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불안에 대한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코로나19 확진자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회사 후배가 읽어보라고 보내준 링크를 타고 가 보니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https://brunch.co.kr/@shinecho21/1)'라는 제목의 글이 보였어요.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습니다. 당신은 남편에게 감염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라는 문장을 읽게 됐을 때, 제 마음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여섯 살 아이와 모유 수유 중인 백일도 채 안 된 아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 어떡해.'
지금과 비슷한 마음이었던 적이 또 한 번 있었습니다. 지난 2월, 4살 난 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이 되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아직 어린 저 아이는 어떻게 긴 격리 생활을 할까' 궁금하고 걱정이 앞섰을 때 뉴스는 친절하게도 아이의 안부를 전해주었습니다.
감염되지 않은 아이 엄마가 마스크와 고글을 쓰고 의료진이 입는 방호복을 입고 24시간 아이와 함께 생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나라에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날은 쉽게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당신 말처럼 '어느 날 내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된다면?' 생각하게 되는 날은 계속 몸을 뒤척여야 했습니다. 불안이란 놈은 생각할수록 커져서 그날 하루치의 잠을 모두 갉아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도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아이와 관련된 기사, 엄마들과 관련된 기사에 눈길이 가는 것은 제가 엄마라서 그런 거겠죠?
당신은 '병원에서의 격리생활에 대하여(https://brunch.co.kr/@shinecho21/7)'라는 글에서 말했죠.
"격리된 병원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 지겹도록 일상적이지만 가장 애타게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아이들과 남편을 만나 볼을 맞대고 가족이 모여 밥 먹는 시간. (...) 아이도 내게 하루에도 몇 번씩 영상통화를 하며 '엄마 몇 밤 자고 올 거냐'라고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몇 밤일지 알 수가 없어 '금방 갈게'라는 말로 얼버무린 지가 벌써 2주가 넘었다. (...) 아이를 생각하면 그저 미안하고 기특하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이 지루한 시간들을 온 몸으로 통과하고 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윤여림이 쓰고 안녕달이 그린 그림책 제목이에요. 당신 말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이 지루한 시간들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나면 가족과 다시 만날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이요. 제가 당신이 쓴 글 어느 귀퉁이에 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다고 한 걸 기억하나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이 책은 2017년 처음 나왔는데요. 윤여림 작가는 작가 소개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격리 불안은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 아빠도 느끼는 감정이죠. 아이들과 부모 모두 격리 불안을 건강하게 극복해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꼭 지닌 채로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크고 작은 격리 불안을 아들딸과 기꺼이 이겨내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요.
아, 맞아요. 분리 불안은 아이에게만 있던 건 아니었어요. 저도 큰아이가 5학년 무렵 학교에서 수련회를 간다고 했을 때 떠나는 날 며칠 전부터 괜히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그런 마음이 든 게 어디 그때뿐이었을까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매 순간 무시로 일어나는 일들이었죠.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살 뿐이에요.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공유하는 분리되어 있던 시간을 역추적하는 그림책이에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같은 시간을 다른 공간에서 보낸 이야기죠. 특히 엄마 입장에서요. 그림책 속 엄마는 처음으로 엄마품을 떠나 하룻밤 자고 나올 아이를 유치원 앞에서 기다려요. 오래전 기억들을 떠올리면서요. 나도 당신도 한 번쯤 다 경험했던 일일 거예요. 가령 이런 모습이 그래요.
"네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잠든 네 곁을 쉽게 떠나지를 못했어.
떠났다가도 금방 돌아와 다시 네 숨소리를 듣곤 했어.
내가 안 보는 동안 혹시라도 네가 어떻게 될까 봐 겁이 났거든.
웃기지?"
여기 웃긴 사람 하나 더 추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작가는 말해요. 잠깐 서로 못 본다 하더라도 아무 일 없이 꼭 다시 만난다는 걸 우리는 서로 조금씩 알아간다고요. "엄마 없다, 까꿍!" 놀이를 하면서 알게 되고, 잠깐 화장실 갔다 올 때(문 앞에서 우는 너)도 알게 되고, 쓰레기 버리러 잠깐 나갔다 올 때도 알게 되죠(현관 앞에서 우는 너).
처음 유치원에 가던 날 안 가겠다고 우는(다시는 엄마를 못 볼 것처럼 서럽게 우는 너) 아이를 몇 날 며칠 달래야 하는 그런 수많은 날을 보내며 아이는 알게 돼요. '엄마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금방 온다고,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난다는 걸' 말이에요. '아무리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난다는 걸' 말이에요.
그리고 엄마도 알게 돼요. 떨어져 있는 아이가 당장은 보고 싶고, 허전하고, 걱정되지만, 꼭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는 걸 말이에요. 그리고 생각보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잘 지낸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떠올리게 되겠죠? 그래서 작가는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사랑하는 아이야,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렴.
날다가 힘들어 쉬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오렴.
엄마가 꼭 안아줄게."
그런데 저는 이 말이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만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아이가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도 들렸어요. 그래서 저는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온 당신을 아이가 꼭 안아주길요. 당신에게 그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요. 당신도 아이를 꼭 안아주기를 바랍니다. 아이에게 그보다 더 따뜻한 품이 어디 있을까요.
부디 당신이 '이제는 집으로 가셔도 좋다'는 의사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 '지겹도록 일상적인' 일을 다시 반복하며, '가장 애타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젠가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OO아, 우리도 그랬지? 엄마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 씩씩하게 잘 견뎌줘서 고마워. 우리도 항상 생각하자. 여기 나오는 엄마와 아이처럼 우리도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다'라고 말이야."
그 시간을 잘 견뎌낸 서로에게 잘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줄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