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골동품점을 열었습니다 2
이 엽서는 오래전에 저희 우체국으로 반송된 엽서인데, 폐기될 때가 한 참 지났지만 전에 일하시던 분이 예뻐서 보관 중인 엽서래요. 대충 내용을 보아하는 신년을 축하하는 내용이 담겼네요. 남이 쓴 편지를 버리기도 뭐하고 이곳에 내 놉니다.
엽서나 편지 쓰는 걸 좋아한다. 초, 중학교 때는 심심하면 친구들이랑 써서 교환하곤 했었는데 이제 핸드폰 SNS를 통해 너무나도 쉽게 서로의 상황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졌다. 이 점이 참 편리하면서도 못내 아쉽다. 나는 머리에서 말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 말로 하지 못했던 부분을 편지로 쓰면 마음 구석에 있던 감정들을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 그것도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솔직하게. 타이핑보다 느리지만 연필이 써 내려가지는 순간순간에 받는 이를 향한 나의 마음이 더 담긴다. 그 누구의 글이라 하더라도 직접 손으로 쓴 글은 쓰는 사람의 매력을 담는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엽서를 기념일 아니면 딱히 쓰지 않고, 그 기념일의 엽서조차 온라인 메신저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온라인 상에서의 대화가 만연한 탓인지 SNS에 일명 '저격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지만 받는 대상은 분명히 정해져 있는 엽서에 가까운 글인 것이다. 비슷한 예로 몇 년 전에 나는 헤어진 애인을 자극하기 SNS 프로필 사진을 쓸쓸해 보이는 것이나 아니면 오히려 매우 즐거운 것으로 바꾸곤 했다. 그 안에는 "나 지금 네가 없어서 힘들어.ㅠㅠ" 혹은 "너 없이도 내 인생이 매우 즐겁단다.>. <"라는 글을 담았다. 나 말고도 이런 피곤한 짓을 하는 사람이 좀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런 의미부여의 폐해인 건지 몇 번은 아무런 의도도 없었던 사람에게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오해를 받았던 경험도 있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 커버를 프로필 사진에 올렸는데 그 사람은 “너 그 사진은 왜 올린 거야?”라고 물어봤다. 노래 가사에 의미부여를 한 것 같았다. 나는 진심과 당황스러움을 담아 “그냥.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 사람에게 “그냥. 좋아서.”는 “그냥. 네가 좋아서.”로 이해하는 듯했다. 엽서처럼 1:1 교류가 아니니 SNS에서 오가는 것들은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감정이 이해가 된다. 누군가가 좋아지면 그 사람의 의도를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게 되니깐. 문제는 그 해석이 틀렸을 때다. 오해한 사람은 졸지에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오해받은 사람은 가해자로 전락한다. 어찌 되었든 누군가가 날 좋아해 준다면 그 감정에는 내 책임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서 하는 착각은 흔하디 흔한 짝사랑의 과정이겠지만 내가 누군가를 오해하게 했다면 책임지고 해명하고 싶다. 애초에 나는 그런 SNS로만 하는 플러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사랑 받을 자신이 없는 사람이 "내가 여기에 공공연하게 티 냈으니깐 이 관계는 네가 눈치껏 알아서 해." 라며 관계의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어물쩡 넘기며 떠보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랑 가까워지고 싶을 땐 직접 연락을 하던가 만나러 가는 성격이니 오해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가끔 심심할 때 초등학교 때부터 모아 온 편지와 엽서들을 쏟아서 다시 읽어본다. 귀엽고 다정한 글들이 난무한다. 글에는 분명 이름은 있지만 지금은 인연이 끊긴 사람들도 있다. ‘좋은 친구였는데 지금은 뭐하고 살려나.’라는 생각이 든다. 안 좋게 끝난 관계의 사람의 편지를 보면 ‘이 사람이 이렇게 다정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하는 생각도 든다. 편지가 사람을 감성적이게 만든 것일까? 편지들을 통해 과거를 훑다가 한 생각. 다정하게 대해줄 수 있는 것도 한때라면 지금 조금 더 다정해보자.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엽서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