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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Feb 21. 2021

원룸

홀로 피어 있는 꽃은 아름답기 보다는 외로워 보인다.

10년이 지난 30대 인생의 가장 외롭된 시절의 이야기



 

 어둠이 깔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가을의 저녁, 매일 조금씩 차가워져 가는 밤바람은 늦은 귀가 길의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바쁘게 만든다. 하루의 고단함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은 가볍고, 경쾌하다.


모두가 길거리의 어둠을 피해 따뜻한 집의 형광등 불빛으로 향하는 그때, 나는 무거움 발걸음을 끌며, 내가 사는 동네의 골목길을 들어선다. 회색 시멘트 바닥과 할로겐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가로등 불빛을 보면서 귀가를 하는 나의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원룸촌의 건물 벽을 타고, 골목길을 파고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좁은 공간 11평의 나만의 아지트로 길잡이를 한다.


겨울밤 원룸 창문으로 찍은 사진,  바깥 풍경마저 외롭게 느껴졌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여 올라온 G공업 도시, 나는 이곳의 이방인이다. 입사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지만, 25년 넘게 살아온 떠나온 고향이 내가 사는 곳이며, 지금쯤 9시 뉴스를 보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계신 부모님이 사는 고향집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5년이라는 시간을 여기 G공업도시 원룸에서 살았지만, 단 한번도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혼자서 좁은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간다. 경제적인 이유, 학업이나 일자리, 또는 젊은 혈기에 독립을 꿈꾸며 원룸촌을 찾아 든다. 나의 경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 회사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좁은 공간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 싫기도 하였고,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막연하게 멋있고, 자유로울 것 같다는 치기 어린 생각도 분명 있었다.


 3층 302호, 비밀번호는 4324, 나는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원룸 안을 쓱 살펴보았다. 어질러진 책상, 항상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불, 그리고, 아침에 벗어 놓고 나간 옷가지들, 아침에 출근한 이후 단 한가지도 바뀐 게 없다. 심지어 공기마저 똑같다. 아침에 샤워하고 맡았던 습기 찬 욕실 냄새가 확 풍겨진다. 가만히 서 있자 현관 등이 꺼지고, 나는 익숙하게 어둠 속에서도 형광등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컴퓨터를 켜고, 옷을 갈아입고, 보일러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빨래가 말랐는지 확인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이 있나 확인을 한다. 냉장고 안에는 과일, 오렌지 주스, 계란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냉장고 안에 뭐가 있는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안을 들여다보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늦은 퇴근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곤을 먹는 것으로 풀려고 했는데, 냉장고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뭔가 사야 할 것 같다.


일본 출장을 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너무나 많은 편의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편의점 출점 거리제한을 두어야 할 정도로 과밀 되어 있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는데, 일본은 더 많은 편의점이 있었고, 운영도 잘 되고 있었다. 아마도 1인 가구가 더 많고, 자가용이 그렇게 많지 않아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도 적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도 경제가 계속 안 좋아지고, 고령화, 혼인율, 출산율 감소가 이어진다면, 곧 일본과 비슷하게 될 것 같다. 28.6%가 1인 가구라 하니 어쩌면 몇 십 년 후엔 50%이상이 될 지도 모르겠다.


 샌달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와 편의점으로 갔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소량의 생필품을 사는 데 최적화되어 있으며, 한밤중에 어두운 골목길 한 켠에서 불을 밝히고, 누군가 깨어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험한 세상에서 정말 위안이 된다.


원룸촌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도 많지 않은가. 이 골목의 오아시스이고, 등대, 경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편의점 사장님이 반갑게 눈인사를 한다. 나는 여기 편의점 단골이다.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을 여기서 구입하니까 자연히 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편의점 사장님과는 잘 알고 있다.


“오늘은 늦게 오셨네요.”


“네, 요즘 일이 바빠서 빨리 퇴근하기가 어렵네요.”


나는 인사말에 즉각적으로 대답하고, 항상 그래왔듯 냉동만두와 샌드위치, 그리고,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하는데,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삼각김밥 두 개를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늦은 밤 편의점을 방문하는 단골들만의 특권이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비닐봉지에 삼각김밥과 방금 산 것들을 밀어 넣고, 빠르게 편의점을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는 몰랐는데, 문에 노란색 딱지가 붙어 있다. 가스 검침하러 왔는데, 없어서 다음에 방문하겠다는 내용이다. 원룸에 혼자 살면서 몇 가지 곤란한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달마다 돌아오는 가스 검침이다. 낮에는 내가 출근하기 때문에 검침하러 와도 당연히 문을 열어줄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이 분이 내가 있는 밤이나 토, 일요일에 오시는 것도 아니고, 전화로 언제 와 달라고 말씀을 드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제때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몇 번의 약속 끝에 겨우 검침을 하고 나면, 또 다음달 검침이 다가온다.


검침하는 사람도 불편하고, 받는 사람도 불편한데, 아직 관련 법안이나 행정은 다인 가구 위주로 되어 있으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최근에 앱을 사용하여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빨리 확대,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다.


 PC를 켜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주섬주섬 사 온 것들을 먹을 준비를 한다. 냉동만두는 전자렌지에 돌리고, 삼각김밥은 그냥 먹기로 하였다. 샌드위치는 일단 냉장고로.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식사를 하면 그래도 외로운 것을 잠깐 잊을 수가 있었다. 혼자서 먹는 것,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내 뱃속을 채우는 행위는 자유롭기는 하나, 반복되다 보면 이곳에서 입을 단지 먹는 것에만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고, 외로워진다. 그래서, 혼자서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별로 없다. 어차피 외롭게 먹어야 되는데 가급적이면 간편하게 먹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방 안에 쓰레기들이 제법 눈에 보인다. 빈 페트병, 어제 받은 택배 박스, 그리고, 방금 먹은 것들의 포장지 등등, 쓰레기 봉투를 꺼내 집어넣는데 애매하다. 가장 작은 봉투를 샀는데도 2/3정도 밖에 차지 않는다. 지금 버리려고 하니 돈 주고 산 쓰레기 봉투가 아깝고, 나중에 버리려고 하니 냄새가 방 안에 밸까 겁난다. 잠깐 고민하다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근처 전봇대에 어지럽게 쓰레기 봉투들이 널려 있다. 이곳 주변의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다. 아무도 이곳을 관리하지 않고, 그저 수거 차량이 와서 수거만 해 가기 때문에, 이곳은 항상 지저분하다. 분리수거 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대형 폐기물이나 음식물 쓰레기만 없어도 양호한 상황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나도 분리수거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 2/3 봉지 봉투를 버리는 것도 아까운데, 각각 나눠서 버리자면 여간 귀찮고, 돈이 드는 일이 아니다.  


편하게 살고 싶어서 찾아온 원룸인데, 이 정도되면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정말 내가 편하게 살고 있는 것 맞는지, 혹시나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는지, 환경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원룸에 혼자 사는 이유가 간편하고, 편리하고, 자유롭기 위해서 였는데, 막상 살아보니 혼자 살아서 불편하고, 외로운 것이 더 참기 힘든 일이다.


물론 더 작은 주거형태도 존재하지만, 한 사람에게 단 하나의 방만 허용된 최소한의 주거 공간, 이 곳에서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들다. 담벼락 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검은 고양이가 나에게 빨리 들어가 쓰레기 좀 뒤지게. 라는 말이라도 해 준다면 외로움이 다소 줄어들 것만 같다.


싱크대 수납장, dvd랑 게임 타이틀이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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