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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Mar 10. 2020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된다면?


저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 현재 경기도의료원의 음압 병동에서 격리 생활중입니다. 동시에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여섯 살인 첫째 아이와 아직 태어난 지 백일도 채 지나지 않은 둘째 아이가 있습니다. 뉴스에서 매일같이 급증하는 확진자를 숫자로만 접하다가, 그 몇 천 명의 숫자 중 하나가 내가 되었습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격리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스러운 이 상황에 확진자라고 밝히는 사람의 정보는 없어 더 두려웠습니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내가 아닌 당신도 어느 날 갑자기 확진자가 될 수 있는 이 상황에 제가 먼저 확진자로서 느낀 바를 남겨보고자 합니다.

저는 남편으로부터 감염되었습니다. 남편은 발열 증상 없이 심한 근육통과 몸살감기로 보이는 증상을 이틀간 앓았는데 알고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인이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부터 감염되었습니다. 남편이 코로나 확진자라는 사실을 아침에 전화로 듣고 잠이 확 깼습니다. 집 안에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소란스러운 상황을 상상한 것과는 달리 남편은 보건소 전화를 받고 조용히 제 발로 집을 나갔습니다. 집 앞에 대기 중인 구급차를 타고 격리병동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남편이 이송되고, 동네 방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에는 방진복을 입은 보건소 담당자가 찾아왔습니다. 확진자의 접촉자이기에 아이들과 저는 검체 채취를 진행하였습니다. 여섯 살 아이는 집에 들이닥친 처음 보는 낯선 옷을 입고 고글을 낀 사람들의 모습에 날을 잔뜩 세웠습니다. 검체 채취를 하면서 코와 목을 한참 찌르니 아이는 헛구역질을 하고 눈물, 콧물을 흘렸습니다. 둘째 아이를 강제로 잡고 검사를 할 때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그 후 집 안은 방역으로 인한 독한 소독약이 뿌려졌습니다. 소독약을 뿌린 후엔 얼굴이 따끔한 정도라 하여, 이후 6시간 동안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였습니다. 집이 소독으로 엉망이 되었고, 아이들과는 유일하게 안방에서만 생활을 하였습니다. 저희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문에 동네는 상당히 날 서 있고 예민해졌습니다. 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방 한 칸에 꽁꽁 숨어 아이 둘을 바라보며 마음을 굳건히 다졌습니다. 남편이 없는 이 주 간의 시간 동안 아이들과 이 시간들을 어떻게든 잘 이겨내리라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든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새벽 1시 반, 보건소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습니다. 제가 어제의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뒤이어 저를 제외한 아이들은 모두 음성 결과이기에 우선 당장 아이들을 저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전화였습니다. 

머리가 새하애졌습니다. 당장 아이들과 떨어졌고 손이 떨렸습니다. 저는 열도 없고, 호흡기 증상도 없고, 아픈 곳도 없었습니다. 다만, 모유를 먹이는 백일도 안된 아이와 여섯 살짜리 딸과 어떻게 떨어져서 지내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급하게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데리러 집에 왔습니다. 잠든 아이들을 깨워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당장 필요한 분유와 기저귀, 옷가지 등을 챙겨 떠났습니다. 뒤이어 새벽 세시, 저도 구급차를 타고 경기도의료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집 전체와 저희 동네는 다시 한번 방역이 진행되었습니다.


자라면서 단 한 번도 구급차를 타 본 적이 없을 만큼 저는 건강한 체질입니다. 아기를 낳기 위해 출산을 제외하고는 병원에 입원을 해 본 적도 없는 제가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음압 병동에 격리되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새벽 네시, 역학조사관에게 전화로 이동경로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어린 아기가 있어 선택의 여지없이 집순이 생활에 충실했기에 이동경로를 기억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천지의 신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고,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하였기에 다행히 접촉자는 가족을 제외하고 없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날을 샜습니다. 아이들 걱정에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모유수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던 둘째와, 잠들기 전이면 꼭 엄마를 찾는 첫째 걱정에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내가 원망스러워졌습니다. 내가 코로나 확진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함께 붙어 지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유를 먹이고 안아 준 시간들, 아이를 재우려고 서로 마주 보고 누워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 뽀뽀를 해 준 순간들. 아이들 밥을 챙겨주는 동안, 서로 마주 보고 들숨 날숨을 내쉬면서,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동안 아이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시켰을 수도 있을 가능성에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이 날은 악몽 같은 하루였습니다. 하루는 또 어찌나 길던지요.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의 두려움보다 가족들과의 격리생활과 추가 감염 가능성의 불안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적어도 아이들과 친정엄마가 음성이란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였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나니 온통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였습니다.


-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음에도 증상이 없음에 감사하고, 저랑 남편이 양성임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이 붙어 지낸 아이들이 음성임에 감사합니다.
- 갑자기 벌어진 긴급 상황에서도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격리 상태로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 잠들어있던 새벽 시간에도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빠르게 확인한 보건소 직원분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 어디가 불편하진 않은지 매번 먼저 나서서 따뜻하게 챙겨주는 의료진, 의사선생님, 간호사선생님, 병원시설팀, 영양실 분들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병원에 격리됐다는 소식에 영양제와 책들을 병원으로 보내주려는 친구들의 마음에 감사합니다.(병원에 택배가 불가능하므로 받지 않음)
- (봄방학 중이긴 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유치원에 연락하여 내가 확진자임을 밝혔음에도 따뜻한 응원의 연락을 남겨준 엄마들에게 감사합니다.
- 우리를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랜선으로, 아이들과 갑작스레 떨어진 마음을 공감하며 쾌차하라는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어서 감사합니다.

-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진자 숫자가 매일 같이 수백 명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겪어보니 코로나는 독한 감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령이거나 지병이 있던 환자를 제외하고는 몸살감기처럼 지나갑니다. 혹은 저처럼 아무 증상이 없이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반응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애초에 내가 코로나 인지도 모른 채 지나갈 수도 있는 거지요.


코로나는 약이 없습니다. 돌려 생각해보면 치료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가 면역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코로나입니다. 강한 전염성을 우려하여 비록 병원에 격리되어 있기는 하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코로나는 제 몸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도 사라질 겁니다.


코로나는 곧 지나갑니다. 다만, 주변에서 받은 따뜻한 응원의 말들은 평생토록 기억될 겁니다.

이제는 저보다 고령의 부모나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이웃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지 돌아보게 됩니다.

대구로 내려가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확진자의 치료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구호대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의 마음은 어떨지 살펴보게 됩니다.


그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야겠습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내어 어서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디 더 이상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지 않기를, 면역력을 회복하여 모두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의료진들이 지치지 않기를, 회복된 일상에서 자영업자들의 숨통이 트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남긴 말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로부터 살아날 겁니다. 저도, 7,000명에 육박하는 다른 확진자들도, 연기된 개학 일정에 집에서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는 엄마도, 경기가 어려워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 분들도 우린 모두 살아남아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코로나에게 보여줄 겁니다.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차분하게 버티는 우리의 저력을 믿습니다. 힘내라 대구경북! 힘내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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