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단상

한 뼘 떨어져서 바라보기

by 꿈마니

어린 시절 잠시 체조선수를 한 적이 있었다. 운동신경은 타고난 것임을 굳이 외면하면서까지 매달렸던 운동이었다. 난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는 신경세포를 달고 나왔다. 온동 신경 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임을 자각을 하고도 있었다. 때문에 더 끈질기게 그것에 매달렸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나의 못난 자격지심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더 그랬을 것이다. 남들이 할 수 없는(그들은 배우지 아니하였으므로) 약간의 묘기를 보여줌으로써 우쭐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앞에서 자신을 뽐낼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 유아적인 생각은 성인이 되고 중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이 시점에도 크기만 다를 뿐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요즘 난 한 뼘 떨어져서 바라보기 중이다. 아니 잠시 시간을 멈추고 나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기 중이다. 여기서의 평가는 당연히 상대적 평가일 수밖에 없다. 절대적 평가 기준으로 따진다면 아직 나의 그 철없는 우쭐댐이 분명 자만감으로 이어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며 세상에는 정말 많은 수의 대단하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연히 상대적 평가의 선상에 서 있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명예퇴직을 하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수 십 년 틈틈이 해 왔던 여행 생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1년 하고 반이 흘렀다. 그간의 경험과 여행의 횟수 그리고 조심스럽게 형성된 여행의 방향들이 성립되면서 언젠가부터는 나도 모르게 마치 경험 많은 여행가로 착각을 하게 되었다. 맞다 진한 착각이다. 그러나 아직 한참 멀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너무도 많으며 느끼고 그려보고 맛보아야 할 것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그것보다 몇 배 아니 몇수십 배 많음을 깨달았다. 잠시 시간을 멈추고 떨어서 바라보니 더욱 그렇다.

일 년을 여행으로 꼬박 시간을 바친 사람의 이야기, 지구촌 최고의 오지를 탐험하는 탐험가, 네팔의 험난한 코스를 종주하는 사람들, 억제할 수 없이 분출하는 감수성으로 주옥같은 여행 이야기들을 뿜어내는 작가들 앞에서 난 너무도 미약한 존재임을, 또 앞으로도 그러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한 뼘 떨어져서 바라보니 알게 된다. 정신이 번쩍 들고 부끄러움으로 얼굴마저 벌게져온다. 이제 그 우쭐스러움쯤은 버려도 되거늘, 충분히 그럴 나이도 되었지 않은가.

여행을 하다 보면 자만과 우쭐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된다.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위험은 바로 이러한 자만과 텅 빈 강정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마음의 우쭐댐에서 시작됨을 난 다소 경험을 하였다. 이제 또 한 번 자신을 멈추고 생각을 한다. 화려한 버섯에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숨어 있음을.. 약 효과가 뛰어난 버섯일수록 그 모양과 빛이 소박함을 말이다. 인생도 그리고 여행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화려함 이면에 자리한 공허함은 차 후 감당하기 힘든 헛헛함의 쓰레기를 가져다주지 않던가. 그렇다고 저 대단하게 보인 사람들에 대하여도 주눅 들일 은 결코 아니다. 나 자신을 조금 낮추고 나만의 길, 내가 느끼는 최상의 여정을 선택하여 꾸준히 전진해 나가면 될 일이다. 그것이 나를 가장 위하는 길이며 나의 진가를 발휘하게 하는 길이다. 사람들 앞에 우쭐대고자 하는 마음은 저 수만 길 낭떠러지에 버리고 말이다. 저들도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 아니던가.

오늘도 잠시 흩어진 마음을 다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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