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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Aug 01. 2021

2주 만에식물 하나가죽어버렸다

희다가든의두 번째식물 일지

제목 그대로다. 나는 2주 만에 행잉 플랜트 하나를 죽여버렸다. 다른 식물들과 다름없이 햇빛을 바로 씌어준 것이 원인이었다. 특유의 작고 얇은 잎들은 뜨거운 여름빛의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혹시나 해서 실내로 들인 다음 물을 주어봤지만 며칠째 다시 소생하는 잎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의 무지와 무책임이 미안할 따름이다. 각각의 식물마다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모두 다르니 미리 인지하고 키워야 했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생각 중. 


식물 하나가 빠진 창문 밖 작은 정원은 좀 허전해졌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식물을 사서 들일 생각을 하다가 괜히 또 희생양만 늘리는 것은 아닐까 하여, 아빠가 옥상에서 키우던 페퍼민트와 무늬 접란을 가지고 내려왔다. 무늬 접란은 지금까지 어느 환경에서나 놀라운 번식력을 보여주며 잘 자라주어서 큰 걱정은 안 되지만 페퍼민트는 가끔 햇빛이 너무 쨍쨍하면 시들시들해지는 모습이 보여 신경을 써주어야겠다.

아, 어제는 끔찍한 것을 보았다. 2주 전에 작은 화분을 콘크리트 벽돌 2-3개를 쌓아 그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게 왠 걸. 식물 자리를 재배치하느라 벽돌을 들추어보았더니 바닥의 습기 때문에 색이 짙게 변한 맨 아랫 벽돌에 괴상한 벌레들이 몇 마리 서식하고 있었다. 하수구에서 올라온 것 같은데 손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나게 생겼었다. 정말 끔찍했다. 으. 분명 식물에게 해로운 해충일 것 같다. (나에게 해로우니깐 그럴 것 같다.)   내가 벌레에 대한 면역을 높이는 수단 중 하나는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괴생물체와 내가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될 일은 없어지니 맘이 한결 편해진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뜨거운 햇빛을 싫어했던 식물이 뙤약볕 밑에서 말라죽어가던 느낌은 내가 벌레에 뒤덮여 죽어가는 느낌과 비슷한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큰 죄를 지은 느낌이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무엇을 싫어하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좋아하는 행동을 더 많이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맨날 같이 먹어주지만 그 후에 항상 나에게 벌레를 들이미는 사람보다, 피자를 같이 먹어주진 않지만 벌레를 들이밀지 않는 사람과 오래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주 만났으나 점점 거리를 두게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해주지 않아서 끝이 난 관계는 없었다. 그 사람이 자주 하는 행동이 내가 싫어하는 것이었거나,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나 스스로 하게 만들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인간관계를 100%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싫어하는 것은 들이지 말도록 해보자. 증오, 의심과 질투 대신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것들로 나의 정원을 채워보자.  "아, 여기라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곳. 그 안에서 서로가 가장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서 건강한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창문 밖 정원의 식물들에게도 다시 한번 얘기해준다. 


'네가 편히 자랄 수 있는 환경을 항상 고민할게.'

상대가 자라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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