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격리된 지 스물여덟 밤이 지났다. 드디어 애타게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6차와 7차에 거친 코로나 검체 검사에서 24시간 간격으로 연속 두 번 음성 판정을 받았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전화로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소식을 알려주셨다. 수화기 너머로 간호사실 선생님들의 '축하합니다!!!!!' 하는 환호성이 들렸다. 본인들의 일처럼 나의 코로나 완치와 퇴원 소식을 기뻐해 주시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병원에 지내는 동안 때론 유머로 때론 위로로 나를 챙겨주신 의료진 선생님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방호복을 입고 고글을 쓴 상태로는 말 한마디에도 숨이 차고 고글에 습기가 꽉 차는 상황일 텐데도, 방에 들어오실 때면 항상 말을 건네주셨다. 사소한 농담을 건네 나를 꺄르륵 웃게 만드는 유쾌한 분들이었다. 병실에서 책이 읽고 싶다는 조심스러운 부탁에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책을 구해다 주시기도 했다.(물건 버리기를 정말 못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서 집에 가서 정리가 하고 싶어 지는 책) 때론 쪽지와 함께 캔커피를 슬쩍 챙겨주시기도 했다. 감사한 마음에 정말 뭐라도 챙겨 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내가 손 닿은 건 그 무엇도 드릴 수가 없어 아쉬웠다. (음성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모든 게 조심스럽다.)
볼 때마다 힘이 나는 간호사 선생님이 써 주신 쪽지
4주 동안의 병원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지만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만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보내주는 아이들 동영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돌려봤다. 아이들 사진을 보면 볼수록 엄마미소와 함께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가족이 강제로 떨어진 시간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힘든 기억이라 지워버리고 싶지만, 코로나 확진자로 병원에 격리되어 지낸 28일의 시간도 내 삶이다. 이 시간들을 피해 가거나 내 삶에서 통편집을 해 낼 수도 없다. 우리의 삶은 유튜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도, 앞으로의 시간도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와 가족들의 삶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잡아먹히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아이들과 우린 곧 만날 거라는 희망을 등대 삼아 격리생활을 덤덤히 해나가야 했다.
격리생활 중 틈틈이 휴대폰 메모장을 펼쳐 글을 적었다. 첫 번째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확진자의 정보가 없다는 생각에 내가 경험한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6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분들이 나의 작은 글을 읽고 공감해 주셨다. 솔직하게 확진자라고 밝혀도 괜찮을까 하던 나의 우려와는 달리 대나무 숲 아니 브런치 숲에 외치고 난 뒤로, 주변 따뜻한 이웃들의 애정 어린 응원과 댓글에 힘을 냈다. 내 글에서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고 댓글을 달아주셨지만 그 반대였다. 함께 내 상황에 울어주고 공감해준 이들의 마음으로부터 내가 큰 위안을 얻었다. 한 줄의 댓글을 남기기 위해 기꺼이 브런치를 가입하고 응원의 한마디를 남겨주신 분, 글을 읽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애써 댓글창에 작은 마음을 남겨 놓은 분, 퇴원 소식을 전해달라며 나의 글을 구독한 분, 모든 이에게 정말로 감사하다. 덕분에 매일 밤 병실의 딱딱하고 삐걱거리는 매트리스에서 잠들기 전, 나는 덜 외로웠다.
확진자의 경험을 글로 옮겼으나 모든 확진자가 나와 같진 않다. 나는 우리나라 기준으로만 9,000명의 확진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나의 증상이나 경험은 지극히 한정적이기에 혹여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전체를 단정 짓는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같은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증상이 없거나 독감 수준이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어느 한 노부부의 사연은 잊히지가 않는다. 코로나에 감염된 남편이 숨졌지만 아내도 자가격리 중이어서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조차 지키지 못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고 평생의 안타까움으로 남을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다가와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까. 아니 나는 또다시 내가 확진자라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소식에 어김없이 처참하게 무너질 거다. 그 날 새벽의 전화 벨소리만 울려도 모든 기억이 선명해져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벨소리를 바꿨다. 큰 의미 없이 가볍게 농담으로 사용하는 '확찐자'라는 단어마저도 나는 불편하다. 완치자라고 하여도 언제 어디서든 변이 바이러스에 의해 다시 감염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웠다.
아빠는 병원에 있는 내게 역경지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역경지수(AQ: Adversity Quotient)란 수많은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을 IQ처럼 지수화한 것이라고 한다.
높은 역경지수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그들은 역경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둘째, 그들은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셋째, 그들은 역경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역경 대신 코로나를 넣어 다시 읽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들이닥친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극심한 역경에 부딪힌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마와 싸우고 격리되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고 경제마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나를 비난하지 않으며, 코로나를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역경지수는 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코로나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도 코로나가 사라지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우리 개인과 사회의 역경지수가 최대치로 높아져 있을 때,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코로나의 시발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인 전 지구적 위기를 언제 잠재울지도 우리 한 명 한 명의 힘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힘껏 안아줄 거다. 기적처럼 나의 간절한 바람대로, 첫째 아이의 여섯 번째 생일의 딱 하루 전 날 집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더욱 애틋해진 사랑을 남편과 아이들과 듬뿍 나눌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