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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Mar 21. 2020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 병원 격리생활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을 구분하기

병원에 격리된 지 벌써 네 번째 주말입니다. 그 사이 기쁜 소식이 하나 생겼다면 남편의 퇴원입니다. 남편은 코로나 반응 검사 결과, 두 번 연속 음성 결과로 완치 판정을 받아 퇴원했습니다. 남편이 퇴원하고 나니 '나도 이제 드디어 곧 나가겠구나' 생각을 하고 기대가 커졌는데 아니었습니다. 저는 4차 검사에서도 5차 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제가 출산한 지 얼마 안 됐고 모유수유 중이었던지라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상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늘고 길-----게 가는 코로나라니. 오 마이 갓. 소식을 전달받으며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기운이 빠집니다. 여기서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됩니다. 금방이라도 눈물보가 터질지 모르니까요.

남편이 퇴원후 전달해준 책과 편지

다시 또 실망스러운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할 생각을 하니 너무 싫습니다. 다들 마음 놓고 기다리자고 제게 이야기하면서도 저의 음성 판정만을 엄청나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압니다. 병원에 좀 더 있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하니 역시나 걱정을 많이 합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영양제나 비타민 수액이라도 맞아서 면역력을 일시적으로 키우면 안 되겠냐고 묻습니다. 친정엄마가 아이들 봐주신다고 너무 고생을 하시는 게 죄송한 마음에 남편은 병원에 있을 때 엄마에게 보약으로 경옥고를 보내드렸습니다. 엄마는 그 경옥고를 네가 먹어야 하는데 자기가 먹어서 그렇다며 걱정을 합니다. 어머님은 아무래도 제가 병원에서 보양식을 못 먹어서 그렇다며 당장이라도 장어와 소고기를 사서 올라오실 기세입니다. 그것들을 먹는다고 해서 벼락치기나 부스터처럼 면역력이란 게 갑자기 키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모두가 잘 압니다. 가족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코로나가 제 몸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쓰고 싶어 합니다. 그 마음이 오롯이 와 닿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저의 걱정에 비해 우리 아이들이 잘 지내주는 만큼 저 또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 격리되어 있는 사이 둘째 아이의 백일은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이젠 분유도 잘 먹고 첫 뒤집기도 스스로 해내며, 아이들은 저의 걱정이 무색하게 잘 지내주고 있습니다. 그 순간을 엄마인 제가 함께 못 봐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건 제 욕심일 뿐입니다. 아이들은 엄마인 제가 보고 있든 보지 않든 그 자리에서 쑥쑥 잘 커주고 있는 게 그저 기특할 따름입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외출 시 꼬박꼬박 쓰고 손을 30초씩 비누로 씻었는데도 이미 코로나에 걸려 버린 건 매우 안타깝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내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그나마 그 덕에 저희 부부로 인한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코로나 검체 검사가 음성이 나오는 것도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의 기분, 나의 태도 뿐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병원에 격리된 이 긴 시간을 끝없는 우울에 잠식되어 절망으로 보낼지, 아니면 그나마 감사하며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낼지는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간을 믿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습니다.

제 몸에서 코로나가 완치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집으로 가도 좋을 그 날이 오기까지, 엄마와 가족들이 너무 지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첫째 아이가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엄마와 자기의 여섯 번째 생일입니다. 벌써 다음 주면 3월 생인 아이의 생일이 돌아옵니다. 생일이 돌아오기 전에 엄마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다 같이 모여 축하파티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소중히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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