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겨울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땐 코로나가 봄의 길목을 가로막았었는데 어느새 가을인 지금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라는 걸 누가 알았을까. 가을에 재유행이 도래할 수 있다는 예측은 그때도 있었으나, 이건 재유행이 아니라 줄곧 코로나가 2020년 내내 이어진 유행의 연속선상이지 않은가. 나는 퇴원했지만 꾸준히 '코로나 확진자'나 '확진자 증상', '확진자 생활' 등 관련된 검색어를 통해 나의 브런치 글을 누군가 읽는다. 그 당시 불안과 초조와 걱정, 두려움에 둘러 싸인채 이 곳 저곳 포털 사이트에 관련 검색을 하던 새벽의 내 모습이 그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진다.
종종 내게 찾아온 후유증에 대한 문의나 인터뷰 요청이 있으나 이 자리를 빌려 밝히자면 건강상의 후유증은 내겐 전혀 없다. 정신적 후유증만 존재할 뿐이다. 코로나라는 질병을 겪어보니 증상이 없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고 주변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란 것을 뼈저리게 알기에 더욱 조심할 뿐이다. 더불어 매일같이 쏟아지는 재난문자에 무던해지지 않으려 한다. 무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세 번째 확진자였는데, 지금의 지역 재난문자는 어느새 삼백번대를 훌쩍 넘었다. 알림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결코 그냥 숫자에 불과한 재난 문자가 아니라, 하나같이 소중한 누군가의 가족일 것이고 갑작스럽게 마주했을 예기치 못한 상황일 것이기에 나의 일처럼 그 상황이 그려진다. 하루빨리 더 이상 확진자 발생 안내 문자를 받지 않을 날을 간절히 간절히 기다린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던 우리 모두가 힘들던 시기에 나는 아래 문장을 부쩍 자주 되새겼다.
진정한 삶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
-존 오리어리, <온 파이어>-
우리는 배우고 있다. 코로나라는 폭풍 속에서 밖에 나가지 않고도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 아이들과 집에서 텐트를 치고 홈캠핑 기분을 내기도 하고, 크로와상 생지와 와플메이커의 조합으로 홈카페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가지 수의 놀이를 한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수많은 고난과 시련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느냐는 전적으로 스스로의 선택이다.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코로나도 마찬가지이기에. 미래를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한다. 물론 아이에게 실내든 실외든 긴 시간 동안 마스크를 씌우는 일이 안쓰럽고, 친구들과 차 한잔하며 수다떠는 오프라인 만남이 그립고, 캠핑의 진짜 재미인 자연 속에 머물며 숯불 바비큐도 즐기고 싶고, 국내와 해외여행도 떠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다. 모이기 위해 흩어져야 하고,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잠시 멀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이니까. 그렇다고 코로나가 온전히 지나가기만을 가만히 멈춰 기다리기엔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이들과 안전하게 일상을 짓는다. 그러며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찾는다. 가족이 식탁에 모여 한솥밥 식사를 하고 잠들기 전 동화책을 읽어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잠드는, 격리병동이 아닌 아이의 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아이들과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빗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마음껏 하고 싶은 리스트를 오늘도 아이와 함께 새로이 업데이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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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근황을 적자면, 뱃속에 셋째 아이가 생겼고 입덧이 시작된 뒤로는 좋아하던 책과 글 쓰는 시간도 모두 덮어두고 겨울잠을 자듯 여름날의 밤을 보냈다. 간단한 샤워를 하는 것마저도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결국 음식을 게워내곤 하였다. 이런 컨디션 속에서 책을 펼치고 글을 쓰는 건 한동안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남편과 아이의 배려 덕에 푸욱 자고 푹 쉬니 어느새 입덧 시기는 지나가고 안정기가 찾아왔다. 다시 주변의 일상과 세 번째 겪고 있는 임신기에 대한 글을 적으려고 한다.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는 긴 시간 동안에도 나의 브런치를 구독 중인 구독자 한 분 한 분 모두 건강하시길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