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로 가는 여정에 잠시 페낭을 거친다. 지인도 만나보고 수년 전 이주 답사 겸 말레이시아 여행 중에 들렀던 페낭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좀 더 살펴볼 생각에서이다. 꿈은 이루라고 있는 것 아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련하게 갖고 있는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잘 된 준비는 필수이기에 3일 정도 머물 생각이다.
인천을 출발한 항공기는 현지 시간(라오스)으로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 비엔티엔 공항에 도착을 한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페낭으로 들어가는 여정이기에 택시를 잡아타고(공항을 나와 택시 안내 데스크에서 목적지를 정하고 요금을 지불 후 택시 승차) 비엔티엔 외곽,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미래 예약을 해 둠) 생각보다 깨끗한 숙소이다. 러닝에 반바지 차림으로 열쇠를 건네고 시설을 안내해주는 주인장의 얼굴이 인심 좋게 생긴 시골 아저씨 모습이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이내 곯아떨어진다.
어젯밤에 나를 데려다준 택시를 미리 예약해 둔 상태였는데 기사는 정확한 시간, 아니 좀 더 이른 시간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지런도 하다. 첫날 낯선 여행지에 대한 두려움에 제대로 얼굴을 보지를 못 하였는데 아침에 다시 보니. 그야말로 순수 그 자체인 얼굴이다. 살며시 미소를 짓는 얼굴은 더욱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의 성실함이 느껴져 살짝 돈을 더 얹어 준다.
비엔티엔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까지 두 시간 반의 비행이다. 시골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의 아담한 비엔티엔 공항에 비하여 그 규모나 시설 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크기인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을 하니 제복을 입고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말레이시아에 온 느낌을 제대로 실감한다. 수년 전 처음 말레이시아에 도착을 하였을 때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이다. 덥고 습한 공기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섞이어 피부를 묘한 기분으로 자극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 청사를 메운 가운데 진청색 제복에다 다양한 종류의 색으로 된 히잡을 쓴 여성들을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페낭행 비행기 탑승구로 향한다.(여행의 큰 실수는 이따금씩 찾아들고는 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어려움으로 고생도 하지만 여행의 중요한 히스토리의 한 페이지로 남기 마련이다. 잘못한 입국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한 시간을 보내고 페낭에 도착을 한다. 수년 전의 기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딸아이가 유모차에 누워 잠을 자면서 팔과 얼굴 다리 등에 모기에 물렸던 자리이며 아장아장 걷는 모습으로 면세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돌아온다. 잠시 가족을 생각하며 깊은 그리움에 빠져든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늘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을 하다가 이 번 여행은 혼자 여행이다 보니 전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진다.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생명보다 귀한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젖는다.
사퍼 아주머니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한다. 페낭 공항은 이미 익숙하다. 공항 청사를 나와 곧바로 가면 버스 승차장이고 왼쪽으로 가면 택시 승강장이다. 사퍼 아주머니가 메일로 일러준 주소를 주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 기사가 문을 열어준다. 살짝 어둠이 드리운 페낭 시내를 달린다. 열대나무로 된 가롯 길을 지나고 훤히 트인 공간에는 페낭대교의 야경이 펼쳐진다. 아직은 짙은 어두움이 아니기에 검은색을 동반한 진청색의 하늘에 고색창연한 불빛이다. 야경이란 놈은 어디서든 그의 화려함을 뽐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덕분에 감상자는 즐거움과 황홀감에 빠진다.
조지타운 근처의 골목길에서 기사 양반이 살짝 길을 헤맨다. 그리고 잠시 후 철창문이 굳게 닫힌 이층 집 앞에 내리더니 초인종을 누른다. 이내 문이 열리고 푸른 옷에 하늘색 머플러를 머리에 두른 아주머니가 나오니 몇 마디 주고받고는 '이곳'이라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메일로만 작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사퍼 아주머니를 직접 만나는 순간이다.
"먼 데서 오느라 고생 많았지? 식사는 한 거야? 나 혼자 살아. 방은 뒤 쪽에 있어"
사퍼 아주머니는 나를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여행의 피곤함을 걱정해 준다. 이틀 동안 내가 묵을 방은 사퍼의 집 주 공간에서 좀 떨어진 뒤 쪽 구석에 있었다. 아담한 침실에 일인용 침대와 화장실 그리고 에어컨과 화장대가 딸린 방으로 여성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분위기 있는 공간으로 혼자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방이다.
"피곤할 텐데 일찍 쉬어요. 나 혼자 살기 때문에 남자 손님은 절대 받지 않는데 당신 지인의 부탁이 있어서 믿고 받은 거예요. 과일은 주방의 식탁 위에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먹으면 돼요"
"예 감사합니다"
왜 아니 그렇겠나! 아무리 70이 가까운 노인 일지라도 여자는 여자가 아닌가. 혼자 사는 여성이 뭇 사내를 들인다는 것은 아무리 게스트하우스라 할지라도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하고도 남는다.
긴 여정으로 피곤한 몸은 결국 늦잠을 자게 하였다. 일어나 보니 주방에 빵과 과일 그리고 우유와 시리얼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주인 없는 집, 그것도 먼 이국땅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이 차려준 생전 처음 접하는 아침 식사이다. 낯선 듯 편안한 아침 식사를 느긋하게 즐기고 난 후 집을 돌아보니 제법 큰 구조에 아기자기함에 배어 있는 집이었다. 사퍼 아주머니의 섬세함과 예술적 감각이 집안 곳곳에 묻어 있는 듯하다. 침실 세 곳과 큰 거실 그리고 주방에다가 내가 묵고 있는 별채? 사실 이곳 말레이시아 중산층 이상은 가정부를 두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도 내가 묵고 있는 방은 가정부가 묵었던 방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혼자 사는 여자가 가정부를 둘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어젯밤 늦은 시간에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말레이시아 중산층의 집 구경을 제대로 해본다.
그러고 보니 꼼따 빌딩과 멀리 페낭 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가 하면 새소리 가벼이 들리는 가운데 개발 붐이 한창인 페낭의 공사 현장에서 나는 소음이 '따다다다' 하며 귓전을 울린다. 나중에 사퍼 아주머니를 통하여 제법 큰 규모의 호텔을 짓는 공사판에서 들려오는 소음임을 알게 되었다.
11시 즈음 주인 없는 집을 어떻게 따고 들어왔는지 지인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들어온다. 사실 지인이랄 것도 없다. sns를 통하여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분이라서 서로 안부도 묻고 계정을 찾아주는 이른바 '블로그 이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처음 접하는 게다. 그나마 자주 접하고 sns로나마 안부도 주고받으면서 궁금한 것들을 자주 주고받았으니 처음 얼굴을 대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덜 서먹하다.
"반갑습니다. 편히 잘 쉬셨어요? 어제 비행기를 놓치셨다고 해서 못 오시는 줄 알고 걱정을 했거든요. 다음 비행기를 타셨다는 문자는 밤늦게 받아서 오늘 아침에야 보았답니다."
"예 반갑습니다. 생각한 것만큼 편안한 인상이시네요.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예 저도요. 사실 사퍼가 남자분이라고 해서 절대로 안 받겠다는 것을 제가 우겨서 겨우 허락을 받았는데, 못 오시면 난처해질 뻔했지 뭐예요. ㅎㅎ"
그랬다. 사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을 해서 여객 대합실에서 페낭행 비행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라오스와 한국의 시차에 맞추어서 말이다. 다시 말하면 라오스와 한국의 시차는 두 시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시차는 한 시간인데 똑같이 두 시간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페낭행 비행기 출발 게이트에는 한 시간 늦게 도착을 하게 되었으니 비행기는 떠나고 나 혼자 황당하게 서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내심 조금 일찍 게이트에 도착을 한다고 했는데, 참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그래서 지인에게 비행기를 놓쳐서 당황스럽다는 문자를 남긴 것이고 다시 항공사 창구로 돌아와 페낭행 비행 편을 알아보니 다행히도 두 시간 후 한 편의 비행기가 있기에 재 구매를 하고 페낭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퍼와는 이곳에서 요리를 배우는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랍니다. 인도계 말레이시아 사람으로 정확하지만 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편하게 지내셔도 될 거예요. 아침은 드셨어요? 제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어야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네요"
"별말씀을요 이렇게 뵙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걸요. 라오스 여행 중 잠시 페낭을 더 알아보고 싶어서 온 건데요. 뭘."
"사퍼가 오늘 점심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지금 요리 강습하는 데에 있는데 그리로 같이 오라고 하네요" 요리 실습장에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한국인은 지인과 나뿐이다. 어색하고 긴장이 된다. 지인은 아는 사람들과 간간이 인사와 이야기도 나눈다. 잠시 후 사퍼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잘 쉬었어요? 아침은 먹은 거지요? 말레이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구경도 좀 하고 말레이 음식도 한번 맛보라고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음식 이름을 물어볼 정신이 없다. 낯설고 또 어색한 가운데 지인이 가져다주는 대로 먹을 뿐.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편안함이 있었다. 아니 편안함보다는 낯 선 이국 땅에서 현지인들의 문화와 음식 그리고 사는 모습들을 직접 경험을 한다는 것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발동을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의 그 낯섦과 어색함은 도전으로 바뀐다.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도전이랄까. 어느 순간 마음이 활짝 열린다.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였으니 내 마음에 그 무언가로 꽉 채워진 느낌이다.
"편히 쉬세요. 내일 아침에 올게요." 지인은 사퍼의 집에 나를 내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 다 되어 사퍼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들어온다.
"오늘 어땠어요? 음식의 맛을 묻는지 아니면 이색적인 경험에 대한 느낌을 묻는 것인지 그 의도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였고 충족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정말 좋았답니다. 감사합니다." 차 한 잔을 하면서 사퍼는 자기의 가족 이야기를 해준다. 남편은 덴마크 사람으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으며 자기의 일에도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작년에 돌아갔다고 한다. 아들이 둘이 있고 지금 모두 영국의 에든버러에서 직장을 다니는데 자주 오지는 못하고 일 년에 두 번 정도 다녀간다고 하는데, 혼자 살면서 생활의 불편함은 없지만 가끔씩 남편 생각이 날 때마다 슬픔에 잠기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들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약간 검은 피부에 전형적인 인도 여성인 사퍼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족애에 대한 나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해왔고 두 명의 아들을 잘 성장을 시켰으며 남편과도 애틋한 부부관계를 영위하였던 사퍼의 마음이 얼마나 공허할지 나 스스로를 투영시켜보며 대조적인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비록 지금까지 하루 정도 지낸 사이이지만 참으로 따스함과 인자함이 느껴지는 여인이다.
짙은 어둠이 내리고 베란다 넘어 도시의 불빛과 원형의 꼼따 빌딩의 조명이 저 멀리 페낭 힐의 불빛과 만나 패낭의 밤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덥고 습한 공기가 베란다를 타고 사정없이 넘어온다.
조용한 밤이다. 더불어서 외로움도 밀려온다. 우리 딸 잘 있는 거지? 아빠가 많이 사랑해. 잘 자 우리 딸! 여행을 떠나온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족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