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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11. 2021

마운틴 뷰로 이사오다.

자연을 집안으로 들이다.

 결혼한 이후로 5년 동안 24평 아파트에서 살았다. 신혼때는 두 사람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는데, 첫째,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살림살이가 많이 늘어나 버렸고, 집이 좁아서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생겼다.


5년 동안 모든 돈과 대출을 통해 38평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다. 이전 아파트는 동향이었고,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남향이었다. 이사하고 가장 마음에 든 부분 중 하나는 앞 베란다가 산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 아파트에서는 보지 못한 멋진 숲을 바로 보게 되니, 도시 생활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산과 숲의 경치를 구경하였다. 아침 바람에 실려오는 깨끗한 숲 내음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마치 진짜 숲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하였다.


예전 아파트에서 본 바깥 뷰, 뷰는 예쁜데 동향이라....


 이사를 오면서 내가 가꾸면 몇몇 화초들을 모두 처분하게 되어 몹시 기분이 안 좋았는데, 앞 베란다 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게 되었다. 산이 정면에 있어 무조건 장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단점이 몇 개 있긴 하였다.


5월에는 한 2주 정도 창문을 열어 두기가 어려웠다. 산에서 송화가루가 너무 많이 날라와서 잠시만 창문을 열어 두어도 바닥이 노랗게 되어 버렸다. 늦여름에는 이름 모를 나방들이 줄지어 날라와 방충망에 다닥다닥 붙어서 약간의 혐오감을 주었다. 비둘기들이 우리집 베란다 창틀에 잠시 앉았다가 가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사 온 (현재) 아파트 베란다에서, 정면에 산이 아주 예쁘다. (겨울)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에서 숲을 바라보는 시간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사실, 우리 애들은 숲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봄에 산 중간중간 분홍빛으로 물든 나무를 가리키며, 벚나무이다. 노란색을 가리키며, 개나리이다. 가을에 불게 물든 게 단풍나무고, 노랗게 물든 게 은행나무다. 이렇게 알려줘도 제대로 듣지도 않는 것 같다.


딱 하나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다 산 꼭대기에 구름이 걸렸을 때, 지금 산에 올라가면 구름을 만질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매번 이걸 나에게 물어보는데, 내 대답은 ‘좀 더 크면 꼭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구름을 만지게 해 줄게.’이다.


 우리나라의 전 국토의 60%이상이 산이지만, 집에서 창문을 열고 바로 숲을 바라볼 수 있다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시티 뷰, 리버 뷰, 오션 뷰, 모두 예쁘지만 계절에 따른 변화는 크지 않다. 숲은 그렇지 않다. 사계절 모두 다른 풍경을 선사하고,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유일한 뷰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란다에서 숲을 바라보는게 지겹지 않다.


현재 아파트방에서 바라본 마운틴 뷰 (여름)


 도시에서 숲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작게는 길 가의 가로수, 아파트 단지에 조성된 녹지, 공원 모두가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인간들이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남는 자투리 공간에 선심 쓰듯 만들어진 것 같이 느껴져서, 이런 인공적인 숲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


나무나 꽃이 아닌 사람을 우선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끔 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면 베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무가 잘려 나간 그루터기를 지나칠 때마다 사람들의 통행이나 시야를 위해 잘린 나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중국 출장 갔다 알게 된 일이 있다. 주로 중국 남부지방에 많이 가는데, 갈 때마다 가로수 가지치기를 하는 것을 자주 불 수 있었다.


더운 지방이라 나무가 너무 빨리 자라서 일 년에 몇 번씩 가지치기를 하는데, 우리 나라처럼 잔가지를 치는 게 아니라 거의 원 줄기만 남기고, 전기 톱으로 벌목하듯 사정없이 굵은 줄기를 잘라내 버린다. 그렇게 잘라도 몇 달 뒤 다시 가보면, 원래대로 가지와 잎이 우거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곳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나무나 다른 식물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몇 배나 더 들 것이다.


현재 아파트 거실에서 본 뷰 (여름)


우리나라의 산천을 금수강산이라고 하는데, 나는 중국 출장을 여러 번 다니고 나서야 이 뜻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숲이 제공하는 맑은 물과 공기를 중국에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일조량 강수량이 우리보다 많아도, 공기와 물이 깨끗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동고서저의 지형 때문에 숲이 자연적인 정수기 역할을 하며, 전 국토에 고르게 뻗어 있는 산맥들 때문에 바람이 산을 타며 이동하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집 앞에 이렇게 큰 정수기와 공기청정기가 있다는 것은 자연이 값없이 주는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 공기와 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깨끗하게 만든다.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잡념도 떨쳐버릴 수 있고,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끔 된다.


최근에는 숲을 볼 때마다 나도 저 숲에 사는 나무들처럼 한 자리에 깊게 뿌리내리고, 매년 똑같지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며, 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새들이나 곤충, 벌레들이 잎을 갉아먹고, 줄기에 구멍을 뚫고, 가지를 꺾어도 내색하지 않고, 푸르게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긴 하지만, 나무가 한 해 한 해 조금씩 나이테를 늘려가는 만큼 나도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해 내딛는다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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