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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Oct 19. 2020

Stay Strong, together

2020년 5월 잡지 《하퍼스 바자》에 실린 에세이 전문과 《마리끌레르》에 실린 인터뷰 전문을 올립니다.




[하퍼스 바자 5월호 - ISSUE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 에세이]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이다. 경기도의료원의 음압 병실에 스물여덟 밤 동안 격리되었다. 뉴스로 매일같이 급증하는 확진자 소식을 접하다가, 어느 날 나와 내 가족의 현실이 되었다. 여섯 살인 첫째와 태어난 지 백일도 채 지나지 않은 둘째와 하룻밤 새 생이별을 당했다. 남편이 직장에서 동료에 의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평온한 하루에 폭풍이 몰아쳤다. 남편이 병원으로 이송된 뒤 집과 동네 전체 방역이 진행되고, 보건소 담당자가 코로나 검체 검사를 하러 집으로 달려왔다. 여섯 살 아이는 집에 들이닥친 하얀 옷에 고글을 낀 낯선 사람들의 모습에 잔뜩 날을 세웠다. 검체 채취를 하면서 코와 목을 한참 찌르니 아이는 헛구역질을 하고 눈물, 콧물을 흘렸다. 둘째 아이를 강제로 잡고 검사를 할 땐 마음이 미어졌다.

다음 날 새벽 한 시 반, 아무런 증상이 없는 나 또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보건당국의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아이들의 결과는 음성. 잠든 아이들로부터 당장 떨어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화기 너머로 숨 가쁘게 들려왔다. 잠들기 전이면 꼭 엄마를 찾는 첫째 그리고 모유를 먹는 둘째와 어찌 떨어져 지내야 하나. 걱정에 손이 떨리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급하게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데리러 집으로 오셨고, 나는 구급차를 타고 음압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그날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날을 지샜다. 아이들 걱정에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코로나 확진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함께 붙어 지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유를 먹이고 안아준 시간, 뽀뽀를 해준 순간, 서로 마주 보고 들숨 날숨을 내쉬며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동안 아이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시켰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며칠은 악몽 같은 하루를 보냈다.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단 가족과의 갑작스러운 격리와 추가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병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내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다. 달리 생각하면 적어도 아이들과 친정엄마는 음성이지 않나. 증상이 없음에 감사하고, 아이들이 음성임에 감사하고, 우리 부부로 인한 확진자가 없음에 감사하고,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음에 감사하고, 확진 소식을 빠르게 확인해 준 보건소에 감사하고, 나를 챙겨주는 의료진에 감사하고, 따뜻한 연락을 남겨준 지인과 응원의 댓글을 달아준 익명의 이웃들에게 감사하다. 코로나로 인해 하나 배운 점이다. 사소했던 내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나보다 고령의 부모나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이웃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지 돌아본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확진자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구호대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의 마음은 어떨지 살펴본다. 내가 처한 상황에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들을 생각하니, 비록 몸은 병원에 격리되었지만 마음은 이미 격리 해제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드디어 진짜 격리 해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의료진은 나의 코로나 완치를 본인들의 일처럼 기뻐해 줬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때론 유머로, 때론 위로로 나를 챙겨준 의료진이다. 책을 읽고 싶다는 조심스러운 부탁에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구해다 주시기도 했다. 의료진이 내게 베풀어준 ‘병실이 빛나는 친절의 마법’이 내 안에서 코로나가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정말 감사했다.   

나는 전 세계 1백만 명의 확진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증상이 없거나 독감 수준에 그치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지만 아이들은 집에만 머무르며 개학이 무기한 연기되고, 심각한 경기침체로 사람들의 일자리와 생계가 위협당하고 있다. 봄꽃 명소마다 상춘객을 막기 위해 유채꽃밭을 갈아엎고 벚꽃 축제를 취소하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로 인해 일어나고 있다. 가슴 아프지만 나쁜 일이 나쁜 일로 끝나버리게 내버려 둘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코로나로부터 배워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감사한 일을 찾아내며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가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던 28일간의 내 격리생활에도 마침내 좋은 소식이 왔듯이, 모두가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가 소중한 사람들과 꽃향기를 만끽할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마리끌레르 5월호 - 'stay together 코로나19에 맞서는 평범한 영웅들' 인터뷰]



Q 코로나19에 대한 경험을 브런치에 공유한 이유

확진 판정을 받고 국가의료원의 음압 병실에서 28일 동안 있었다. 뉴스에서 숫자로 마주하던 확진자가 내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직장 동료에게 감염된 남편을 통해 나 역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2월 말쯤 확진자가 되고 보니, 확진 판정 이후의 과정이나 경험담을 전혀 찾을 수 없어 답답하고 두려웠다. ‘확진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분위기여서 그랬을 것이다. 나라도 기록을 남기면 누군가는 덜 당황하고 덜 무섭진 않을까 생각했다. 망설임 끝에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고, 약 60만 명이 공감해줬다. 덕분에 지금은 격리 해제되어 가족의 곁으로 돌아왔다.


Q 실제로 경험한 코로나19

발열 여부가 코로나19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알려졌지만 우리 부부는 모두 열이 나지 않았다. 뉴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중환자 소식을 많이 접하다 보니 코로나19에 걸리면 병원에서 모두 그런 모습으로 지내는 줄 알았다. 나는 무증상이었기 때문에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겉은 멀쩡해도 확진자일 수 있기 때문에 퇴원 후에도 철저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 수칙을 지키고 있다.


Q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과 희망을 보았던 시간

확진 판정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이 가장 절망적이었다. 나는 양성 판정을 받았고 아이들은 모두 음성이어서 당장 아이들과 분리되어 병원으로 이송될 거라는 전화였다. 백일이 채 지나지 않은 둘째는 당시 모유 수유 중이었고 온종일 품에 안고 지낸 시간이 많아 혹시 아이가 코로나19에 걸리진 않았을까 무척 불안했다. 이와 동시에 감사했던 건 그럼에도 살아날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증상이 없고 아이들이 음성임에, 우리 부부로 인한 다른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음에 감사했으며, 확진 소식을 빠르게 확인해 준 보건소 공무원과 의료진에게도 고마웠다. 또 따뜻한 말로 위로해 준 지인과 응원의 댓글을 달아준 익명의 이웃을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평온한 일상에 대한 소중함이 마음속 깊이 울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라는 극한 상황에서 절망과 희망이 함께 찾아왔다.


Q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막연한 불안으로 생긴 혐오보다는 배려와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힘든 시간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감사한 일을 찾아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겠지만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분들의 땀과 노력은 결코 잊히지 않을 거다. 조만간 모두가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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