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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Mar 11. 2020

코로나 확진자의 잃어버린 명예

코로나19로 인한 감염병 스트레스 극복기

왜 이렇게 싸돌아다녔냐.
역마살 낀 거 아니냐.
지금 시국에 대구 사람은 왜 만났냐.
아프면 집에 가지 병원 들렀다 마트는 왜 갔냐

코로나 확진자의 이동경로가 발표되고 내가 읽은 일부 댓글이다. 악성 댓글의 축에 끼지도 않는 수준이겠지만, 몸과 멘탈이 탈탈 털릴 읽으면 상처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구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는 괜히 위축되고 상처 받았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 확진자가 되면 증상이 나타나기 3-4일 전부터의 동선이 공개된다. 내가 최근 일주일간, 어디를 갔고 누구를 만났는지 나의 기억력과 카드 결제 시간, cctv, 모든 것을 동원하여 이동경로를 정리한다. 엄연한 개인정보의 영역이지만, 지금의 코로나는 현재 나의 이웃과 국민 전체에 영향을 주는 '심각' 단계의 전염병에 해당되기에 이웃의 알 권리를 위해 기꺼이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최대한 세세하게 역학조사관에게 밝힌다.


물론 그 정보의 모든 동선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보건 당국의 동선 공개 기준에 따라 접촉자가 발생했거나, 사람이 많은 장소이거나, 마스크를 끼지 않았거나, 공중보건학적으로 봤을 때 전파를 일으킬 만한 경로,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하는 정보만을 동선 공개하는 것이 기준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과도한 정보가 노출이 되기도 한다. 또는 디테일한 면에서 일부 잘못된 정보가 기사화되기도 한다. 한 번 잘못 퍼진 정보는 해명의 기회란 없이 여러 개의 기사로 양산된다. 불리한 입장에 처하면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해서 이동경로가 공개되면, 누군가는 확진자를 죄인마냥 희생양 삼아 재단하고, 판단하고, 비난, 조롱, 혐오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기사에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맥락은 쉽게 무시되고 생략된다.

지인은 내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인터넷 기사와 댓글은 보지도 말고 지금은 너와 아이들만 생각하라고 이야기해줬다.


코로나 확진자가 느끼는 심리적 위축은 상당하다.

왜 내가 걸린 건가 하는 스스로를 향한 자책, 내가 증상이 나타나기 전 들렸던 이동경로에 해당하여 의도치 않게 피해를 드렸을 자영업자분들에 대한 죄송함, 이미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인 남겨진 가족들을 향한 따가운 시선, 악플에 대한 상처를 겪게 된다.

확진자도 이웃이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확진자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다.


남편이 확진 판정을 받고, 내가 사는 동네의 아파트가 공개된 거까진 괜찮았다. 동이 노출된 것도 괜찮았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 몰려와 확진자의 집이 몇 층이냐, 몇 호냐 까지 물어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는 시청으로 민원을 넣는다. 확진자의 접촉자의 아파트도 당장 공개하라며 협박을 놓는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보다 누군가가 우리 집에 해코지를 하진 않을지, 사람들이 나와 아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가 더 두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네 주민으로 불안한 사람들의 심리도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알 권리를 위해 동선과 이동경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동의한다. 그러나 단순 호기심 이상으로 몇 층 몇 호까지 알아내서 어쩌겠다는 건지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정보가 예방에 도움이 되긴 하는 걸까. 


세 번째 확진자, 또는 B씨라는 이름으로 나이와 직장, 거주지, 가족관계가 노출됐을 뿐이다.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지인들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실제로 걱정되는 마음으로 혹시 설마  소식이냐며 조심스럽게 연락이 왔다.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위축되는데 하물며 연예인이나 공인의 삶은 어떠할지 감히 실제 그들이 느낄 불안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나의 일상이 일거수일투족 기사화되는 상황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댓글을 보면서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소설이 떠올랐다.

27살의 평범한 여인 카타리나블룸이 어느 날 괴텐이라는 범죄자와 연루되며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그 뒤로 5일간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인 언론의 폭력 혹은 다수의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기자를 향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40년도 더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법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서 카타리나를 가장 좌절케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다. 한때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주변 사람들의 외면, 그리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은 그녀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가볍게 흘려 내뱉는 추측과 반응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 될 수 있다.


사회의 시선이 이러하니, 그 많은 확진자들 중에 내가 확진자라고 언급한 사람은 SNS에 보기 드물었다. 브런치에 글을 남겼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남겼다. 대나무밭에 소리 지르는 심정으로 내가 확진자임을 털어놓았다.

하루 동안 많은 분들이 나의 고백 글을 읽어주셨고 댓글로 응원을 받았다. 일부 지인들에게도 솔직히 고백하지 못한 내가 확진자라는 사실을 오히려 이 곳에 털어놓고 랜선으로 위로받으며 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 


혹시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이 있다면 국가트라우마센터로 연락하라는 보건소의 문자가 왔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통합심리지원을 위해 감염병 스트레스 '정신건강 대처법' 7가지를 가이드하였다.

가이드를 확인하기 전에 난 이미 브런치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가이드 중에 3. 힘든 감정 털어놓기가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보다 내게 당장 큰 힘이 되어준 건 브런치이다. 내 감정을 차분히 글로 털어놓고, 나를 응원해준 가족과 주변 사람,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치유받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감염병 스트레스를 나는 브런치로 극복 중에 있다. 이 모든 건 편안한 플랫폼과 따뜻한 사람들 덕이다. 앞서 언급한 댓글들로 인한 차가운 시간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얻은 따뜻한 마음만 간직한 채 병원을 나가고 싶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배포한 감염병 스트레스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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