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나브로 Apr 09. 2020

퇴원을 하고 아이의 곁으로

그동안의 시간을 농축하여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안아줄게


퇴원 날 아침은 일찍 눈이 떠졌다. 코로나 반응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사실에 당장이라도 병실 문을 박차고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병원의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의료진은 퇴원 절차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줬고, 아마 점심식사 전에 나갈 수 있을 거란 이야기에 초조한 마음으로 병실에서 기다렸다. 한시라도 빨리 병실을 벗어나 가족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 어떤 것도 평소와 다르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1분 1초가 느리게 흘러가고 점심시간은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나 하던 찰나, 퇴원수속이 완료됐으니 이제 퇴원 절차에 따라 준비를 하고 나와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선 지겨운 환자복은 벗어 버리고 병실 욕실에서 샤워를 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혹시라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머리카락 끝에 남아 있진 않을까 싶어 샤워를 평소보다 꼼꼼히 오래 하였다. 샤워 후에는 보호자가 미리 원무과에 맡기고 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병원에 들어올 때는 겨울이었고 날이 제법 쌀쌀하여 두툼한 겨울 코트를 입고 왔으나, 이젠 어느새 봄이 다가와 면바지와 후드티를 입었다. 병원에 들어올 때 입고 온 속옷과 겉옷, 신발은 전부 폐기처리가 되기에 남겨두었다. 새 옷으로 환복 한 뒤, 간호사실에서 준비해 준 마스크와 장갑, 부직포 가운을 착용했다. 꼭 반출이 필요한 휴대폰과 충전기 정도만 소독 티슈로 꼼꼼히 소독 후 지퍼백에 넣어 반출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간호사실에서 병실 내 CCTV로 내 상태를 체크한 뒤 병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병실을 들어온 날과는 전혀 다른 공기였다. 이렇게 복도가 짧았었나. 확진 판정을 받고 새벽 병원에 입원하는 날의 기억상으로는 병실에 들어오기까지 이중 안전 문을 최소 다섯 개는 통과하여 엄청 긴 복도를 걸어 병실로 안내를 받았었다. 그러나 퇴원 날 다시 본 복도는 허무할 정도로 짧고 밝았다. 병실에서 보던 모습과 복도에서 만난 의료진의 모습도 사뭇 낯설었다. 의료진에게 그동안의 감사에 대한 인사를 드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병실 밖으로 나와 사람을 마주 하는 일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낯설었다. 멀찍이서 사람만 마주쳐도 나는 긴장되고 나를 확진자라고 알아볼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 잡혔다.

간호사 선생님이 안내해 주신 퇴원 준비사항

1층에 내려와 미리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아이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엄마!’하고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격리 해제이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아이도 남편도 포옹하길 주저했다. 영상통화로 보는 얼굴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생생한 아이의 얼굴에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목련꽃과 개나리꽃이 퇴원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오늘의 미세먼지 나쁨이라는 휴대폰 알림과는 무관하게, 내 눈엔 하늘도 맑아 보이고 바깥공기는 상쾌했다. 내게도 봄이 왔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경기도의료원의 마지막 모습

퇴원 날의 점심은 도저히 한 메뉴만 선택할 수가 없었다. 1차로 그토록 먹고 싶던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먹고 2차로 치킨과 맥주도 먹었다. 맥주를 첫 모금 입으로 넘기고 나서야 긴장이 쏴악 풀리며 집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퇴원 당일은 집도 많이 낯설었다. 냉장고에는 확진 판정을 받기 전에 우리 부부가 꺼내 먹던 밑반찬과 국은 싹 다 비워지고 새로운 반찬들이 채워져 있었다. 우리 부부의 확진 소식에 지인들이 집으로 보내온 면역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건강기능식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면역력은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최고라는 생각에 평소 절대 내 돈 주고는 사 먹지 않을 고가의 건강기능식품들이었다. 하루 두 포씩 먹을 때마다 나를 떠올리고 무언가를 집으로 보내온 그 마음을 떠올린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은 노오란 잎사귀가 잔뜩 바닥에 떨어지고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일주일 정도 먼저 퇴원한 남편이 물을 줬는데도 집을 비운 기간이 길어 그런지 율마와 스투키는 이미 생명을 다 한 듯 퍼석퍼석 말라 있었고, 해피트리와 동양 난은 노란 잎사귀들이 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물을 주곤 했는데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는 동안 우리 집 식물들도 상당히 힘들었을 시간의 흔적이 보인다.

물을 준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상태가 그나마 호전되고 있는 식물들

둘째 아이는 퇴원 다음 날이 되어 엄마 집으로 데리러 갔다.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신발을 신은 채 현관문 앞에 선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눈물을 와락 터뜨렸다. 그동안 딸이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에 많이 속상해하셨다. 나보다 정작 고생한 사람은 갑작스럽게 아이 둘을 떠맡고 혹시나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릴까 하는 불안에 집에서도 아이들을 마주할 때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고 밥상도 매번 따로 차린 엄마임에도 말이다. 엄마는 눈에 띄게 야위어계셨다. 한 달 새 몸무게가 3킬로나 빠졌다고 하신다. 이번 코로나 확진으로 내가 가장 미안한 사람은 엄마와 아이들이다. 장모님께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지었다고 남편은 이야기했다.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잠들기 전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왜 그렇게 병원에 오래 있었어?
엄마를 기다리는 건 쉽진 않았어.
그런데 엄마가 나온다고 했을 때 엄청 기뻤어.
정말 정말 기뻐서 크게 소리를 질렀어.

잠잘 때면 꼭 내 팔뚝 살을 말랑말랑 주무르며 잠드는 첫째 아이는 내 팔을 꼬옥 안는다. “이제 엄마 어디 안 갈게” 대답하고 아이의 머리를 찬찬히 쓸어 넘긴다. 우리 가족이 온몸으로 코로나를 통과하는 동안 아이들이 그새 많이 컸음을 실감한다. 둘째는 분유 먹고 포동포동 커서 그새 아랫니 두 개가 빼꼼 올라오기 시작했고, 뒤집기를 수시로 한다. 첫째는 엄마가 없는 사이 엄마 말투를 흉내 내며 동생을 살뜰히 챙긴다.

엄마가 없는 동안 엄마 그림을 그렸다며 내미는 아이의 그림 선물

남편은 그동안 우리 가족이 코로나로 인해 떨어져 있던 시간을 아이들에게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무급이지만 가족돌봄휴가를 2주간 신청했다. 내가 퇴원하지 않은 상태였을 때 아이들을 맡기고 남편이 출근을 하기엔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가족돌봄휴가이지만 동시에 내 마음도 돌보며 휴가 기간 동안 우리 넷은 하루 종일 붙어 지낸다. 매일이 마치 주말 같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지 않고 넷이서 종일 집에 붙어 지내니 오히려 집은 매일 어질러지고 정신이 없다. 아이들 챙기랴 매일 몸은 바빠도 마음만은 편안한 내 집이다. 집에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알기에 순간을 맘껏 누린다. 아이의 포동포동 보드라운 살결을 만질 수 있느냐의 여부가 내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임을 배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