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긴 인사는 끝이 났다. 엄마는 내 작별인사가 서럽게 들린다며 중간에 그만하라 했지만 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보다 아줌마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만든 반찬이 맛이 없다며 엄마가 불만을 말하면 나는 무조건 괜찮다며 아줌마 편을 들곤 했다. 엄마, 아빠가 여행을 가서 혼자 밤을 보내야 되는 날이 생기면, 아줌마가 옆에 함께 있어줬는데 나는 그런 밤이 참 좋았다. 자고 일어난 다음날에는 아줌마가 밴 배게 귀퉁이에 보드마카로 점을 찍어 표시를 해놓고 그날 밤 끌어안고 잤다. 어느 날은 내가 베개 4개를 끌어안고 자려하니까 엄마는 베개에 이상한 집착 부리지 말고 정신 차리라며 베개를 빼앗았다. 나는 차마 아줌마가 베고 잔 배게들이라서 그런다고 말을 못 하고 엉엉 울었다. 엄마는 내가 자기보다 아줌마를 더 좋아한다고 서운해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바엔 그냥 베개 집착증으로 오해받아 혼나는 것이 나았다. 


아줌마는 남편을 잃은 아내였고 가정부로 일하는 것을 알면서도 몇십만 원만 꿔달라고 하는 철없고 아픈 아들을 둔 엄마였고 일일 드라마의 악녀를 보며 신랄한 말을 뱉어대던 욕쟁이였다. 항상 강해 보였던 아줌마가 점점 몸이 약해지고 우리 집에 오는 날이 일주일에 5일, 3일, 1일로 점점 줄어갔다. 내가 고등학생 즈음이었나. 아줌마는 더 이상 몸이 아파 일을 하실 수 없어졌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왔던 날, 나를 안으며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날도 아줌마의 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10년 넘게 해오던 대로 창문에 기대어 서서 멀어지는 아줌마를 보며 안녕을 외쳤고 나에게 아줌마는 항상 하던 것처럼 열 걸음마다 돌아서서 인사를 해주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 이별이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니. 저녁 내내 가족들 앞이라 참아왔던 눈물이 그때 터졌던 거 같다. 그렇게 집 앞 삼거리에서 아줌마는 사라졌다. 


2년 정도 흘렀을까, 엄마가 갑자기 아줌마가 많이 위독하신 것 같다며 함께 아줌마네 집에 찾아가 보자고 말했다. 정확한 주소도 알지 못한 채 주변에 물어가며 겨우 도착한 집에 들어서자 어두운 표정의 중년 여자가 우리를 맞이했고, 좁은 거실 한쪽엔 몰라보게 야윈 아줌마가 등을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반갑게 인사하고자 했던 목소리가 목에 먹먹히 걸려버렸을 때, 옆에서 이미 엄마는 훌쩍이고 있었다. 아줌마도 우리 얼굴을 보곤 따라 우셨다. 그 집에는 아줌마의 며느리와 손녀가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엄마와 나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혹시나 그들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좁은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아줌마를 귀찮게 느끼지는 않을까, 빨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하며 속으로 그들을 경계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줌마 허리 밑에 흰 돈 봉투를 넣어주었는데 혼자 움직이지 못하는 아줌마가 그 돈을 쓸 리가 없으니 간병비 겸 넣어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줌마를 보는 게 진짜 마지막일 것 같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엄마가 아줌마의 상태를 묻기 위해 그 집에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엄마는 나에게 돌아와 아줌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아줌마의 장례식도 다 끝난 후라고 했다. 왜 미리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의 장례식을 못 갔다는 사실이 허무했다. 그리고 아줌마에게 많이 미안했다. 내가 가줬으면 분명 아줌마도 더 좋아했을 텐데. 


며칠 전에 꿈에 아줌마가 나왔다. 십 년 만에 본 아줌마의 모습이 너무 선명해서 기뻤다. 그런데 정작 그 선명했던 눈코입을 다시 머릿속에 그려보려는데 군데군데 흐릿하다. 평생 기억하고 싶은 사람인데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두지 못해서일까. 같이 셀카를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대면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가리던 아줌마의 모습만이 얼핏 떠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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