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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Mar 14. 2020

병원에서의 격리생활에 대하여

지루하고 지겹지만 어쩌겠어. 이 시간들도 내 삶인걸.

"오늘이 며칠이지? 무슨 요일이더라."

코로나로 병원 격리 생활이 시작되고 날짜 감각을 잃었다. 2월에 격리병동에 들어왔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달이 바뀌었다. 벌써 세 번째 주말을 병실에서 보내고 있다.


확진자란 소식도 갑작스러웠지만, 병원에 들어올 때 뭘 챙겨야 하나 난감했다. 옷과 소지품은 병원에 들어가면 모두 버리고 올 거라고 보건소 담당자가 말했다. 그나마 버려도 아깝지 않을 트레이닝 바지와 셔츠, 코트를 입고 병원에 왔다. 속옷과 로션 샘플, 여행용 세면용품 몇 가지를 닥치는 대로 챙겨 왔다. 그게 전부다. 두꺼운 소설책이라도 한 권 챙기고 싶었지만 소지품을 버리고 온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비웠다.(버릴지언정 챙겨 올 걸 그랬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새벽에 아이들과 누워있던 잠자리 이불을 그대로 둔 채 피난 떠나듯 집을 나온 뒤, 병원에서의 격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간호사 선생님이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주신다. 식사는 모두 플라스틱 도시락 통에 담겨 나온다. 내 병실에서 나가는 음식물을 포함한 모든 쓰레기는 의료 폐기물 전용 용기에 담겨 당일 소각된다. 간식이 없기 때문에 맛을 떠나 그냥 먹는다.


가끔가다 영양실에서 과자와 커피를 올려보내 줄 때도 있다. 오늘은 화이트데이라고 무려 사탕과 간식도 챙겨 주셨다. 왜 군인들이 초코파이 하나에도 열광하는지 그 느낌을 조금 알 것 같다. 몽쉘 하나가 그렇게 작고 소중하고 달콤할 수가 없다. 아끼고 아끼다가 정말 격하게 당이 땡길 때 꺼내서 한 입 먹으면 간 행복해진다. 커피가 한 번 나오면 어찌나 감사한지 한 모금씩 먹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현대판 자린고비이다. 하루 한 모금만 허락된다. 커피 하나로 카페인이 땡길 때 한 모금씩 일주일을 버틴다.  마저도 결핍 속에선 감사하다.

소중한 커피 한 모금


증상이 특별히 없다면 약은 없다. 초반에 갑작스러운 단유로 인해 젖몸살이 왔고 그때 잠시 열이 올랐다. 단유 때문인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미열이 있어 해열제를 며칠 먹었고, 지금은 증상이 없다. 약은 먹지 않지만 면역력을 키우기 위한 나름의 활동을 한다.(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루에 물 2L 마시기라던가 스트레칭 한 시간 하기.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안에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한다.


하루 세 번 혈압과 체온, 산소포화도를 측정한다. 세 가지의 수치를 모두 차트에 기록으로 남긴다. 그때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눈다. 나는 확진자인 나를 대하는 간호사 선생님을 걱정하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묻는다. 의료진 분들도 내 앞에서 티는 전혀 안 내시지만, 매일 확진자들을 대면하는 생활 속에서 본인과 함께 사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불안할까 생각한다. 퇴근할 때면 방호복을 벗고 병원에서 샤워까지 마치고 집에 가신다고 한다. 또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지내기도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택하시는 것 같다.

하루 세 번 씩 체크하는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측정기

주치의 선생님이 하루 한 번 회진을 돈다. 체온이나 나의 몸 상태는 어떤지 체크하고, 언제 코로나 반응 검사를 할지 결정한다. 병원에 오고 이주가 지날 때쯤 두 번 검사를 했으나 연속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와 상심이 크다.

재검사를 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애가 탄다. 보통 검사 후 24시간이 지나야 결과가 나온다. 병실 밖 복도에서 방호복을 입은 선생님의 바스락 비닐 소리와 다른 방 노크소리가 들려오면 귀를 쫑긋 세운채 긴장을 한다. 소리가 시작된 뒤로 내 병실에 의사 선생님이 오기까지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평온함을 되찾고 결과에 크게 연연치 않기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선생님이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안타깝게도..."로 시작하는 운을 떼는 결과를 듣고 나면 쉽게 무너진다. 소식을 전하는 의사 선생님의 눈에도 내 몸에서 '피융-'하고 힘이 빠져나가는 게 보이나 보다. 애써 좀 더 기다려 보자며 위로해 주신다. 마음이 아쓰라 하게 쓰라린다. 마치 애타게 기다리던 회사의 면접 결과나 공모전의 불합격통보받을 때  느낌의 백스무배정도 더 실망한다. 삼일에 한 번 씩 이 기분을 느끼고 있다. 기대했다 실망하고 내려놓고 위안하고 하루 동안 정말 다양한 감정이 스민다.


결과를 듣고 제일 먼저 남편과 통화를 한. 나보다 더 음성인지 양성인지 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나 양가 부모님께는 괜히 걱정하실까 애써 할 수 있는 최대의 밝은 톤으로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가장 솔직할 수 있다. 서로 같은 처지다 보니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큰 위안도 받는다. 아무리 그런다 한들 제발 둘 중 한 명이라도 먼저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같이 나가면 더 좋고.

 "우리 나가면 다 같이 집에서 퇴원 기념으로 치킨 시켜놓고 맥주 한 잔 하며 <놀면 뭐하지-방구석 콘서트> 같이 보자." 남편은 말한다. 소박한 꿈이다. 병원을 나가면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잔뜩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지겹도록 일상적이지만 가장 애타게 하고 싶은 일. 보고싶은 아이들과 남편을 만나 볼을 맞대고 가족이 모여 밥 먹는 시간.


집에 있는 지인의 여섯 살 아이는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비둘기야 너는 좋겠다. 코로나 걸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 마음대로 밖에도 다닐 수 있잖아."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시간이다. 비둘기를 부러워하는 아이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봄이 와도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3월이지만 개학이 연기된 이 시간이 아이나 어른이나 각자가 느끼는 무게만큼 힘이 든다. 나의 아이도 내게 하루에도 몇 번씩 영상통화를 하며, "엄마 몇 밤 자고 올 거냐고,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몇 밤일지 나도 알 수가 없어 "금방 갈게!"라는 말로 얼버무린 지가 벌써 2주가 넘었다. 아이를 생각하면 그저 미안하고 기특하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곧 엄마 아빠가 곁으로 가겠다는 약속, 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간이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 곧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쯤이면 우리 모두 밖으로 봄소풍을 가자는 그 약속으로 버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이 지루한 시간들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다. 우리들의 3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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