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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May 06. 2020

코로나19에 걸려버린 바람에 시작된 글쓰기

어쩌다 시작한 브런치 작가 도전기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세 번째 확진자로 재난문자가 이웃들에게 날아가고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다. 남편으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여섯 살인 첫째와 태어난 지 백일도 채 지나지 않은 둘째와 하룻밤 새 생이별을 당했다. 가족으로부터 분리되고 병원에 격리되는 제약으로 인해 내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병실에서의 하루하루는 지난했다. 아이들과 친정엄마 생각에 병원밥을 뜨면 목이 메었고, 쉬이 잠들지도 못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코로나19를 전파시켰을 가능성을 떠올리면 마음이 미어졌다.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갔다.


병실에서 답답함과 지루함으로 가득하던 때,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으레 새해가 되면 매 년 달성하지 못해 자책하고 다시 반복하여 세우는 목표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마음만 먹고 ‘다음에 다음에’하며 미루기만 하다 막상 시작도 못하던 일이 그때 떠올랐다. 지금이 적기였다. 병실 침상에 기대어 휴대폰 메모장에 한 편의 글을 적고 브런치 플랫폼에 작가 신청을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래 걸리지도 않을 일을 여태 미뤄오며 ‘시간이 없어서, 애들 키운다고 바빠서’라는 흔하고도 구차한 자기변명을 해왔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막상 시간이 생겨도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음을 깨달았다. 다음 날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하며, 소중한 글을 기대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이 왔다.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오기까지 악몽에 가까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글로 적었다. 우리의 일상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과도한 불안과 공포, 혐오와 원망 사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일 9가지가 떠올랐다. 원두커피를 내리듯 글로 담담히 적어 내렸다. 몰입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집중하며 쏟아낸 에너지 덕분인지 밥맛도 좋았다. 첫 번째 글을 발행하기 전에 ‘사람들이 나를 확진자라고 비난하진 않을까’하는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용기를 냈다. 시작하고 나니 그다음은 훨씬 쉬웠다. 많은 분들이 함께 눈물 흘리며 다시 소중한 일상을 돌아본다는 이야기에, 비록 몸은 병원에 격리되었지만 마음은 이미 격리 해제된 기분이었다. 내가 닥친 상황을 공감하고 응원해주는 댓글에 힘이 났다. 용기를 내길 잘했다.


이후 브런치 시작을 계기로 많은 시작과 도전에 연결되고 있다. 한 달 사이 여러 언론사와 방송사, 플랫폼 등에서 스무 건이 넘는 제안 메일이 왔다. 난생처음 잡지에 기고한 나의 에세이가 5월호 잡지의 한 페이지 지면을 차지했고, 브런치에 올린 글은 5개 국어(영어, 중국어, 광둥어, 일본어, 태국어)로 번역되어 여행플랫폼에 소개되었다. 큰 위안을 받았다며 ‘어느 확진 주부의 편지’라는 타이틀로 9시 뉴스, 앵커의 시선에 소개가 되기도 했다. 감사한 제안 덕에 발생한 원고료 수익은 작지만 전액 모두 코로나로 인해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부하였다. 글을 쓰고 받은 대가로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코로나에 걸려버린 바람에 시작된 글쓰기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하퍼스바자 5월호에 실린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

28일간의 격리생활 끝에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고 가족의 곁과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쓴다. 처음이 어려웠지 오랫동안 머뭇거려오던 일을 막상 시작하고 나니 이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나 보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한다. 아이를 재우고 밤 12시가 넘는 시간,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방문을 빠져나와 부엌 식탁에 앉아 모두가 잠든 밤 또각또각 글을 적는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 새벽의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잠든 밤, 주방 옆 식탁은 나만의 은밀한 글쓰기 공간이 된다


시작에는 설렘과 불안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설렘보다 불안이 더 크게 작용하거나, 완벽하게 잘하려는 마음이 너무 앞서는 경우, 나는 시작 앞에서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나의 시작, 나의 도전은 새로운 세계로 나를 확장시켜 나가는 문이 되어 줄 거란 사실을. 지금껏 그래 왔듯, 미약하든 거창하든 내딛는 첫 발이 크고 작은 변화와 함께 날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하얀 종이 위에 찍힌 ‘점’ 한 개에 불과한 시작은 처음에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 점들이 모여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만나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안 하고 계속 마음속에 묵혀 둔 것보다 찜찜한 느낌은 사라질 테니, 그동안 미뤄둔 일이 있다면 잘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정신으로 지금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앞으로의 내 모습을 알 수 없기에 설레고, 예상치 못하기에 재미있을 새로운 시작의 순간을 맞이하는 모든 이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시작은 언제나 옳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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